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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기독교/사회

국가와 종교, 유럽 정신사에서의 로마서 13장 (마야타 미쓰오 지음, 삼인 펴냄)

by 서음인 2016. 5. 31.

1.수많은 성경본문중에 로마서 13장 1-7절만큼 오용된 본문이 있을까?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권력자들과 권력에 우호적인 종교 지도자들은 예외 없이 이 본문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가며 권력자나 국가권력에 대한 절대적 충성을 가르쳐 왔다. 저자는 초대교회로부터 2차 세계대전 이후까지 유럽에서 이 본문의 주제인 국가와 종교의 관계를 둘러싸고 벌어진 다양한 해석과 논쟁의 역사를 개괄하고 있다.

 

2. 로마서13장을 둘러싼 논쟁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적 질문들 중 몇 가지는 다음과 같다 . 오리겐, 어거스틴에서부터 루터나 칼빈, 바르트 본회퍼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신학자들이 이 질문들에 대해 나름의 방식으로 대답해 왔다.

 

1) 로마서 13장은 국가와 교회와의 관계에 대한 교의적 가르침으로 주어진 신학적 국가이론인가? 아니면 1세기의 로마라는 특정한 상황과 장소에 주어진 목회적 권고로 생각해야 하는가?


2) 바울이 국가의 권위에 대한 순종을 강조하게 된 역사적 배경은 무엇인가? 박해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로마의 법질서에 대한 우호적 경험 때문에? 세제 개혁과 같은 당대의 특수한 역사적 상황에 대한 목회적 권고로?

 

3) 국가나 절대자의 권력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실체적 신성을 반영하는가? 혹은 주권자이신 하나님에 의해 세워진 임시적 상대적 질서일 뿐인가? 아니면 인간에게서 유래한 세속적인 것인가?


4) 우리가 복종해야 할 위에 있는 권세는 일차적으로 누구를 지칭하는가? 지상에서의 하나님의 대리자인 현존하는 국가권력이나 권력자인가? 특정 국가나 개인이 아닌 일반적 제도로서의 국가권력인가? 그들의 배후에서 그들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인가? 아니면 오직 하나님만인가?

 

5) 그리스도인은 신적 질서인 현존하는 국가체제에 어떤 경우에도 저항할 수 없는가? 아니면 국가가 명백하게 기독교를 탄압하거나 종교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일을 명할 때에만 저항할 수 있는가? 또는 권력을 불법적으로 찬탈하거나 폭정을 행할 때는 언제든지 저항할 수 있는가?


6) 만약 저항이 가능하다면 그 주체는 누구여야 하는가? 개인이 아닌 공직자에게만 저항이 허용되어 있는가? 아니면 국민 각자에게도 저항의 권리가 허용되어 있는가? 또한 저항의 형태는 어떠해야 하는가? 비폭력적 수동적 저항만이 허용되는가? 아니면 폭력을 사용한 능동적 저항이나 반역도 가능한가?

 

3. 에른스트 케제만이 “적과 동지가 구별되지 않는 백병전” 으로 비유했을 정도로 복잡하다는 이 본문의 해석사와 정확한 의미를 제대로 파악한다는 것은 현재의 내 수준에서 거의 불가능한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논란 가운데 있는 이 본문을 아무 의심도 거리낌도 없이 국가권력에 대한 절대충성의 proof text 로 사용하는 용감하지만 무지한(?) 행위가 정당화될 수 없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한 것 같다. 엘륄의 말마따나 기독교의 진정한 비극은 자본주의나 공산주의, 일제통치나 나찌치하, 쿠데타정권을 막론하고 기꺼이 당대 기득권의 수호자이기를 자처해 왔던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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