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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기독교/역사

일요일의 역사 (후스토 곤잘레스 지음, 이여진 옮김, 비아토르 펴냄)

by 서음인 2020. 7. 11.

유명한 교회사 교과서 The Story of Christianity의 저자인 후스토 곤잘레스가 쓴 일요일의 역사, 제목 그대로 역사적으로 기독교인들이 일요일을 어떻게 생각해 왔으며 어떻게 지켜왔는지 살펴보는 책이다. 저자는 초대교회 교인들에게 일요일은 무엇보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기쁨의 날이었으며, 일요일을 넷째 계명의 안식일과 동일시거나 엄격한 금욕의 날로 지키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라고 말한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창궐로 인해 한국교회가 금과옥조처럼 여기던 주일성수가 위기에 처한 이 시대에 더 흥미를 끄는 이 책의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한 후 몇 가지 단상을 덧붙이도록 한다.

 


콘스탄티누스 이전


초대교회는 현재의 토요일(금요일 일몰 후에서 토요일 일몰 전까지)에 해당하는 안식일을 거부하지 않았고, 일요일(토요일 일몰 후부터 일요일 일몰 전까지)인 주의 날이 안식일을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도 않았다. 한 주간의 일곱째 날인 안식일은 유대인 기독교인은 물론 이방인 기독교인도 가능한 지키려고 노력했던 예배와 쉼의 날이었으며, 태양의 날이자 한 주간의 첫째 날인 주의 날(dominica)은 기독교인이 예수의 부활을 기념하고 떡을 떼기 위해 모이는 날이었다

 

유대인이 절대 다수였던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안식일에 회당 예배에 참석하고, (주의 날이 시작되는) 안식일 일몰 후에 떡을 떼기 위해 모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유대인들과의 갈등으로 더 이상 회당예배에 참석하지 못하게 된 후로는, 집회를 시작하기 전에 찬양, 기도, 성경읽기, 설교와 같은 예배 활동을 먼저 하고 나서 떡을 떼게 되었다. 또한 교회 안에서 이방인의 비율이 늘어남에 따라 일 때문에 시간을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모임에 쉽게 참석할 수 있도록 주의 날 아주 이른 아침에 모이게 되었다주의 날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날이고, 첫 창조의 첫째 날이며, 만물의 완성을 가리키는 소망의 날이었다

 

초대교회에서 주의 날에 공예배 이외의 특별한 관습이 있었다는 증거는 없다. 이 날은 금식이나 무릎 꿇고 기도하기를 삼갔는데, 그 이유는 주의 날이 기쁨이나 축하의 날이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예배는 예비 신자인 학습 교인도 참여할 수 있는 기도, 찬양, 성경 읽기와 해석으로 구성된 예비 신자 미사, 그들이 돌아간 후 세례 교인들만이 참여해 복음서에 나오는 형식에 따라 성찬을 나누는 신자들의 미사로 나뉘었다. 일요일에 드리는 기독교 예배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하지 않았다. 세례와 관련된 다소 복잡한 의식이 있었으며, 여러 가지 상징과 몸짓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경우가 많았다.


콘스탄티누스 시대부터 고대 말기까지


4세기에 교회의 위상과 교회 생활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기독교는 몇 년 동안 경험했던 최악의 박해에서 벗어나, 유대교를 제외하고는 유일하게 공식적으로 용인된 종교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일요일을 기독교의 예배일로 정한 사람이 콘스탄티누스라고 생각해 왔지만 사실 기독교인들은 이미 오랫동안 일요일에 모여 예배를 드려 왔으며, 콘스탄티누스는 일요일을 쉬는 날로 선포함으로서 기독교인들이 자기 일이나 직업상 의무를 걱정할 필요 없이 더 쉽게 모이게 해주었을 뿐이다.

 

이렇게 일요일이 쉼의 날이 된 이후에야 주의 날이 안식일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경향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콘스탄티누스와 그 후계자들이 일요일에 쉬는 것과 관련해 공표한 법령이 안식일 관련 율법과 비슷했음에도, 안식일은 사라지거나 잊혀지지 않았으며 일요일 준수가 넷째 계명 순종이라는 개념으로 이어지지도 않았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느 한 날을 다른 날로 대체하기보다, 약속된 체제의 표징인 안식일 준수가 어느 정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되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해했다.

 

주의 날이 공식 휴일이 됨에 따라 이른 아침이 아닌 좀 더 편한 시간대에 모일 수 있게 되었고, 이에 따라 좀 더 정교한 예전이 발달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예배당 건물은 넓고 화려해졌고, 교회 지도자들이 사회에서 중요한 인물이 되었으며, 회중이 부를 수 없는 음악을 노래하는 찬양대가 생기는 등 예배가 더욱 정교해졌다. 또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개종한 이들이 세례를 받기 위해 준비하던 기나긴 과정인 학습이 사실상 사라졌고, 이에 따라 학습교인을 먼저 보내는 일도 사라지게 되었다


중세 시대

 

중세 시대에 일요일의 쉼과 관련해 지속적으로 반포된 법령들은 대개 일곱째 날에 대한 계명과 연결되었고, 점차 일요일이 기독교의 안식일로 대체되는 과정이 진행되었다. 이러한 일요일의 안식일 대체는 대개 반유대주의 정서와 동반되었으며, 그리스도인들은 안식일이 육적유대인을 위한 날인 반면, 일요일은 영적기독교인을 위한 날이라고 주장하거나 쉼의 날은 도덕법의 일부로 순종해야 하는 계명인 반면 특정한 쉼의 날은 그리스도를 예시하는 의식법이기에 일단 그 약속이 실현되었다면 더는 따를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서방교회가 성찬을 피 없이 반복하는 제사로 여기게 됨에 따라, 기쁨과 승리라는 원래의 색채가 사라지고 점차 십자가와 죄에 초점을 맞추는 장례식 같은 분위기로 바뀌었다. 또한 화체설의 발전으로 성찬의 초점이 떡에 임재하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바뀌게 되면서, 사람들은 떡과 포도주를 나누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떡이 그리스도의 몸으로 바뀌는 기적을 목격함으로써 복을 받기 위해 교회에 다녔고, 실수로 떡과 포도주를 더럽혀 지옥에 떨어질까 두려워 성찬을 받지 않으려 했다. 따라서 성찬은 보기만 해도 혜택을 얻을 수 있는 성스러운 드라마가 되었고, 미사 참석은 보편적이었지만 성찬 참여는 예외적인 것이 되었다

 

수도원 전통에서 주의 날 누리는 쉼의 목적은 단순한 여가가 아니라 하루를 온전히 기도와 묵상과 신앙 서적을 읽는 일에 쏟는 것이었지만, 현실적으로 일요일은 미사 참석이라는 의무만 다하면 남은 하루는 평일에 할 수 없는 여가 활동에 전념하거나 곡예사와 어릿광대를 구경하고 노래하고 춤추고 심지어 음탕한 일까지 벌이는 시간이 되었다. 일요일은 그리스도의 희생제사를 반복하는 가슴 벅차고 굉장한 행사의 날인 동시에, 종종 그러한 희생이 필요한 이유를 정확하게 보여 주는 다른 수많은 행사의 날이기도 했다


종교개혁


개신교는 예전에 자국어를 사용하고 다양한 문화에 적응하는 과정을 권장한 반면, 가톨릭교회는 정반대 방향을 취해서 20세기까지 쪽 그렇게 이어 갔다. 또한 개신교에서는 성경 연구에 역점을 두었을 뿐 아니라 평신도에게 교리를 가르쳐야 했기 때문에 (강해) 설교를 무척 강조한 반면, 특히 개혁파 전통에 있는 교회들에서는 성찬의 횟수가 줄어들었다. 또한 개신교가 교회력을 단순화하고자 하면서 성인의 날과 다수의 특별 절기를 폐지하자 일요일을 더욱 강조하게 되었다.

 

종교개혁자들은 교회사의 어느 시점에 안식일이 일요일로 대체되었다는 데 동의했으며, 넷째 계명이 도덕법이자 동시에 의식법이기 때문이 이런 변경이 가능했다고 주장했다. 의식법으로서의 넷째 계명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주는 표지였기에 이제는 폐지되었지만, 도덕법으로서의 넷째 계명은 지금도 모든 이가 하루를 쉼과 영적인 일에 골몰함으로서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톨릭 논쟁자들은 그 변경의 주체가 교회였다고 주장함으로서 개신교도조차 성경 위에 있는 전통의 권위를 인정한다는 근거로 삼으려 했다.

 

루터와 루터의 제자들은 안식일 계명을 과도하게 강조하면 행위에 대한 칭의로 다시 돌아갈지도 모른다고 염려했다. 그러나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악행을 누그러뜨리는 3의 용도가 있는 율법을 교회를 넘어 사회 전반에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주의 날에 쉬는 법령을 제정하도록 세속 정부를 압박했다. 제칠일 안식일엄수주의자들은 네 번째 계명은 하나님의 명령이므로 첫째 날이 아니라 일곱째 날을 준수함으로써 문자적으로 순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교도들은 넷째 계명에 기반을 두면서 안식일준수와 관련된 세세하면서도 엄중한 법률을 제정했다. 청교도들에게 일요일은 기독교의 안식일이자 넷째 계명의 지시에 따라야 하는 날이었다. 일요일은 인간의 죄의 결과인 십자가에 대한 슬픔이 주가 되는 날로서, 교회에 가고 기도하고 자선 행위에 전념하는 날이 되었다. 청교도 안식일 엄수주의는 왕정복고 이후에서 살아남았고 융성했을 뿐 아니라 영국이 아메리카 대록에 건설한 식민지에서도 일반화되었다.

 

세속화와 갱신


일요일의 쉼을 법으로 정하는 추세가 콘스탄티누스 시대에 시작되어 17,18세기에 개신교도들 사이에서 지속되다가 더 확대되기도 했지만, 그 후 쇠퇴하기 시작했고 이는 일요일이 더럽혀지고 있다고 믿은 보수 개신교인 다수에게는 고통스러운 일이 되었다.

 

16세기를 기점으로 가톨릭과 개신교가 일요일 예배의 형식을 두고 나뉘었지만, 20세기에 새로운 수렴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16세기에 라틴어 예배를 고집하고 엄격하게 일치를 주장했지만, 20세기에는 자국어로 된 예전을 수용했고 서로 다른 문화에 맞춘 적응을 장려했으며, 평신도의 성찬 참여를 적극 권장했을 뿐 아니라, 설교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한편 개신교회는 성찬을 좀 더 자주 시행하는 방향으로 바뀌었고, 가톨릭적이라고 거부당했던 여러 관습들이 이제는 고대의 관습으로 인정되어 회복되고 있다. 이러한 예전 회복은 고대 일요일 의미의 재발견으로도 이어졌고, 따라서 일요일을 더는 기독교의 안식일과 같은 날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날, 새 창조의 시작, 마지막 완성의 약속을 나타내는 날로 여기기에 이르렀다



짧은 단상과 간절한 소망

 

1. 이 책의 주장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일요일은 원래 그리스도인들이 주의 부활을 축하하며 함께 모여 떡을 떼던 기쁨의 날이었으나, 서방교회가 성찬을 피 없이 반복하는 제사로 여기게 되면서 점차 죄와 십자가를 강조하는 침울한 날이 되었고, 유대교의 안식일과 동일시되면서 세세한 계명에 의해 규제되는 엄격한 금욕의 날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유대교와 기독교가 명확히 갈라지지 않았던 시기에는 예배조차도 일요일에 속한 것이 아니었다! 이 책은 한국교회가 그렇게도 중요시하는 주일의 개념과 주일성수의 내용 역시 인간 사회의 모든 개념과 제도들처럼 철저하게 시간과 함께 빚어져 온 역사적 구성물이었음을 알려 준다.

 

2. 저자의 결론은 21세기 기독교의 일요일 준수는 청교도적인 침울함과 의무의 굴레에서 벗어나, 그리스도의 부활을 축하하고 기뻐했던 초대교회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일요일의 미래가 여덞째 날, 즉 창조의 완성을 가리키는 소망과 기쁨의 날이어야 하며, 이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말대로 쉬면서 보고, 보면서 사랑하고, 사랑하면서 찬양하는날이라고 강조한다. 부디 내게 남겨진 일요일들이 혐오와 정죄와 의무 강요의 목소리에 상처받고 분노하는 침울한 날들이 아닌, 쉼과 봄과 사랑과 찬양만이 넘치는 기쁨 가득한 날들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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