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 예술/음악

음악가의 생활사 (니시하라 미노루 지음, 열대림 펴냄)

by 서음인 2016. 5. 27.

유럽의 18-19 세기는 계몽주의와 프랑스 혁명, 나폴레옹 시대와 산업혁명으로 이어지는 격동의 시대이자, 시민세력이 점차로 재산을 축적하면서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하는 때이기도 했다. 축적된 부를 바탕으로 안정되고 안락한 생활을 추구하던 이들 신흥 시민계급은 자신들의 생활을 장식하고 고급문화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음악이라는 수단을 적극 활용했으며, 그 결과 이 시대는  “명성과 평판과 스캔들이 어지러이 떠돌았고, 음악가들이 세상 여성들의 감동을 한몸에 받았던”  음악사적으로 아주 매력넘치는 시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변동에 따라 과거 귀족의 하인에 불과했던 음악가들은 사회적 해방과 신분상승의 기회를 얻게 되지만, 이는 대다수 음악가들에게 더 이상 안정적인 귀족의 후원을 기대할 수 없이 프리랜서로서 직접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냉혹한 현실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저자인 니시하리 미노루 교수는 이 책에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유명 음악가들뿐 아니라, “명성과 평판을 쫒아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이 살롱에서 저 살롱으로, 때로는 거리의 예능인이 되거나, 때로는 무대 위에서 사람을 불러모으기도 하고, 연주회를 열기 위해 도시의 유력자를 찾아다니며 비위를 맞추고, 혼자서 매니지먼트든 뭐든 다 해결하며, 잠간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도 하지만, 변덕스러운 청중들에게 금방 잊혀져 사라져 간” 수많은 무명 음악가들까지 포함하여, 이 시대를 살아갔던 음악가들의 삶과 당시의 음악생활, 그리고 그들의 삶에 투영된 당대 사회의 모습을 다양한 자료를 인용하며 흥미롭게 서술한다. 이 책은 음악사적으로 중요한 작가나 작품 혹은 지배적 음악사조만을 다루고 있는 대다수의 음악관련 서적과는 달리,  18-19 세기를 살았던 음악가들의 삶을 '날 것 그대로' 보여주는 '음악가의 생활사', 혹은 음악/음악가라는 창을 통해 바라본 당대의 사회사 혹은 풍속사라고 할 수 있다.  


특별히 이 책이 가지는 중요한 미덕 중 하나는 취약한 사회적 현실에 처해 있는 무명 음악가들을 위한 후원을 아끼지 않았던 리스트나 음악비평을 통해 시류에 영합하는 얄팍한 작품이나 당대인들의 속물근성을 통렬하게 비판한 베를리오즈나 슈만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고 노력했던 몇몇 유명한 음악가들의 숨겨진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음악가란 세상과 격리된 채 예술적 성취를 위해 끊임없이 정진하는 고독한 천재라는 일반적 인식과는 달리, 당대인들과 함께 살고 함께 고민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시대적 사회적 책무에 성실하게 응답할 의무를 가진 “사회적 존재”임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본문 맛보기


악장은 궁정 안에서 어떤 지위에 해당하며 어떤 신분이었을까? 악장 하면 듣기에는 좋지만 실제로는 오늘날의 중간 관리직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무리 악장이라 해도 궁정 안에서는 한낱 고용인에 불과했기 때문에 모든 일에 대해 군주 및 감독 임원의 명령에 복종해야 했다. 만약 이를 따르지 않으면, 일찍이 거장 바흐가 바이마르 궁정에서 쾨텐으로 옮겨갈 때 영주가 이를 인정하지 않아 오히려 불복종죄로 한달 동안 감옥에 갇혀야 했듯, 그에 상응하는 형을 복역해야 했다 ..... 작센 궁정은 국왕 아래 시종장이 있었고, 각 직무에 10개의 상급직이 있었다. 여기에는 시종, 거마 관리관, 주류 급사, 요리장, 사냥 관리관, 왕비 가정교사, 매 관리관, 보물관장, 장관, 통신장이 있었다. 다음으로 젊은 시종 80명 시동 30명과 함께 음악가가 위치했다. (악장이 되려면 中)


조명은 사람들의 사회생활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조명을 생활의 수단으로 삼을 뿐 아니라 생활을 장식하고 즐기는 도구로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음악의 사회적 의미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음악은 본래 시간예술임에도 불구하고 음악회에서는 음악 이외의 시각적 요소, 즉 빛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 연주회장의 조명은 단지 연주회장을 밝힌다는 의미에 머물지 않는, 이와는 다른 측면을 지니고 있었다 ..... 빛은 문명의 상징이었다. 밤이라는 어둠의 세계는 빛이라는 수단을 얻음으로서 점차 정복되었고, 밤도 낮 못지않은 생활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이다 ...... 연주가가 무대에서 연주회를 개최할 때, 경비 면에서 가장 부담을 느끼는 것이 바로 이 조명 비용이었다. 왜냐하면 당시에 초는 매우 고가의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음악가의 시간표, 도시의 밤은 길다 中)


예전에는 밤을 귀족계층이 독점했었다. 그러나 산업화가 조금씩 진행되면서 시민사회가 확립되어 감에 따라 상층 시민뿐 아니라 하층 시민으로 분류된 소매상이나 산업 노동자도 여가 활동을 찾게 되었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음주와 댄스를 함께 즐길 수 있고 음악도 들을 수 있는 오락의 장이었다. 그리하여 서민도 점차 밤 시간을 공유하게 되었다 ....... 이와 같은 서민을 위한 시설이나 극장은 런던 뿐 아니라 빈이나 파리에도 개장하기에 이른다. 고상한 연주회장과 달리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였지만 사람들에게 음악을 공급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장소이기도 했다 .... 마차 대신에 걸어서 갈 수 있고, 흰 장갑 대신에 검게 그을린 맨손을 한 채 달려가는 댄스홀은 서민에게 귀족의 기분을 맛보게 해주었다. 눈부신 샹들리에, 커다란 거울, 그리고 장식으로 가득한 벽, 호화롭게 보이지만 어딘가 도금을 한 듯한 이 댄스홀은 저렴한 가격으로 사람들의 바람을 충족시켜 주었다. (연주회장의 색다른 즐거움 中)


사회의 부가 특정 개인에게 집중해 있던 시대에서 벗어나 부의 확산이 이루어지면서 이름 없는 대중도 부를 축적할 수 있게 되었고 음악회가 가진 사회적 기능에도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청중이 음악 작품에 대해 자유롭게 비판을 가하면서 음악회가 모두의 것이 되기 시작한 것은 물론이고, 음악이 아닌 음악회 자체가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음악회가 소란스럽다는 것은 이 시대 음악의 양상을 가장 잘 반영한 현상이었다. 시민이 기대하는 것은 연주되는 음악이 얼마나 훌륭한가 하는 것이 아니라, 연주회장이 얼마나 화려하게 장식을 했는지, 샹들리에는 얼마나 멋진지, 상류층의 문화와 얼마나 비슷하게 꾸몄는지 하는 것이었다. (연주회장의 색다른 즐거움 中)


19세기에 음악가가 펜을 잡은 것은 분명 음악과 시적인 관념의 융합을 주장하는 낭만주의의 영향이었다. 예를 들어 슈만의 음악비평 배경에는 음악과 언어라는 의식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미학적 문제를 넘어 이들은 이른바 사회 참여로서 음악 이외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았다 ...... 인기 없는 가난한 작곡가 베를리오즈가 생활비를 벌기 위해 비평가가 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본업인 작곡만으로는 충분한 생활비를 벌 수 없기 때문이었다 .... 그러나 베를리오즈가 단순이 평론을 부업 삼아 하는 그저 그런 평론가로 머물지 않은 것은 비평 활동이 가진 사회적 역할을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비평은 위험한 일이다”라는 말에는 그의 심정이 담겨 있다. 그는, 치기 어린 정열이 이끄는 대로 더 나은 취미를 찾아 ‘관능 본위’로 흐르는 감상적인 음악에 과감하게 논쟁을 걸었다. 그리고 쏟아지는 비판과 그의 같은 수준의, 혹은 그 이상의 증오를 한 몸에 받았다. (펜을 든 음악가 中)


리스트는 명실상부 영광과 존경을 한몸에 받는 비르투오소이자 작곡가였다. 문필가로서의 존재감은 그러한 명성의 그늘에 가려졌으나, 리스트가 슈만이나 바그너를 능가하며 글을 통해 사회에서 큰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음악가 리스트가 위대했다는 것은 그가 훌륭한 비르투오소였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 자신이 모든 영광을 한 몸에 받으면서도 재능이 있지만 크게 빛을 보지 못하는 다른 음악가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냈다는 점에도 그 위대함이 있다. 세상으로부터 전해 이해를 받지 못하고 그저 이단아 음악가로 불린 베를리오즈나 바그너, 쇼팽, 슈만 등의 작품을 솔선해서 연주회에 올림으로서 그는 음악가의 활동에 대해 예술적인 측면뿐 아니라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리스트가 활동했던 바이마르는 이들 재능 있는 음악가가 다시한번 평가받을 수 있는 장이었던 것이다 ..... 리스트만큼 당시 음악계나 사회에 분노한 작곡가는 없었다. 또한 리스트만큼 음악과 사회의 관계에 주목한 작곡가도 없었다. 리스트는 소팽이나 베를리오즈에게 했듯 개인적 아원의 구제뿐 아니라, 사회적 저변에 감춰진 모든 예술가의 구제나 지위 향상에도 관심에도 관심을 갖고 활동했다. (펜을 든 음악가 中)



목차


1부 군중 속 음악가


1장 음악가의 데뷔

청중을 확보하라!/무료 초대권과 티켓 홍보

2장 여행하는 음악가

연주여행, 그 고단한 여정/길 위의 음악가들

3장 음악가의 수입

음악가의 급여와 대우/음악가 상조회

4장 악장이 되려면

악장은 중간 관리직/지휘자는 박자 도우미?

5장 음악을 파는 음악가

부업에 매달리는 음악가들/이런저런 출판 부업


2부 금박 입힌 샹들리에


1장 음악가의 시간표

귀족의 하루 시간표/늦어지는 연주회/길어지는 연주회

2장 도시의 밤은 길다

조명과 밤의 활기/조명 사용료는 연주가의 몫/빛, 별천지를 선사하다

3장 연주회장의 색다른 즐거움

음악을 듣지 않는 청중/왁자지껄 댄스홀

4장 뒤죽박죽이 된 프로그램

다양한 취향의 관객층/정기 연주회의 등장

5장 음악의 경제학

연주회의 티켓 가격/베토벤의 협상력


3부 저널리즘 속 음악가


1장 비평에 죽고 사는 음악가

음악 잡지의 탄생/누가 신문을 읽는가?

2장 음악 신문 게시판

음악가의 구직 광고/자극적인 화제와 테마

3장 저작권을 둘러싼 분쟁

누가 곡을 훔쳤을까?/베토벤과 훔멜의 투쟁

4장 펜을 든 음악가

비평가 베를리오즈와 음악의 무릉도원/리스트와 가난한 음악가들/슈만의 속물 비판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