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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기독교저자/C.S. 루이스 외

정통 (G.K. 체스터튼 지음, 상상북스 펴냄)

by 서음인 2016. 6. 1.

현대를 흔히 “이단의 시대” 라고 한다. ‘올바른 것’ 보다는  ‘다른 것’, ‘기발한 것’이 더 바람직하게 여겨지고 환영받는 시대라는 뜻이다. 그러다보니 정통(Orthodoxy) 이라는 말은 ‘고루한’ 혹은 ‘시대에 뒤진’ 이라는 말과 동의어가 되고 말았다. 20세기 초, 탁월한 저널리스트요 ‘브라운 신부’를 주인공으로 하는 유명한 추리소설 시리즈의 저자인 영국인 한 사람이 그 나름의 ‘이단’을 창설하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미지의 땅을 찾아나선 긴 여정 끝에 그가 도달한 곳은 바로 정통신앙(Orthodoxy) 이라는 그의 집 앞마당이었다!! 그 영국인, 체스터튼의 영적 탐구의 기록인 이 책은 C.S. 루이스나 필립 얀시와 같은 영적 거인들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으며, Christianity Today를 비롯한 수많은 매체로부터 20세기 복음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저술의 하나로 선정되기도 하었다.

 

그는 특유의 위트와 역설로 정통신앙이야말로 인생의 법칙성과 신비를 동시에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며, 그다지 달갑지 않은 정통신앙의 가르침이야말로 알고 보면 삶의 버팀목이요 지지대라고 주장한다. 저자에 의하면 정통신앙의 세계는 지극히 일상적이고 상식적인 세계이자, 동시에 동화처럼 경이로운 모험과 상상력이 허용되는 세계이며, 이같이 일상과 경이라는 모순되는 두 진리를 동시에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정통신앙의 교리다. 따라서 우리의 선입견과는 달리 정통신앙보다 더 위험하고 흥미진진한 것은 없으며, 오히려 저자의 시대에 득세하던 (좁은 의미의)자유주의적 기독교야말로 사실이 아닌 dogma 에 기반한 믿음이자, 경이와 신비를 허용하지 않는 따분하고 편협한 결정론적 세계관일 뿐이다. 저자 특유의 역설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상상력이 광기를 낳는 것이 아니라 광기를 낳는 것은 오히려 이성이며, 비전은 언제나 사실이나 오히려 사기를 치는 것은 현실" 이다.

 

또한 저자는 인간이 스스로에 대해서는 의심을 품을 수 있지만 진리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에 대해서 의심을 품지 말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제 인간은 자신을 신뢰하고 진리 자체(신적인 이성 Divine Reason)를 의심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인류가 얼마나 이상을 이루는데 실패했는가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얼마나 그 이상을 자주 바꾸는지는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왜냐하면 표준과 실제가 변화된다는 생각이야말로 의미 있는 변화 자체를 불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저자의 표현대로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를 여행할 때 보다는 교리와 설계의 숲, 권위가 있는 땅을 여행할 때 훨씬 더 많은 의미를 얻을 수 있는 법이다 .

 

또한 저자에 의하면 오늘날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세상 속에 있는 많은 좋은 것들 - 음악, 사랑, 자연 등 - 은 타락과 원죄라는 인류의 거대한 파선의 잔유물로서, 어둠에 가려진 실재(천국)의 본질을 나타내 주는 실마리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오늘날 가장 평판이 나쁜 정통신앙의 가르침 하나인 타락과 원죄의 교리야말로 기독교인이 보수주의자일 수 없는 가장 강력한 이유다. 모든 인간이 하나님 앞에 평등한 죄인이라는 원죄의 교리를 가진 정통신앙만이 부자와 기득권자에 대해 가장 철저히 비판적일 수 있으며, 개혁이나 혁명이라는 단어가 곧 파선 이전으로의 회복을 의미한다면 정통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가장 급진적으로 혁명을 추구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개혁을 원한다면 반드시 정통기독교에 붙어 있어야 하며, 역설적으로 기존 제도의 현상유지를 바란다면 종교적 믿음이 사라지도록 내버려 두면 된다. 이와 같이 정통 신앙의 환영받지 못하는 가르침이야말로 알고 보면 건전한 우리 삶의 버팀목이요 지지대로 작용하고 있다고 체스터튼은 강조하고 있다.

 

 오늘날 한국의 “보수”, “정통” 기독교는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한 채 만신창이가 되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문제의 근원은 정통신앙 자체가 가지는 보수성과 편협성 그 자체라고 주장한다. 상당히 일리 있는 주장이다. 그러나 만약 체스터튼의 말대로 정통신앙을 가지는 것이 죄에 물든 세상의 질서에 대해 비판적이고 혁명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어떻게 성직매매나 목회세습 같이 비그리스도인들도 부끄러워할 만한 일들을 '정통' 의 이름 아래서 서슴 없이 자행할 수 있겠는가?  그런 일을 행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큰 교회의 목회자든 입술로 어떤 신앙을 고백하든 하나님 대신에 돈과 권력을 숭배하는 실천적 무신론자(practical atheist)일 뿐이다. 체스터튼의 주장에 대한 동의 여부를 떠나 이 책에서 보여주는 정통신앙(Orthoidoxy) 이라는 이름이 그런 자들에 의해 더럽혀지기에는 너무 아깝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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