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 기독교/사회

광장에 선 기독교 - 공적 신앙이란 무엇인가 (미로슬라브 볼프 지음, ivp 펴냄)

by 서음인 2016. 6. 2.

요약 이 책에서 저자의 핵심적 주장은 서구의 다원화된 '세속국가'에서 종교적 전체주의(religious totalitarianism)에 대한 우려로 공적영역에서 철저하게 추방된 '종교'를 다시 공공 영역으로 복귀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1) 모든 종교를 공적 영역에서 배제하는 '세속주의'나 (2) 특정 종교가 공적영역을 지배하는 '종교적 전체주의' 대신, (3) 정치적 다원주의를 수용하는 모든 종교인들이 각자 생각하는 바람직한 삶의 이상을 공적 영역에서 자유롭게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종교적인 정치적 다원주의(religious political pluralism)' 를 대안으로 제시합니다. 그리고 기독교는 본질상 모든 이들의 삶의 번영과 공공선을 위해 일하도록 부름받은 예언자적 종교이고, 종교적 전체주의보다는 정치적 다원주의와 훨씬 더 친화적인 종교이기에 저자의 기획인 '종교적인 정치적 다원주의'가 세속화되고 다원화된 현대 (서구)사회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며 적실한 기독교적 입장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전 인구의 20%미만에 불과한 기독교인들이 이 나라를 기독교국가로 착각하며 더불어 함께 살아가야 할 타종교인과 소수자들을 혐오하고 적대시하는 모습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적어도 현 상태의 우리 나라에서는 종교적 전체주의의 발호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세속주의'라는 정치적 모델이 훨씬 좋은 선택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1. 현대 사회는 특정 종교의 고유한 삶의 방식을 타인에게 폭력적으로 강요하는 종교적 전체주의에 대한 우려로 공적 영역에서 종교를 철저하게 배제한 채 인간의 이성만을 지침으로 삼아야 한다는 세속국가(secular state)의 모델이 지배적 형태로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신앙인들이 정치를 포함한 공적 영역에서 자신의 신앙적 이상을 제시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은 또다른 형태의 억압이자 평화를 만드는 종교의 기여를 과소평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시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기독교 신학자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이 책의 저자 미로슬라브 볼프(Miroslav Wolf) 는 하나의 종교가 공적 영역을 지배하는 종교적 전체주의와 모든 종교를 공공생활에서 배제하는 세속국가의 입장 모두에 대한 대안으로, 종교인들이 각자 생각하는 바람직한 삶의 이상을 공적 영역에서 자유롭게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종교적인 정치적 다원주의 (religious political pluralism)를 제시한다.

2. 기독교는 세상으로부터 신에게로 도피하려는 신비주의적 종교와 달리 신의 이름으로 세상을 고치고자 하는 예언자 신앙이며, 이 세상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은 타인을 돌보고 그들의 번영과 공공선을 위해 일하는 것이다. 이러한 예언자적 신앙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신과의 만남을 통해 메시지를 받는 수용적인 사건인 상승(ascend)과 이 세상 속에서 메시지가 전파되고 실행되는 창조적인 사건인 회귀(return)가 모두 필요하며, 둘 중 하나라도 문제가 생기면 기능장애가 발생하게 된다. (1) 상승 기능장애에는 ① 상승이 일어나지 않았음에도 종교적 언어나 의례로 상승을 위장하는 기능축소와 ② 이해하기 어려운 신의 이미지를 사람들이 선호하는 형상으로 바꾸어 제시하는 우상으로 대체가 있으며, (2) 회귀 기능장애에는 ① 세상의 유혹이나 체제의 힘에 굴복하거나 기독교 신앙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는 신앙의 나태함과 ② 신앙에 따르는 삶의 방식을 강제적으로 타인에게 강요하는 억압이 있다.

3. 현재 서구인들은 과거 가졌던 하나님 및 보편적 인간 공동체와의 관계를 상실한 채 개인의 경험적 만족만을 삶의 번영의 목표로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예언자적 신앙인 기독교는 사적이고 공적인 영역을 포괄하는 삶의 전 분야에서 실재의 근원이자 목적인 하나님의 생각과 일치하는 기독교적 가치를 실천하여 모든 이들의 삶의 번영과 공공선을 위해 일하도록 부름받았다. 따라서 나태하거나 있으나마나 한 신앙, 그래서 세상을 고치려고 하지 않는 신앙은 심각한 기능장애를 일으킨 것이다. 또한 기독교의 삼위일체적 유일신은 폐쇄적이거나 폭력적이지 않고 서로 환대하는 관대함을 그 특징으로 지니며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에 오셔서 죄인들이 당해야 하는 폭력과 죽음을 대신 당하신 분이시기에, 기독교 신앙에 따르는 삶의 방식을 폭력적으로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은 그 자체가 모순이자 심각한 기능장애에 빠진 것이다. 표층적이면서 열정적인 신앙의 실천은 폭력을 촉진하기 쉬우나 심층적이면서 헌신된 실천은 평화의 문화를 낳고 유지한다.

4. 기독교 공동체는 종교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다원화된 서구 세계에서 더 이상 주도적 세력이 아닌 수많은 행위자 중 하나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며, 주변부든 중심부든 그가 처한 그 자리에서 인간의 번영과 공공선을 추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1) 고전적 자유주의의 프로그램인 적응이나 (2) 후기 자유주의의 프로그램인 순응의 방향의 반전 (3) 분리주의적 프로그램인 세상으로부터의 철수 대신 (4) 떠나지 않으면서 다르게 사는 것, 즉 세상 속에서 내부적 차이로 존재하는 방식으로 세상과 관계맺어야 한다. 기독교의 정체성은 외부적인 것을 거부하고 싸워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핵심 요소를 강조하고 외부적 요소를 포용함으로서 형성되며, 외부 대상과의 관계는 대립과 투쟁이 아닌 사랑으로 지배되어야 한다.

5.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명령과 이웃 사랑의 정신에 따라 그들이 가진 지혜를 모든 인류와 함께 나누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 사람들에게 지혜를 나눠 주시는 일은 오직 그리스도만이 할 수 있으며, 그리스도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은 지혜를 나누는 통로가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인간의 번영을 위해 일하는 방식은 인간의 번영과 공공선에 대한 그들의 지혜와 비전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선한 삶을 이 세상에 실현하시는 그리스도에 대한 증인이 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그리스도인들도 때로는 지혜를 나누는 대상으로부터 자신들의 신념과 관행을 흔들어 놓을 예언적 자극과 도전을 받을 수 있고 또 받아야 하며, 이 경우 진리와 비진리, 받아들임과 배척을 구별하는 기준은 성서의 내러티브와 공명하고 병존할 수 있는지의 여부이다. 지혜의 나눔은 이웃 사랑의 실천이며, 용서는 기독교가 지닌 지혜의 핵심이다.

6. 종교인들이 공적 영역에서 자신의 신앙적 이상을 제시하는 것을 금지하는 세속국가의 이념은 종교의 기능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불공정한 처사이자 종교에 대한 일종의 억압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저자는 모든 종교 공동체가 공적 영역에서 자신들의 종교적 목소리로 다양한 주장을 펴고, 국가는 모든 공동체를 공정하게 대하는 종교적인 정치적 다원주의 (religious pluralism)가 종교적 전체주의와 세속주의의 대안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스도는 정치적 질서를 위한 청사진을 가지고 오시지 않았으며 다양한 정치 질서는 기독교 신앙과 병립할 수 있다. 그러나 다원화된 세상 속에서 “무엇이든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마 7;12) 는 그리스도의 명령에는 그리스도인이 다른 신앙 공동체들에게 자신들이 스스로를 위해 요구하는 것과 같은 종교적 정치적인 자유를 부여하는 것이 포함된다. 배타적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도 그리스도인들은 정치적 기획으로서 다원주의를 포용해야 한다.

7. 기독교의 유일신 신앙은 종교적 전체주의를 거부하며 정치적 다원주의를 선호한다. (1)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은 우리에게 이웃 사랑이라는 신의 명령을 따라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다른 사람들을 대접하게 하도록 만든다. (2) 기독교의 유일신 신앙은 한 분이신 신에 대한 궁극적 충성을 강조하지만, 하나님의 계시는 삶의 구체적 문제까지 규정하고 있지는 않으며 계시에 대한 인간의 이해 역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공동체를 형성하는 삶의 방식이나 가치, 규율은 계시에서 직접 도출되기보다는 계시와 병존하는 것으로 충분하며, 과학 철학 타종교를 포함한 다양한 근원에서 나올 수 있다. (3) 종교의 의무는 직접 정치권력을 취하거나 영구적 가치가 있는 단 하나의 구체적 삶의 방식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는 하나의 문화나 문명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다양한 문화와 문명 속에서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다. (3) 하나님의 율법은 보편적으로 유효하지만, 사람들의 의지에 반대되지 않는 민주적 절차에 의해 이 땅에 부과되어야 한다. 신앙은 선물로 주어지고 자발적으로 받아들여져야 하며, 율법으로서 강요되어서는 안된다.

8. 두 가지 단상을 덧붙이도록 한다.

(1) 이 땅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한국을 기독교 국가로 만들겠다는 꿈을 꾸고 있거나 심지어는 이미 기독교 국가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선교학적으로 보자면 한국은 아직 “복음화된 국가”가 아닌 기독교 인구가 20% 미만에 불과한 “복음화되어야 할 국가” 에 속하며,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서 누리는 종교의 자유는 전체 인구의 4/5 이상을 차지하는 무종교인 및 타종교인들의 관용과 다원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세속국가라는 한국의 정치체제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실제로 세계에서 가장 종교적 자유를 잘 보장하는 나라, 가장 기독교가 융성한 나라들은 하나같이 다원주의를 포용하는 세속국가들이며, 역사와 현실은 종교적이든 이데올로기적이든 어떠한 종류의 전체주의도 결국은 지옥으로 귀결될 뿐이라는 사실을 알려 준다. 하늘의 질서를 이 땅에 제도나 폭력으로 강제하겠다는 것 자체가 심히 혐오스럽고 불경한 생각일 뿐이다.

(2) 저자의 결론인 종교적인 정치적 다원주의(religious political pluralism)는 과연 옳은 대안인가?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종교적 공간이 아닌 공적 영역에서도 특정 종교나 삶의 방식을 공공연하게 정죄하거나 배제해야 한다는 주장을 거리낌없이 쏟아내고, 신앙의 이름으로 공론장을 점거하거나 폭력을 사용하면서도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며, 식민통치가 하나님의 뜻이라는 천박한 역사인식이나 특정 도시를 하나님께 봉헌한다는 미신적 행위를 좋은 믿음으로 간주하는 정서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오늘날 우리의 상황에서, 차라리 종교적 근본주의의 발호를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세속국가의 이념이 현실적으로 더 나은 처방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타자나 타종교를 관용하지 못하는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은 일부 이슬람 국가들이 기독교인을 박해하며 차별하는 것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항의할 것인가? 나는 진리고 너는 거짓이니 나는 너를 차별해도 되지만 너는 나를 차별하면 안된다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