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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 이야기

우산과 재봉틀이 해부대를 만난 날 - 힐리어드 앙상블의 "Officium"

by 서음인 2016. 6. 1.

“우산과 재봉틀이 해부대 위에서 만난 것처럼 아름답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지극히 일상적인 사물들의 배치를 바꿔 전혀 다른 맥락에 위치시켰을 때 경험하게 되는 ‘아름다움’의 느낌을 표현한 말입니다. 프랑스의 시인인 로트레아몽의 詩句 중 하나라는 이 말을 가장 잘 체현한 예술가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초현실주의 화가인 르네 마그리트 아닐까 합니다.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사물들은, 그러나 일상적 감각의 세계와는 전혀 다른 맥락에 위치함으로서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과 전에는 알지 못했던 새로운 ‘아름다움’ 의 경험을 선사합니다.

 

이 음반 Officium 에서는 남성 네 명만으로 구성된 세계적인 고음악 연주단체인  힐리어드 앙상블과 색소폰 주자인 Jan Gavarek이 함께 모랄레스나 기욤 뒤파이와 같은 14-5 세기의 유명한 작곡가들의 아카펠라 종교음악들을 연주합니다. 경건의 극치를 달리는 중세의 아카펠라 종교음악과, 뭔가 좀 세속적인 냄새를 풍기는 색소폰의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조합은, 그러나 너무도 투명하고 아름다운 울림으로 가슴속을 파고듭니다. 그렇다면 이 독특한 연주야말로 음악으로 구현된 초현실주의가 아닐까요?

 

 갑자기 인류가 경험한 최고의 초현실주의적 퍼포먼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삼위 하나님 중의 한분이신 예수님께서 식민지 변방의 식민지 말구유에서 태어나신 것과, 인간이 맛볼 수 있는 최고의 치욕인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맞이하신 것이야말로 진정한 초현실주의적 사건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뿐 아니라 그 처참한 십자가가 오늘날 인류가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은혜요 '아름다움'이 되었으니,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신 것처럼 아름답다”는 말을 새로 만들어야 되는 것이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하나님이야말로 최고의 초현실주의 예술가가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언뜻 머리를 스치고 지나갑니다. (2011, 4)


힐리어드 양상블의 Officium



“우산과 재봉틀이 해부대 위에서 만난 것처럼 아름다운” 마그리트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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