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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사회/한국사회

인문학으로 자기계발서 읽기 - 스티븐 코비에서 시골의사까지 (이원석 지음, 필로소픽 펴냄)

by 서음인 2016. 5. 29.

1. 오늘날 자기계발서 분야가 우리나라 출판시장의 확고한 강자 중 하나라는 사실은 분명한 것 같다. 어떤 서점에 가 봐도 사람들로 바글대는 목 좋고 넓찍한 자리는 그들의 차지이니 말이다. 실제로 우리 시대의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계발서가 들려주는 성공의 비밀을 복음으로 믿고 그 제자로 살아가며, 그들이 제공하는 달달한 힐링의 메시지로 무한경쟁 약육강식의 정글에서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받는다. 심지어 요즘 같아서는 기독교를 포함한 여러 종교 역시 자기계발이라는 거대한 시장의 일부로 포획되어 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2. 그러나 연세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중앙대학교에서 문화이론을 전공하고 있는 저자는 그의 첫 번째 책인 <거대한 사기극>에서 자기계발 산업이라는 이 공룡이 실은 ‘거대한 사기극’ 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는 이 책<인문학으로 자기계발서 읽기> 에서  우리 시대의 대표적 자기계발서 13 권을 선정하여 인문학적 관점에서 ‘뒤집어 읽기’를 시도한다. 저자에 의하면 당대 대중들의 욕망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 욕망을 표현할 효과적인 언어를 찾아내는 데 성공한 대표적 자기계발서들은 우리사회의 바로미터이며, 따라서 인문학이라는 프리즘을 통한 자기계발서의 비판적 독해는 우리 사회의 민낯을 제대로 볼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 된다.

 

3. 저자는 우리 사회를 휩쓰는 자기계발의 열풍이야말로 극단적 신자유주의의 물결 아래 국가와 사회의 기본적인 안전망이 허물어지고 더 이상 신분상승이 불가능한 빈익빈 부익부 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암담한 현실에 처한 대중들의, 생존을 향한 소극적인 그러나 절박한 몸부림이라고 말한다. 믿을 것이라고는 자신 밖에 없는 상황에서 스스로를 훌륭한 인적 자원으로 가꾸는 것은 성공 (더 적절하게는 생존) 을 위한 필수적 과제로 자리매김했으며, 희망이 보이지 않는 현실에서 상처받은 자기 자신을 돌보고 배려하는 힐링이야말로 이 시대의 가장 절실한 윤리적 의무가 되었다는 것이다. 

 

4. 저자에 의하면 이러한 자기계발(서)의 트렌드는 (1) 새뮤엘 스마일스의 <자조론>이나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 가지 습관>으로 대표되며 개인의 결단과 주도적 의지 그리고 성실한 노력을 통한 성공을 강조하는 윤리적 자기계발서에서 (2) 론다 번의 <시크릿>이나 퀴블러 로스의 <인생수업>과 같이 신념이나 열망의 힘에 대한 믿음이야말로 성공의 비밀이라고 가르치는 신비적 자기계발서로 그리고 (3) 김혜남의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나 혜민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과 같이 세상에서 상처받은 영혼에 대한 정서적 치유에 집중하는 심리적 자기계발서에 이르기까지까지 계속해서 변화해 왔으며, 이러한 변화는 각각 (1) 아직까지 개인의 노력만으로 어느 정도 신분상승이 가능하다는 희망이 존재했던 시기와 (2) 신자유주의의 진행에 따라 사회의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현실적으로 신분상승이 힘들어진 개인들이 이의 극복을 위해 신비적 지식을 추구하는 시기, 그리고 (3) 더 이상의 상승을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이 자조나 신념 대신 힐링을 갈구하는 시기와 상응한다. 이와 같이 자기계발서의 트렌드 변화는 급변하는 사회구조의 변동을 반영할 뿐 아니라 이에 대한 대중의 대응에 영향을 끼친다.

 

5. 저자는 이러한 자기계발서의 가르침이 (1) 구조적 불의와 불평등을 당연시한 채 성공과 실패의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함으로서 결과적으로 대중들로 하여금 1990년대 이후 가속화된 신자유주의와 그 결과인 양극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게끔 만들고 있다고 비판한다.이러한 정신에 따라 수많은 자기계발서들이 자원해서 자본의 노예가 되는 것을 ‘자유’로, 스스로 기득권층의 책임을 떠맡는 것을 ‘책임’으로 가르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기업을 찬미하고 재벌을 옹호하며 신자유주의 체제를 떠받치는 든든한 이데올로기적 지지대로 기능하고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2) 또한 자조를 강조하는 자기계발의 정신은 남의 도움을 거절할 뿐 아니라 남을 돕는 것에 대해서도 비관적인 사고방식을 낳으며, 이는 자연스럽게 경쟁의 신성화와 승자독식의 당연시라는 비윤리적 결론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들에게 가난이란 어떤 댓가를 치루고라도 피해야 할 무능이나 심지어 죄악일 뿐이며, 다단계 판매원과 같이 “스스로 노동하지 않고 다른 노동자의 목에 빨대를 꼽아 살아가는 것” 이야말로 최고의 삶의 방식이다. (3) 그뿐 아니라 “비어있는 머리를 가진 독자들의 비현실적 혹은 초현실적 욕망을 제대로 자극하고 충족시킴으로서” 성공가도를 달린 일부 신비적 자기계발서들은 냉혹한 현실을 대놓고 외면하며, 이들에 대한 믿음은 “자기계발서를 통해 성공하거나 부자가 되는 사람들은 오직 자기계발서의 저자와 출판사뿐”이라는 아이러니한 결과로 돌아올 뿐이다.

 

6. 이러한 “자기계발”의 왜곡된 가르침에 대해 저자는 기독교를 포함한 주요 종교들은 하나같이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 가 아닌 “서로 돕는자” 를 돕는다는 가르침을 베풀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고립된 개인들의 각자도생이라는 “자기계발 (self help)” 대신 “서로계발 (each other help)”이라는 연대와 공동체의 길을 그 대안으로 제시한다. 그리고 개개인이 투표를 통해, 지역공동체에서의 일상적 삶을 통해, 적극적인 정치적 투쟁을 통해 왜곡되고 불의한 정체경제 체제에 대해 ‘아니오’라고 말하면서 우리 시대의 시계탑을 멈추게 할 수 있는 적극적인 정치적 주체들의  네트워크로 거듭날 것을 촉구한다.

 

7. 독서뿐 아니라 책이라는 ‘물질’ 자체를 사랑하는지라 철든 후부터 30년 가까이 꾸준히 책을 사 모으고 읽어 왔지만 내 서재 안에 자기계발서를 위한 자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책읽기에 관해 특별히 고상한 견해를 가지고 있거나 자기계발서를 절대 읽지 않겠다는 확고한 원칙이 있어서가 아니라 무엇보다도 내게는 이 책들이 너무 심심하고 재미가 없기 때문이며, 굳이 시간을 내서 읽지 않더라도 이 사회에 살고 있는 한  매일같이 천지사방에서 들려오는 자기계발의 메시지를 지겹도록 들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며, 내게 남겨진 독서의 시간이 “머리에 주먹질을 마구 해대는” 세월의 무게를 이겨 낸 훨씬 가치 있는 책들을 읽기에도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물리적 시간을 넘어서는 의미의 시간, 아프도록 충만한 인생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는 통로가 내게는 우연히 그리고 숙명적으로 음악이었다......나는 정녕 외쳐 말하고 싶다. 삶이 누구에게나 중대한 문제라면 그 삶의 시간을 채우는 내용물이 보다 중요한 것이라고. 댄스와 발라드 가요 따위로 과연 음악이 안겨주는 전 존재의 떨림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인가....”  문화평론가 김갑수가 그의 책 <텔레만을 듣는 새벽에> 에 적었던 이 글에서  (클래식) 음악을 인문학이나 고전으로, 댄스나 발라드를 자기계발서로 바꾸어 읽는다면 크게 틀리는 말이 될까?

 

 

 

목차 

 

프롤로그 우리는 대체 왜 자기계발서를 읽는 것일까

 

01 우리 시대의 명령 “부자 되세요” : 로버트 기요사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02 자기계발 본질로서의 자기 리더십 : 스티븐 코비,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03 한국적 자기계발의 시작 : 구본형, 《익숙한 것과의 결별》

 

04 본격 가동되는 한국적 자기경영의 속내 : 공병호, 《공병호의 자기경영노트》

 

05 자기계발의 외피를 쓴 초과 노동의 요구 : 사이쇼 히로시, 《아침형 인간》

 

06 자기계발 시대에서 엘리트가 살아가는 법 : 데이비드 브룩스, 《보보스》

 

07 근면에서 공상으로 : 론다 번, 《시크릿》

 

08 뉴에이지와 자기계발의 만남 :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외, 《인생 수업》

 

09 기독교, 자기계발의 영원한 파트너 : 조엘 오스틴, 《긍정의 힘》

 

10 심리적 자기계발로의 전환 : 김혜남,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11 신자유주의와 힐링 산업 : 혜민,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12 성공학과 인문 페티시즘의 만남 : 이지성, 《리딩으로 리드하라》

 

13 멘토에 열광하는 우리 사회 : 박경철, 《시골의사 박경철의 자기혁명》

 

에필로그 서로계발하는 사회를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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