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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기독교/조직교과서

신학의 영토들 (김진혁 지음, 비아 펴냄)

by 서음인 2023. 12. 28.

현대신학과 나
 
제가 현대신학을 처음 접한 것은 젊은 시절 우연히 간하배(Harvic Conn) 선교사가 쓴 <현대신학 해설>(개혁주의신행협회)이라는 책을 접하면서부터였습니다. 그 책의 원래 의도는 보수 장로교 신학의 입장에서 당시의 대표적인 현대신학자들을 비판하는 것이었지만, 이 책을 접한 저는 저자의 의도와 달리 현대신학의 매력에 깊이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곧 광활하고 험준한 현대신학의 '영토'를 탐사하기 위해서는 그 지형도를 친절하게 안내해 줄 소개서의 존재가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제 현대신학공부의 길잡이가 되어준 책들은 목창균 교수님의 <현대신학 논쟁>(두란노)이나 스탠리 그렌츠와 로저 올슨의 <20세기 신학>(IVP), 그리고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신학이란 무엇인가>(복있는사람) 등이었습니다. 모두 좋은 책들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한계가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그 책들이 주로 서구 개신교 전통의 자장권 아래 놓여 있는 한 세대 전까지의 신학 사조들만을 다루고 있다는 것과, 독자가 특정 신학자나 사조에 대해 더 공부하고 싶어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구체적인 가이드를 얻기 힘들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제 앞에는 김진혁 교수님이 쓴 770페이지짜리 따끈따끈한 현대신학 안내서인 <신학의 영토들>(비아)이 놓여 있습니다.
 
신학의 자리는 어디인가
 
'이성의 빛'에 따라 세상을 합리적이고 과학적으로 바라보는 근대의 정신은 오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라 여겨지던 성서 역시 비판적 연구의 도마 위에 올려 놓았습니다.  그리고 이는 무오한 성서라는 기반 위에 세워진 교회의 권위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기독교가 세계를 설명하는 주도 모델의 자리에서 물러나고 세상이 더 이상 기독교 세계(christendom)가 아니게 된 세속 사회가 도래한 것입니다. 저자는 현대 신학이 이러한 격동의 시대를 통과해야 했던 신학자들의 고민과 분투와 협력과 실험의 용광로 안에서 태동했다고 강조합니다. 현대신학이란 “성서를 통해 계시된 하나님을 전통과 비판적이고 건설적으로 대화하며 현대인의 세계 경험에 맞게 풀어내는 이론적이면서 실천적인 활동”이며, “세계를 설명하던 주도 모델의 지위를 상실한 그리스도교가 세속사회에서 여전히 빛과 소금일 수 있음을 여러 학문의 틈바구니에서 증언하려는 시도”라는 것입니다. 저는 저자가 서 있는 신학함의 이 자리야말로, ‘합리'와 '과학'이 만들어 낸 문명의 혜택을 아무런 이의 없이 마음껏 누리면서도 오직 전근대적인 ‘정통’ 신학의 체계만이 홀로 그리고 영원히 세상 이치를 설명하는 최종심급의 권좌를 차지해야 한다고 강변하는 한국의 보수적 근본주의자들이, 자신들의 게토에서 나와 굳건히 발을 디디고 서야 할 바로 그 자리라고 믿습니다. 
 
어떤 책인가
 
47권의 책에 대한 서평을 통해 현대신학이라는 광대한 '영토'의 역사와 지경을 탐사하는 이 책은 5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인 '신학이란 무엇인가'에서는 슐라이어마허에서 한스 부어스마에 이르기까지 현대신학의 주요 흐름을 통시적으로 조망한 대표적 학자들의 책이 소개됩니다. 2부 '과거를 대하는 법'에서는 아돌프 폰 하르낙에서 후카이 토모아키에 이르기까지 역사를 읽는 다채로운 방법을 제시한 저자들을 통해 과거와 비판적이고 창조적으로 대화하는 현대신학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3부인 '현대 개신교 신학의 대가들'에서는 헤르만 바빙크에서부터 제임스 콘에 이르기까지 신학계에 큰 영향을 끼친 현대신학자 10인의 작품을 통해 현대 신학이 어떻게 형성되고 풍성해져 왔는지 알려 줍니다. 4부인 '한 몸 다른 전통'에서는 블라디미르 로스키에서 데이비드 벤틀리 하트에 이르기까지 현대 로마 가톨릭과 동방 정교회 신학을 대표하는 신학자들의 작품을 살핍니다. 마지막 5부인 '신학의 새로운 흐름'에서는 기후변화에서 동물권에 이르기까지 현대인의 삶에서 중요성이 부각되는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는 신학적 시도들을 소개합니다.
 
왜 <신학의 영토들>인가
 
그 결과 이 책은 시간적으로는 1766년생인 슐라이어마허에서 1974년생인 앤드류 루트까지, 교파 전통으로는 가톨릭과 개신교의 각 교파 및 동방 정교회에 이르기까지, 신학 사조로는 고전적 자유주의신학에서 시작해 생태신학·장애신학·동물신학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다른 현대신학 소개서들이 잘 다루지 않은 다양한 신학 전통과 최근 사조를 모두 포함한 다채롭고 풍성한 지형도를 선사합니다. 또한 저자는 15쪽 남짓한 각 서평에 단순히 책의 내용에 대한 충실한 소개를 넘어 저자의 생애와 신학 사상, 책의 신학사적 위치, 저자의 신학이 한국에서 수용된 과정과 평가까지 담아내, 독자가 입체적이고 심층적으로 책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그리고 서평 책을 고를 때도 전문가들이나 읽을 수 있는 벽돌 책이나 절판된 책들보다는 일반인들이 쉽게 구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서적들 위주로 선정했습니다. 이는 현대신학에 관심 있는 일반 그리스도인들이 이 책을 나침반 삼아 스스로 탐구의 길을 떠날 수 있도록 하는 저자의 배려로 보입니다. 이것이 <신학의 영토들>이 기존에 나와 있는 다양한 현대신학 소개서와 차별화되는 지점이자, '오늘 여기서' 현대신학에 관심을 가지고 그 영토를 탐사하기 원하는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책인 이유입니다.
 
대화와 협력
 
그러나 다양한 현대신학의 '영토'를 중립적 입장에서 충실하게 소개한 것만으로 이 책의 가치를 국한한다면 이는 심히 불공정한 처사가 될 것입니다. 저는 겉으로 보기에 단순한 서평 모음집처럼 보이는 이 책이 사실 '대화'와 '협력'을 향한 강력한 지향을 보여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대신학 자체가 다양한 '전통'의 도움으로 '현대성'과 대화하면서 기독교 신앙을 의미 있게 재진술하는 일이니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겠지요. 이러한 지향은 복음주의자들에게 낯선 현대 로마 가톨릭 신학과 동방 정교회 신학을 소개하는 '한 몸 다른 전통'과, 그간 신학의 대상으로 여겨지지 않던 현대적 이슈에 대한 신학의 응답을 다루는 '신학의 새로운 흐름'이 책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가장 잘 드러납니다. 개별적 서평들을 살펴봐도 현대 세속 학문의 성과를 차용하거나(해방신학), 다른 신학 전통의 지혜를 빌려 오거나(한스 부어스마), 화해라는 관점에서 기존의 생각을 뒤집는 등(발터 카스퍼), '대화'와 '협력'이라는 지향을 보여 주는 경우를 흔히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이 책에 소개된 학자들은 헤르만 바빙크나 존 웹스터처럼 전통을 소중히 여기는 분들조차 결코 현대성과의 대화를 소홀히 하지 않습니다. 저자 역시 각각의 서평 책을 평가하면서 부정적 측면을 들추기보다 수용해야 할 부분을 찾아내는 데 주력합니다. 저는 '대화'와 '협력'이라는 이 지향이야말로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위기에 빠진 오늘날의 한국교회에 던지는 강력한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는 'via media'를 모토로 삼는 비아출판사의 정신에도 부합한다고 생각합니다.
 
포스트휴먼으로의 전환?
 
이 책의 마지막 서평 제목은  '강아지가 알려준 은혜'입니다. 저자는 개가 인간 영아처럼 사람의 얼굴에 주목해 협력을 구하고 반응하는 유일한 동물이며, 공감과 유대감과 놀이라는 특성을 가진 ‘종교적 생명체’ (canis religionis)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스스로 용감하고 지혜롭게 인간을 선택해 특유의 상냥함과 충성심으로 인간에게 협력해 왔으며, 인간들이 민족, 국가, 이념 욕망 등에 눈이 멀어 타자 속의 사람됨을 보지 못할때도 모든 인간을 차별 없이 대하는 공의로운 동물이기도 하다고 강조합니다. 한 마디로 개는 자신만이 영혼을 가진 존재인 것처럼 우쭐대는 인간에게 비인간 생명체에게도 영혼이 있음을 알려주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왜 이 글이 책의 마지막을 차지하고 있을까요? 혹시 이제는 신학이 고질적인 '인간중심주의'와 '종 차별주의'에서 벗어나 ‘비인간 동물’을 포함한 모든 자연과 동료 피조물들과 함께 공생해야 한다는 '포스트휴먼'으로 전환할 때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왜 현대신학인가
 
제가 젊은 시절부터 현대신학에 매력을 느낀 이유는 그것이 우리 삶과 동떨어진 훈고訓詁가 아니라 오늘 우리의 현실 속에서 부딪히는 여러 문제들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대화하며 해답을 제시하기 위해서 분투하는 신학이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계시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적실한 형태와 메시지로 풀어내고, 21세기의 한반도라는 우리의 현실과 정면으로 부딪혀 복음의 능력으로 그 모순과 억압들을 샅샅이 드러내며 치유하는 그런 '정통' 신학은 과연 불가능한 것일까요? 우리가 서구의 특정 시기에 특정 신학자가 가꿔 놓은 오래된 꽃밭에서 딴 꽃으로 예쁘고 보암직한 꽃다발을 만드는 데만 열중해 있는 동안, 정작 우리 집 정원은 버려져 생명력을 잃은 채 황무지로 바뀌어 있는 것은 아닐까요?

혹시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는 한국교회의 위기가 그 증거는 아닌지 묻고 싶습니다. 저는 우리 시대 신학의 과제가 그간 기독교가 쌓아 온 풍요로운 신학적 유산과 근대 학문들의 놀라운 성취를 씨줄과 날줄 삼아 우리 시대의 새로운 '정통'을 직조해 가는 위험하지만 흥미진진한 모험의 여정에 참여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시대와 장소에서 이 과제에 맞서 치열하게 싸워 온 그리스도인들의 삶과 생각을 담은 이 매혹적인 책이 이제 우리 스스로의 여정을 위한 최고의 지도요 출발점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신학적 글쓰기의 전범
 
마지막으로 저자의 문체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네요. 김진혁 교수님의 문장은 대번에 전문 신학자가 썼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치밀하고 학문적이지만, 몇몇 신학 저자가 보여 주는 난삽함 없이 품위 있고 명쾌하며 이해하기 쉽습니다. 학문성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도 품위와 가독성을 동시에 갖춘 신학 글이라니! 저는 김진혁 교수님의 이 책이 신학적 글쓰기의 한 전범을 보여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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