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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기독교/사회

사회적 하나님 (케네스 리치 지음, 청림출판 펴냄)

by 서음인 2016. 5. 31.

1. “현존하는 세계적 영성 신학자” 이자 “그리스도교의 신비 전통과 관상 전통을 세상을 향한 연민과 사랑으로 연결짓는 탁월한 사회 신학자” 라는 저자에 대한 소개는 흥미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영성과 정의의 만남이라니!

 

2. 저자는 기독교가 본질적으로 사회적이며 참여적이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삼위일체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이 사회적이며, 그 하나님의 성육신이 참여적이기 때문이다. 성육신 신앙은 이 땅의 관심사에서 떨어진 객체로서의 신이라는 개념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인간과 물질세계를 중시하는 신학으로, 기독교적인 사회적 관심의 기초이며 “기독교 유물론”의 핵심이 된다. 우리가 급진적이지도 사회적이지도 않은 이유는 근본적으로 삼위일체성육신이라는 성경의 가르침에 충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3. 기독교적 사회 참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세상의 필요에 대해 집중하기에 앞서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품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깊은 기도와 성령충만한 삶이 필수적이다. 오늘날 서구 그리스도인의 삶에 나타나는 병리현상은 신비적인 것과 사회 정치적인 것, 즉 관상적인 것과 예언적인 것의 본질적 결합의 파괴가 그 원인이며, 진정한 사회참여의 신학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하나님 나라의 비전과 정치적인 갈등, 신비적인 것과 예언적인 것, 내면 세계와 외면 세계 사이의 일치를 추구해야 한다. 정치와 단절된 영성이 도피적이라면 영성을 떠난 사회, 정치운동은 반인간주의적이며 전체주의적이다. 하나님 사랑과 형제 사랑은 분리될 수 없다.

 

4. 저자는 유명한 영성가인 토마스 머튼을 인용하여 불의에 대한 저항의 원천은 고독과 관상, 즉 한 인간의 깊은 홀로됨 속에 있다고 말한다. 관상이란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전과 그에 반하는 세상의 불의와 압제를 명료하게 “보고” “인식하는” 행위이며, 거짓을 꿰뚫는 진리의 말씀으로 그릇된 의식과 그에 근거한 세계에 맞서는 위험한 행위라는 것이다. 이러한 기독교적 관상과 영성의 목표는 개인의 내적 평화가 아닌 하나님 나라이며 여기에는 현실과의 갈등과 그에 따르는 치열한 영적 전쟁이 필연적으로 뒤따르게 된다. 저자는 관상을 갈등회피와 내면의 평화라는 심리학의 영역으로 축소시키는 것은 결국 맹목과 무지 속에서 자신 속으로 침잠하게 되는 사이비 내면성의 수렁에 빠지게 되는 것이며, 관상이라는 내적 투쟁으로부터 나오지 않은 저항은 피상적이 되거나 광신의 나락에 빠지게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관상이 일어나야 할 참된 장소는 “밀과 가라지가 자라며 비전과 타협이 공존하며 자비와 죄가 자라는 들판” 즉 부정의로 가득한 이 세상, 정치의 세계다.

 

5. 마귀란 뒤틀린 사회 정치적 구조나 제도를 상징하며, 따라서 신약에서의 귀신축출이란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보여주는 상징임과 더불어 타락한 세상에서 노예된 개인과 집단을 해방하는 정치적 개념이기도 하다. 이런 관점에서 저자는 악을 개인의 심리적 영역 속에 가두는 현대의 상담과 치유운동에 의문을 제기하며, 귀신축출을 개인의 귀신들림이라는 영역으로 제한해 이해하는 은사운동은 인간을 억압하는 사회구조와 제도의 배후에 있는 진정한 마귀의 세력에 눈멀게 함으로서 오히려 마귀의 세력들을 지원하게 될 위험이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6. 오늘날 기독교는 가히 “영성”의 홍수를 맞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저자의 말대로 영성이라는 것이 “한 인간의 깊은 홀로됨과 고독 속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비전으로 “세상에 편만한 불의와 압제에 대해 명료하게 보고 인식하는 행위” 라면, 영성을 개인의 심리적 평안과 기적적 치유, 교회의 부흥을 위한 수단 정도로 생각하는 오늘 우리야말로 영성의 기근, 영성의 빈곤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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