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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기독교/사회

고백 (도로시 데이 지음, 복 있는 사람 펴냄)

by 서음인 2016. 5. 31.

1.Christianity Today에 의해 20세기의 위대한 기독교 서적 100권중 하나로 선정된 바 있는 이 책은 가난한 노동자들을 위해 평생을 바친 20세기 최고의 가톨릭 사회 선교사 도로시 데이(Dorothy Day, 1897-1980)가 55 세때인 1952년 쓴 자서전이다. 사회주의나 아나키즘과 같은 급진적인 사회정치사상의 영향을 받은 신문기자로 보헤미안적 생활 끝에 한 번의 낙태를 경험하기도 했던 그녀는 생물학자이자 아나키스트인 영국인 포스터 베터햄과 만나 낭만적이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던 중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면서 하나님의 자비를 깨닫고 가톨릭으로 회심하게 되며, 그 과정에서 무신론자로 그녀의 신앙을 인정할 수 없었던 포스터와 결별하는 아픔을 겪는다. 그 후 자신의 재능과 은사가 동료 노동자들과 가난한 자들을 위해 쓰이기를 간구하던 그녀는, 일생의 멘토이자 동지였던 피터 모린을 만나 가톨릭 교회의 급진적이고 진보적인 사회적 가르침에 근거하여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가톨릭 노동자 Catholic worker’ 라는 신문을 발행하고, 기독교적인 사랑과 자비의 정신에 입각하여 ‘환대의 집’을 열어 노숙인과 실업자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자활을 도왔으며, 농업공동체를 이루어 장애인을 비롯해 도시에서 생존할 수 없는 이들이 비장애인들과 살 수 있는 농장을 운영하기도 했다. 또한 그녀는 일곱 차례의 투옥을 포함, 수많은 고난과 반대를 무릅쓰고 일생 동안 산상 수훈의 평화주의 정신에 따라 미국의 반전운동을 이끌기도 했으며, 이러한 그녀에 대해 2012년11월 미국 가톨릭주교회의는 만장일치로 성인품 추대를 결정했다.

 

2.방탕한 급진주의자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후 가톨릭으로 귀의한 한 여성의 이야기. 여기까지만 보자면 우리 주변에 널려 있는 흔한 회심의 간증처럼 들린다. 그러나 회심이 문제해결과 성공과 행복하고 안락한 삶으로 이어진다는 자동적인(?)  공식은 그녀에게 해당되지 않는다. 그녀에게 회심이란 사랑하는 사람과의 헤어짐이라는 쓰라린 대가를 요구하는 것이었으며, 자신의 행복을 포기하고 타인을 위해 살아가는 십자가와 고난의 삶을 선택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낙태의 경험으로 아이를 가질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던 이 ‘불모의 여인’에게 어여쁜 딸을 허락하셨을 뿐 아니라, 그와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공동체라는 수많은 '가족'들을 보내 주셨다. 그녀를 보면 하나님을 신뢰하며 대담한 모험의 발걸음을 내디뎠던 룻과 그의 자부 나오미가 떠오른다.

 

3.이 ‘위대하다는’ 책에 나오는 많은 사람들은 성인이기는커녕 심지어 ‘정상적인’ 사람들도 아니다. 실업자, 부랑자. 병자, 병역거부자, 아나키스트, 사회주의자 등등 오히려 ‘정상적인’ 삶을 영위한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의 눈으로 보자면 전혀 섞이고 싶지 않을, 하나같이 문제 투성이인 반사회적 사회 부적응자들일 뿐이다. 심지어 도로시 데이마저도 낙태 경험이 있고, 동거 끝에 아이를 출산한 미혼모가 아닌가? 그러나 이 책에서 하나님은 도로시 데이를 포함하여 사역의 와중에도 끊임없이 문제와 갈등을 일으키는 이 모자란 자들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은혜를 주시며, 그들을 통하여 세상에 대한 당신의 자비를 펼치신다. 그러고보면 우리 주님이 세상에 계실 때 함께하시고 교제했던 사람들도 오늘 ‘정상적’인 사람으로 자처하는 우리가 심히 불쾌해 할 사람들이 아닌가? 그분의 위대한 교회를 세운 자들은 12명의 못나고 겁 많은 바보들이 아니었던가?

 

4. 이 책은 우리에게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고난을 기꺼이 감당하는 길이며, 항상 기도하고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과 교제하는 길이며, 가난하고 고난 받는 자들과 함께 하며 그들을 섬기는 길이라는 심히 고통스러운 진리를 가르쳐주는 것 같다. 아마도 그것이 리차드 포스터나 토마스 머튼, 헨리 나우엔과 같은 탁월한 신앙인들이 극찬했던 이 책이 내게는 그다지 편안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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