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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기독교/성서학

고린도에서 보낸 일주일 (벤 위더링턴 3세 지음, 오현미 옮김, 이레서원 펴냄)

by 서음인 2020. 2. 8.

고린도에서 보낸 일주일은 세계적인 복음주의 신학자이자 에즈베리 신학교의 신약학 교수인 벤 위더링턴 3세가 사도행전 18장의 1-17절에 기록된 바울의 고린도 전도 기사를 기초로 하고 그 사건의 전후로 일어났을 법한 이야기로 살을 붙여 창작해 낸 짤막한 소설이다. (사진 1) 이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고린도의 조영관(재무관)이 되려고 하는 - 아마도 로마서 1623절에 언급된 인물로 추정되는 - 에라스도와 한때 그의 노예였으나 지금은 해방된 자유민인 니가노르, 그리고 고린도에서 사역하던 중 유대인들에게 당한 고소로 총독 갈리오 앞에서 심문받을 준비를 하는 사도 바울(파울로스)를 중심으로 전개되며, 우리를 바울이 복음을 전하던 1세기 중엽 그리스-로마 세계의 광범위한 사회문화적 정황과 로마 제국의 한 식민 도시 안에서의 생생한 삶의 현장 속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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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스도의 노예였으나 해방되어 자유민 신분을 얻은 니가노르는 이제 그의 후견인이자 고용주가 된 옛 주인의 대리인으로 로마에서 중요한 계약을 성사시킨 후 위험한 항해를 거쳐 지금 막 고린도에 도착했다. 그리스도인이었던 에라스도는 이 거래로 대리석을 매입해 건축공사를 일으킴으로서 고린도 시의 중요한 관리인 조영관(aedile)이 될 것을 꿈꾸고 있었다. 니가노르는 계약의 결과를 알리기 위해 에라스도에게 가는 길에 크라쿠스라는 검투사를 만나 자신이 운영하는 두 사업체 중의 하나인 작은 식당의 경비를 맡아 줄 것을 제안한다. 한편 파울로스는 믿음의 동역자이기도 했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와 공동으로 임대한 가게에서 축제에 쓸 가죽 천막을 만들며 그들에게 자신이 왜 로마에 널리 퍼진 관행인 후원-종속관계를 거부하는지 설명하던 중 유대인들의 고소로 인해 갈리오 총독의 재판에 출두할 것을 명령받는다.

 

에라스도의 저택에 도착한 니가노르는 조금 전 그의 고용주가 요즘 들어 말썽을 일으키는 사유지 뒤편의 도수관을 점검하러 나갔다는 말을 듣고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중 깊은 잠에 빠져든다. 한편 로마 명문가 출신 귀족으로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 아이밀리아누스는 고린도 시의 조영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그의 경쟁자 에라스도의 피후견인인 니가노르를 양아들로 삼아 에라스도에게 수치를 안겨줄 계획을 세운다. 에라스도가 늦도록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는 이 집안의 딸 율리아의 다급한 목소리에 잠을 깬 니가노르는 도수관 근처에서 누군가의 습격을 받아 머리에 큰 부상을 입은 에라스도를 발견해 저택으로 데려온다. 그는 이 습격의 배후일 가능성이 높은 아이밀리아누스가 자신을 양아들로 삼겠다는 제안을 해오자 자신이 무서운 음모에 빠졌음을 직감한다.


아침 일찍부터 데살로니가 교회의 회심자들에게 보낼 편지를 쓰던 파울로스는 정오로 예정된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고소인인 회당장 소스데네는 파울로스가 십자가에 달려 죽은 크리스토스라고 하는 구원자에 대해 설파함으로서 유대인 공동체에 분란을 일으켰다고 주장했으나, 총독인 갈리오는 파울로스가 로마법을 어긴 죄가 입증되지 않는 한 그를 처벌할 수 없다고 선언하면서 재판을 거부했다. 이에 자신들이 필요 없는 고소로 총독 앞에서 공개적인 수치를 당했다고 느낀 회당 대표들은 이 고소를 주도한 소스데네를 붙잡아 매질했다. 한편 니가노르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아버지의 곁을 지키면서도 고민에 빠진 자신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해 주는 어린 율리아의 순수한 믿음을 보면서 감동하며, 댓가를 바라지 않는 파울로스와 동료 그리스도인들의 기도를 통해 기적적으로 깨어나는 에라스도의 모습을 목격하며 전율을 느낀다.

 

의식을 회복한 에라스도는 니가노르에게 자신을 습격한 자가 아이밀리아누스의 심복이라는 사실을 밝히면서, 이제부터는 그들이 후견인과 피후견인이 아닌 친구의 관계를 맺자고 말한다. 니가노르는 자신의 가게에 고용하고 있는 고르디아누스와 크라크수에게 완전한 동업을 제안한 후, 그들과 함께 아이밀리아누스를 만나러 가서 양자가 되어달라는 그의 제안에 대해 명백한 거부의 의사를 밝힌다. 그날 저녁 에라스도의 집에서 열린 연회에 참석한 니가노르는 안주인인 카밀라의 동생인 알렉시아를 만나 미묘한 감정을 느낀다. 그리고 파울로스가 집례한 성찬에 참여하고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친히 인간이 되고 죽었다가 살아난 한 신의 이야기를 들으며 말할 수 없는 감동에 빠진다. 그는 회개하고 그리스도에게 돌아오라는 카밀라의 예언기도를 받으며 자신 앞에 현존하는 거룩한 존재 앞에 무너져내린다. 그리고 이 신 예수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다고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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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바울 사역의 사회적 문화적 정황 이야기'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성서 내러티브에 저자의 창작이 가미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을 바울이 사역했던 1세기 중엽 그리스-로마 시대의 한 식민 도시 안에서 펼쳐진 생생한 삶의 자리로 안내한다. 저자는 곳곳에 당대인들에게 익숙하던 라틴어 및 그리스어 용어들을 인용해 독자들의 흥미를 돋우며 (사진 2), 많은 그림이나 사진들을 곳곳에 배치해 독자들이 본문의 내용을 좀 더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배려한다. (사진 3,4) 그리고 이야기 도중에 현대인들이 이해하기 힘든 문화적 관습이나 제도가 나오는 경우 자연스럽게 부연설명을 덧붙임으로서 독자들의 이해를 도우며, 특별히 '후견인과 피후견인', '로마의 재판', '수사학', '검투사와 검투 경기', '목욕탕', '노예 제도', '내세에 대한 믿음'등 당시의 사회문화적 배경이나 사람들의 집단적 심성을 이해하기 위해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스물 네 가지 주제들은 각각 "자세히 들여다보기"라는 두 페이지 정도의 박스에 따로 담아 좀 더  상세히 설명한다. (사진 5,6) 해당 주제를 직접 다루는 전통적인 신약성서 배경사 교과서들(사진 7)과 달리, '이야기'라는 매개를 통한 간접적 방식으로 바울 시대의 정치  종교제도 뿐 아니라 당대인들의 일상과 욕망, 그리고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삶과 예배 모습까지 엿볼 수 있는 흥미롭고 유익한 책이다. 


유대 기독교적 배경을 가지지 않은 그리스 사람인 이 이야기의 주인공 니가노르는 그의 옛 주인이자 고용주인 에라스도의 훌륭한 인품과 진실한 삶의 태도에 공감하지만, 에라스도가 믿는 종교의 핵심적 가르침인 십자가에 달려 죽은 죄수 한 사람이 신적 구원자라는 황당한 이야기를 쉽게 받아들이지는 못한다. 그러나 댓가를 바라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의 사랑과 간절한 기도를 통해 일어난 기적적인 치유를 목격하면서 감동과 놀라움으로 마음이 흔들리며, 그리스도인들의 집회에 참석해서는 파울로스라는 인물에 의해 주도되는 거룩한 식사와(성찬), 설득력 있는 수사학적 방식을 사용하는 감동적인 연설(설교), 그리고 그를 거룩한 존재와 대면하도록 만든 강력한 예언기도 앞에 결국 무너져내리고 만다. 회의적인 관찰자에서 마침내 회심에 이르게 된 니가노르의 영적 순례 여정은 우리에게 세속적이고 다원적인 사회 안에서 어떻게 복음이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는지에 대한 탁월한 통찰을 제공한다. 모든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의 증인들에게 가장 강력하고도 효과적인 증언과 변증의 도구는, 낯선 교리의 언어 이전에 진실한 인품과 사랑의 능력, 그리고 영감있는 예배가 아니겠는가? 이 책은 단순히 이야기 형태로 풀어 쓴 흥미로운 신약성서 배경사를 넘어, 탁월한 선교적 ‧ 변증적 통찰을 담은 모든 시대에 충분히 있을 법한 감동적인 영적 회심기이기도 하다. 




(사진 1) 고린도에서 보낸 일주일



(사진 2) 곳곳에 인용된 라틴어 용어들과 해설




(사진 3,4) 인용된 사진과 그림들




(사진 5,6) '자세히 들여다보기'의 한 예



(사진 7) '일반적인' 성서시대 배경사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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