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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기독교저자/C.S. 루이스 외

천국과 지옥의 이혼 (C.S. 루이스 지음, 홍성사 펴냄)

by 서음인 2016. 5. 27.

“나니아 이야기”를 읽을 때도 그랬지만 이 책 “천국과 지옥의 이혼”을 접하고 보니 C.S. 루이스의 진면목은 그의 유명한 변증서들만큼이나, 탁월한 상상력에 빛나는 신학적 판타지物 들에서 잘 나타난다는 생각이 든다. 지옥의 영혼들이 천국을 방문하지만 결국은 여러 가지 이유로 천국을 거부하고 지옥으로 돌아간다는 이 짧지만 재미있는 이야기를 통해 저자는 지옥이란 결국 인생의 많은 선택들을 통해 각자가 스스로에게 부과한 결과일 뿐이며, 악이란 하나님 자신보다 하나님에 대한 무엇, 하나님을 위한 무엇, 하나님이 주시는 무엇을 더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저자는 전통적인 기독교의 이해를 따라 지옥이나 악은 아무리 강고하고 확실해 보일지라도 결국은 그림자요 흔적일 뿐이며, 선 혹은 천국이야말로 진정 영원하고 견고한 실재라고 우리에게 알려준다. 악이 언제나 득세하는 것처럼 보이는 오늘 우리의 현실에서 새삼 얼마나 커다란 위로가 되는 사실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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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심리 상태도 그대로 방치해 두면, 즉 피조물이 자기 마음의 감옥 속에 자신을 가두어 고립을 자초하다 보면 결국 지옥이 되는 게야. 하지만 천국은 심리 상태가 아닐세. 천국은 실재 그 자체야. 철저히 실재적인 것이야말로 천상의 것일세. 흔들릴 것은 다 흔들려 사라지고 오로지 흔들리지 않는 것만이 남는 거니까.”


“세상에는 딱 두 종류의 인간밖에 없어. 하나님께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라고 말하는 인간들과 하나님의 입에서 끝내 ‘그래 네 뜻대로 되게 해 주마’ 라는 말을 듣고야 마는 인간들. 지옥에 있는 자들은 전부 자기가 선택해서 거기 있게 된 걸세. 자발적인 선택이라는 게 없다면 지옥도 없을 게야”


“버림받은 영혼들의 선택은 ‘천국에서 섬기느니 차라리 지옥에서 지배하는 편이 낫다’는 말로 표현될 수 있다네. 사람들이 비참한 댓가를 치르면서까지 지키려고 고집하는 것들이 늘 있게 마련이지. 사람들이 기쁨보다 더 좋아하는 것, 즉 실재보다 더 좋아하는 것을 늘 갖고 있다네..”


"구원받는 자들에게는 천국의 골짜기뿐 아니라 지상에서 살았던 과거도 모두 천국이 되는 거라네. 저주받은 자들에게는 회색 도시의 황혼뿐 아니라 지상에서 살았던 삶 전체가 지옥이 되는 거고. 천국을 일단 얻고 나면 그것이 과거의 괴로움에 소급적으로 작용해서 그 괴로움을 영광으로 변화시킨다는 사실을 모르는 게지. 또 인간들은 죄스러운 쾌락을 누릴 때 '이번만 즐기고 대가는 나중에 치르자' 라고 말하지만 나중에 받은 저주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그 죄의 쾌락을 얼룩지게 만든다는 사실 또한 꿈에도 모른다네....이것이 종말의 날에 축복받은 자들은 ‘우린 천국이 아닌 곳에서 살았던 적이 없어’ 라고 말하게 되는 이유이며, 버림받은 자들은 ‘우린 항상 지옥에 있었다’ 라고 말하게 되는 이유라네.”


“저주받은 영혼은 무無에 가깝거든. 쭈그러들어 자기 안에 갇혀 버렸지. 음파가 귀머거리의 고막을 두드리듯 선이 저주받은 영혼을 끝없이 두드려도 그들은 받아들일 수가 없다네. 그들은 주먹을 꽉 쥐고 있고, 이를 악물고 있으며, 두 눈을 꼭 감고 있지. 물론 처음에는 자의로 거부하지만 나중에는 선물을 받고 싶어도 손을 펴지 못하고, 보고 싶어도 눈을 뜨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네.”


“문제는 저 여자가 불평하고 있는 것인가, 불평 그 자체가 불평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데 있다네. 저 불평의 껍데기 속에 진짜 여자가 아직도 있다면 그 속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지. 그러나 더 이상 그렇게 할 수 없는 날이 온다네. 그때는 이미 그런 기분을 비판할 자기 자신, 아니 그런 불평을 즐기는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 없어져 버리지. 그저 기계처럼 불평 그 자체가 쏟아져 나올 뿐일세.”


“시인이나 음악가나 예술가에게 은혜가 임하지 않으면 자기가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에 대한 사랑에서 점점 더 멀어져 이야기하는 일 그 자체를 사랑하게 되지요. 그리하여 저 깊은 지옥(Deep Hell) 에서, 정작 하나님께는 아무 관심도 없으면서 하나님에 대해 말하는 데만 몰두하게 됩니다”.


“정욕을 숭배하는 가짜 종교는 모성애나 애국심이나 예술을 숭배하는 가짜 종교보다 저급한 거라네. 그러나 정욕이 종교가 될 가능성은 모성애나 애국심이나 예술이 종교가 될 가능성보다 적은 법이네....”


"자연스러운 애정 속에는 자연스러운 욕구보다 훨씬 더 쉽게 사람을 영원한 사랑의 길로 인도할만한 뭔가가 들어 있다네. 하지만 자연스러운 수준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마치 천국의 수준에 이른 양 착각하게 되기도 훨씬 더 쉽지.....인간들이 이해하는 사랑으로는 충분치 않다네. 그 자연스러운 사랑은 이 나라에게 다시 살아나 영생을 얻게 될 걸세. 그러나 무엇이든지 먼저 죽어서 묻히지 않으면 다시 살아날 수 없는 법이야....아무리 좋고 숭고한 것이라도 지금 모습 그대로는 절대 갈 수 없다네. 또 아무리 저급하고 야만적인 것이라도 죽음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모두 다시 살아날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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