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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기독교저자/엘륄요더

정의로운 전쟁과 평화주의 (박도현 지음, 예영)

by 서음인 2016. 5. 28.

2010년의 리뷰

 

이 책은 전쟁과 평화에 대해 그리스도인들이 취할 수 있는 두 가지의 대표적인 입장인 정의로운 전쟁론과 평화주의를 각 이론의 대표격인 라인홀트 니버 (Reinhold Niebuhr, 1892-1971)와 존 하워드 요더 (John Howard Yoder 1927-1997) 의 사상을 통해 살펴보는 책이다. 니버의 명저인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현대사상사)" 와 요더의 대표작인 "예수의 정치학(IVP)" 을 모두 접할 기회가 있었던 나에게는 이 책이 최근의 남북간 대치와 관련해 특별히 흥미로왔다.

 

라인홀트 니버의 입장이자 기독교 주류의 입장이기도 한 정의로운 전쟁론에 의하면 인간은 죄악으로 인해 타락한 본성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가르치신 완전주의적 사랑의 윤리를 실천할 능력을 상실했으며, 그러한 인간이 본성상 이기적이고 비윤리적인 국가나 사회 내에서 사랑을 실현할 수 있는 차선책은 정의의 실현이라고 한다. 그리고 타락한 세상 가운데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힘(강제력)이 필요하며, 따라서 폭력이나 전쟁도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면 허용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재세례파 신학자인 존 하워드 요더는 기독교 윤리는 인간의 죄된 현실이 아니라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예수님의 윤리적 가르침의 핵심으로 십자가에서 완성된 무저항 비폭력의 정신을 제시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제자로서 그분의 정신을 따라 세상 가운데서 모든 종류의 폭력과 전쟁에 반대하는 철저하고 급진적인 평화주의자로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십자가란 개인구원의 길로서만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윤리의 기초로서도 타당하며 적실성이 있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돌이켜 보자면 젊은 시절 손봉호 교수님의 "현대정신과 기독교적 지성" 이라는 책을 통해 라인홀트 니버의 사상을 처음 접한 후, 현실 속에서는 '정의의 실현이 사랑의 완성' 이며, 현실 속에서 '최선이 아닌 차악' 을 추구해야 한다는 니버의 이론에 공감하고 더 많이 경도되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대량 살상무기의 발달과 핵무기의 출현으로 '정의로운 전쟁'이라는 이상을 현실 속에서 실현하기가 거의 불가능해지고, '정의로운 전쟁'이라는 명분이 침략전쟁을 합리화하는 수사(rhetoric) 로 전락하는 현실을 볼 때 꼭 니버의 이론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요더의 명저 "예수의 정치학" 을 접한 후 평화주의에 대한 내 개인적인 평가는 현실성이 떨어지는 몽상론자들의 이상에서 참된 제자의 길이자 진지하게 고려해 볼 만한 대안으로 바뀌게 되었다. 과연 어떤 길이 정답일까?

 

2014년의 생각

                                                                                               

전쟁과 폭력, 책임의 문제를 포함한 기독교 정치윤리의 중요한 논점들은 대부분 라인홀트 니버와 존 하워드 요더가 대표하는 정의로운 전쟁론과 평화주의의 대결로 귀결되는 것 같습니다.

 

(1) 타락한 인간은 산상 수훈으로 대표되는 예수님이 가르치신 윤리적 이상을 실현한 능력을 상실했으며, 폭력 사용을 포함하는 정의의 실현이야말로 타락한 세상 속에서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차선책이라는 니버의 “기독교 현실주의”는, 결국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가운데서 압도적인 죄악의 현실과 공존하고 타협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비관적이고 패배적인 결론으로 귀결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도날드 슈바이처가 <20세기의 사건들과 현대신학>에서 옳게 지적한 것처럼 니버는 "원죄론을 반복하느라 성령론을 발전시키지 못했으며", 따라서 니버의 신학이 이룬 일이란 결국 “암흑의 초월성”이라는 죄의 압도적인 실재를 드러낸 것 뿐이라는 스탠리 그랜츠의 비판은 타당해 보입니다. (스탠리 그랜츠/ 로저 올슨, <20 세기 신학>) 이의 극복을 위해서 우리는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의 과업을 감당할 능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니버의 비관적 선언 뿐 아니라, "이 세상의 변화에 대한 하나님 나라의 약속과, 그것을 이루어 낼 수 있다는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는 희망"을 강조하는 몰트만의 "희망의 신학"에도 동시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2) 예수님의 제자인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분이 가르치신 산상수훈과 십자가에서 완성하신 무저항 비폭력의 정신에 따라 세상 가운데서 모든 종류의 폭력과 전쟁에 반대하는 철저하고 급진적인 평화주의자로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메노나이트 신학자 존 하워드 요더의 “평화주의”는, “책임윤리”라는 중요한 걸림돌을 넘어야 할 것 같습니다. 평화주의자들은 세상의 현실을 고려한 ‘책임적 존재’ 혹은 ‘기독교 현실주의자’가 되는 것과, 신약성서가 말하는 십자가에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이라는 종의 방식 사이에 조화란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짐 윌리스, <부러진 십자가>) 존 하워드 요더는 타락한 세상을 유지하기 위한 '보존 질서'로서 국가 자체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책임 윤리"의 원칙에 따라 강제력을 행사해야 하는 군대나 직업정치의 영역에 그리스도인이 참여하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입니다. 그렇다면 의도와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할 수 밖에 없는, 그리고 “짐승의 비천함을 감수하면서 성인의 고귀함을 이뤄야 하는”, 직업적 정치와 같은 “책임윤리”의 영역은 기독교인들에게는 영원히 ‘금단의 열매’로 남아 있어야 하는 것일까요?

 

아마도 이 논쟁은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 전에는 온전한 결론이 나기가 매우 어려운 주제가 아닐까요?. 마지막으로, 이 논쟁에서 어떤 편에 서 있든 김두식 교수의 <평화의 얼굴>은 꼭 한번씩 읽어보시기를 강력히 권합니다.

 

목차

 

제1장 서론

제2장 정의로운 전쟁과 평화주의에 대한 이해

제3장 현실성을 중심으로 본 정의로운 전쟁과 평화주의

제4장 폭력을 중심으로 본 정의로운 전쟁과 평화주의

제5장 책임을 중심으로 본 정의로운 전쟁과 평화주의

제6장 니버와 요더를 넘어서 : 제3의 길은 가능한가

제7장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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