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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기독교/주석강해

어서 가거라 - 성서가족을 위한 출애굽기 해설서 (편집부 엮음, 성서와 함께 펴냄)

by 서음인 2023. 8. 8.

『어서 가거라 - 성서가족을 위한 출애굽기 해설서』는 가톨릭 출판사인 ‘성서와 함께’에서 1991년에 나온 출애굽기 해설서로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창세기 해설서인 『보시니 참 좋았다』와 함께 오랫동안 쇄를 거듭하며 많은 사랑을 받아온 책이다. 필자들은 출애굽기가 근대적 의미의 엄밀한 역사서술이 아니라 그들이 체험한 하나님을 신앙의 눈으로 해석해 기록한 신앙의 책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출애굽 전승 - 광야전승 - 시나이 전승으로 이어지는 출애굽기는 모세오경의 핵심이자 구약성서 전체의 핵심이며, 그중에서도  출애굽 사건이야말로 이스라엘의 정체를 규정하는 ‘원체험’ 혹은 ‘바탕체험’이라고 강조한다.   
 
저자들에 따르면 출애굽은 성서의 진술대로 60만명의 성인 남성이 한번에 이접트로부터 나온 거대한 사건이 아니라 수십 ~ 수백명의 비교적 적은 인원이 여러 시기에 걸쳐 탈주한 일련의 사건들이다. 실제로 출애굽한 지파는 요셉 지파(에브라임과 므낫세)와 레위 지파였으며, 그들의 체험은 후에 가나안에서 합류해 함께 이스라엘을 이룬 모든 지파의 기억 속에 흡수되었다. 출애굽 사건은 야훼 하나님이 이루신 해방과 구원의 원형이며, 이스라엘은 이 체험을 통해 야훼가 자연과 역사의 주(Lord)이시자 해방하시는 하나님임을 깨닫게 되었다. 출애굽때 종살이하던 여러 무리가 함께 따라나온 것은 거저 받은 은혜인 해방이 특정 집단에 의해 독점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출애굽기의 기록자는 출애굽 사건을 통해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자행된 강제노역과 억압을 간접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출애굽 사건이 억압과 해방에 관한 증언이라면 광야의 전승은 그 자유를 지키고 보존하시는 하느님의 업적에 대한 증언이다. 이 전승의 궁극적인 목표는 신 앞에서 모든 사람이 평등한 야훼공동체 사회의 건설이며, 광야전승은 이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이스라엘 백성의 40년간의 여정 이야기이다. 하나님은 출애굽 체험을 영속화시키고 새 사회의 기반이 될 길을 알려주시며 보증하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과 특별한 계약을 맺는다. 이 계약은 인간의 자유를 얽어매는 올가미가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살면서 그 원천에서 나오는 자유와 생명을 체험할 수 있게 보장해 주는 든든한 울타리다. 성막은 이스라엘 백성 한가운데 계신 하나님의 거룩한 현존을 드러내는 볼 수 있는 표지다. 성막기사는 창조기사와 공명하며 이는 성막 건설이 새로운 우주와 질서의 시작이 됨을 강력하게 상징한다.
 
기본적으로 자료비평을 근간으로 하는 고전적 비평학의 도구들을 사용하여 출애굽기 본문에 접근하며, 다양한 도표나 시각자료들을 활용해 알기 쉽게 쓰여진 좋은 해설서다. 단 정확한 필자가 명시되지 않은 글쓰기 방식과 허술해 보이는 인용처리는 시대적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조금 아쉽다. 책이 나왔던 80-90년대에 젊음을 보냈던 세대라면 '해방' '자유' '평등'과 같은 키워드로 출애굽기를 읽는 필자들의 방식에서 엄혹했던 군사독재와 그에 대한 치열했던 저항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담론이  한 세대가 지난 2023년의 대한민국 사회와 한국교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해 보이는 것은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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