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 사회/종교인류신화

축제 이론 (류정아 지음, 커뮤니케이션북스 펴냄)

by 서음인 2021. 5. 29.

『축제 이론』은 서울대학교 인류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 고등사회과학원에서 사회인류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저자가, ‘축제’에 대해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할 10명의 중요한 학자와 그들의 이론을 간략히 소개하는 작은 책이다. 저자는 한국에서 축제가 인문학적 토대에 근거한 중요한 문화현상으로 간주되기보다 일회성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행사 정도로 치부되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축제 연구 역시 어학이나 문학 등의 학문적 배경을 가진 연구자들의 부수적 관심거리 정도에서 벗어나지 못할 정도로 그 토대가 빈약하다고 개탄한다. 저자는 이 책이 이렇게 빈약하고 왜곡된 축제 연구의 이론적 취약점을 해결하기 위한 첫걸음이 되기를 소망한다. 작지만 알찬 내용을 담은 이 책의 내용을 요약해 앞으로의 공부를 위한 토대로 삼기로 한다. 

 

축제 분석의 이론적 틀    저자는 축제를 이해하는 관점을 네 가지로 나눈다. (1) 호혜적 관계 형성으로서의 축제 - 마르셀 모스가 『증여론』에서 잘 펼친 이 방식은 유형적인 것이든 무형적인 것이든 인간은 서로 무엇인가를 주고받으면서 상호 호혜적 관계를 형성하는데 축제란 이러한 관계맺음의 기회라고 말한다. (2) 성과 속의 변증법적 이해 - 축제란 비일상적 시공간에서 순간적인 일탈을 경험하는 것이며, 이를 설명하는 논의들로는 아널드 반 제넵의 ‘통과의례’, 에드먼드 리치의 ‘시간의 패러독스’, 빅터 터너의 ‘리미날리티와 코뮤니타스’, 미하엘 바흐친의 ‘반구조적 카니발과 소통 시스템’이 있다. (3) 유희적 미학의 완성 - 축제란 현실적으로 충족될 수 없는 개인의 소망과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는 상상을 제공하는 것이다. 요한 하위징아의 ‘호모 루덴스’, 로저 카유아의 분석적이고 체계적인 놀이의 설명틀, 장 뒤뷔뇨의 인간의 유희성에 대한 설명이 이에 해당한다. (4) 연행이론의 구체화 - 축제는 각자의 머릿속에 다양한 생각을 하는 다양한 개인들이 특정한 시공간에서 이뤄지는 말과 행위에 대해서 동일한 즐거움과 만족감을 느끼게 되는 연행(performance)의 대표적인 방식이다. 마리안느 메스닐과 셰크너가 대표적이다.

 

아널드 반 제넵 : 통과의례     에드워드 반 제넵에 따르면 ‘통과의례’는 모든 인간사회 삶의 진행 과정을 설명하는 핵심적인 키워드다. 모든 개인은 일생을 통해 끊임없이 사회적 지위의 변화를 경험하는데, 그 급격한 변화의 순간을 축제의 형태를 띤 의례를 치름으로서 순조롭게 지나갈 뿐 아니라 사회적 인증의 절차를 거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통과의례’ 들은 모두 형식면에서 세 단계의 구조를 갖는다. ① 격리기는 개인이 이전 단계로부터 분리되는 시기로 흔히 죽음이라는 형식을 취한다. ② 과도기는 두 단계 사이에 걸쳐 있는 시기로 불완전성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행동을 보이며 학습이나 수업에 노력하는 경우가 많다. ③ 통합기에는 일정한 관문을 통과해 새로운 사회적 지위나 상태를 획득했다는 사실이 공지된다. 이러한 통과의례를 통해 개인은 의례적으로 죽고, 출생하고 양육되고, 단련된 끝에 극명하게 달라진 새로운 사회적 지위를 갖게 된다.

 

마르셀 모스 : 증여론       모스는 하나의 사회 속에 존재하는 제도나 표상들은 통합된 전체인 “사회적 사실”을 형성한다고 믿었으며, ‘원시적’인 사회는 단순한 조직체가 아니라 서구사회와는 다른 특징을 가지는 또다른 복합체로 이루어진 사회라고 말한다. 이 생각이 분명하게 적용된 것이 그의 대표적인 논문인 “증여론”이다. 모스는 이 논문에서 ‘포틀래치’나 ‘쿨라’와 같은 증여 및 교환의 의례는 자발적이고 의무적이며 호혜성을 그 특징으로 가진다고 말한다. 그리고 축제는 이러한 호혜적 관계 맺기의 기회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스는 이 의례들이 보여주는 구조인 주어야 할 의무, 받아야 할 의무, 되돌려주어야 할 의무를 수행하는 것은 원시 사회뿐 아니라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사회를 유지시키고 결속시키는 중요한 힘이라고 강조한다. 모스는 현대사회에도 “전체적인 급부체계‘라 불리는 이러한 증여의 원칙이 적용되고 있고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말하며, 이는 의무적이고 자발적인 특성을 가지는 부유한 사람들의 ‘고귀한’ 지출로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에드먼드 리치 : 시간의 패러독스     리치는 사회통합을 강조하는 기능주의적 접근을 부정하고 이상적 규범과 실질적 실천 사이의 동력학, 모순, 차이를 강조했다. 리치는 인간이 특수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축제라는 기제를 통해 시간을 “반복적 대칭들의 불연속성”으로 개념화하며, 성스러운 의례(축제) 들은 인간의 지위를 세속적인 것에서 성스러운 것으로 바꾸기 위한 기술이라고 강조했다. 인간은 축제의 시간 동안 네 가지 지위의 변화를 겪는다. ① 신성화의례와 분리의례 - 도덕적 인간은 도덕적 세계에서 성스러운 세계로 옮겨진다. 곧 죽는다. ② 주변직 지위 - 도덕적 인간은 성스러운 상태에 머물며 일상적인 사회적 시간은 멈춰져 있다. ③ 탈신성화의례 또는 재통합 - 인간은 성스러운 세계에서 다시 세속적인 세계로 들어온다. ④ 일상적인 세속적 삶은 연속적인 축제들 사이사이에 있는 삶이다. 이렇게 축제가 수행하는 다양한 기능들 중 하나는 시간의 질서를 매기는 것이며, 우리는 축제를 통해 삶의 간격들을 만들면서 시간을 창조해 낸다.

 

빅터 터너 : 리미날리티와 코뮤니타스의 창조성     빅터 터너는 의례란 한 사회의 지배 이념과 가치를 담고 있으며, 규칙적으로 재현되어 사회관계의 역동성을 발현시키는 ‘사회적 드라마’라고 강조한다. 터너에 따르면 의례 과정의 참가자는 구조와 구조 사이의 이행적 단계인 ‘리미날리티’를 통과하게 되며, 이때 기존의 신분질서나 권력관계가 전도되는 과도기적 사람이나 상황이나 공간을 ‘코뮤니타스’라 부른다. 이러한 코뮤니타스에서는 자유, 평등, 동료애 같은 현상이 일어나면서 구조화된 여러 관계를 지배하는 규범이 해체되기에 언제나 성스러운 것으로 인정받는다. 자유와 상상력이 꽃피는 이 순간들이야말로 모든 사람들이 꿈꾸는 전형적인 축제의 시간이며, 세속적 의례와 여가활동에서도 이와 비슷한 현상인 ‘리미노이드’가 발생할 수 있다. 터너는 사회란 정태적인 ‘구조’가 아니라 ‘구조’와 ‘코뮤니타스’가 번갈아 발생하는 변증법적인 ‘과정’이며, 사회 속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정치, 경제, 법률적 과정 등을 일종의 사회적 드라마, 즉 넒은 의미의 의례적 과정으로 분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위징아 : 호모 루덴스     문화사가 하위징아는 인간을 ‘호모 루덴스’로 규정하면서 최초로 놀이를 학문 연구의 대상으로 간주했다. 그리고 인간의 유희적 본성이 문화적으로 표현된 것이 축제라고 주장했다. 하위징아는 놀이란 실제적 목적 없이 놀이 그 자체가 활동의 동기이고 참여자들에 의해 인정되는 일정한 규칙에 의해 진행되는 비일상적 비생산적 활동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놀이가 문화 속에서 발생하는 것이기에 문화가 놀이보다 상위 개념이라는 기존의 견해에 반해, 우리가 문화라고 부르는 모든 것들은 ‘호모 루덴스’의 놀이충동이 만들어낸 산물이며 놀이가 문화의 한 요소가 아니라 문화 그 자체가 놀이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한다. 모든 형태의 문화는 그 기원에서 놀이요소가 발견되며, 사냥이나 전쟁을 포함한 인간의 공동생활 자체는 모두 놀이의 형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위징아의 생각을 이어받은 하비 콕스는 인간을 ‘축제하는 인간’ ‘환상적인 인간’으로 규정하면서 축제란 억압되고 간과되었던 감정 표현이 사회적으로 허용된 기회라고 주장한다.

 

로저 카유아 : 놀이와 인간의 정체성    로저 카유아는 인문학의 제 영역에 바탕을 두고 인간의 다양한 놀이형태를 특성별로 분류했다. 그에 따르면 놀이는 자유로운 활동, 분리된 활동, 확정되어 있지 않은 활동, 비생산적인 활동, 규칙이 있는 활동, 허구적인 활동의 여섯 가지로 정의된다. 또한 그는 놀이를 규칙성에 따라 ① 통제되지 않은 일시적 기분표출인 ‘파이디아’와 ② 결과에 도달하기 위해 장애물을 극복하는 ‘루두스’로 나누고, 놀이의 속성에 따라서는 ③ 타인과 경쟁해서 우수성을 인정받는 ‘아곤’, ④ 운수나 요행에 놀이의 결과를 맡기는 ‘알레아’, ⑤ 일시적으로 다른 사람이 되어보는 ‘미미크리’ ⑥ 일시적으로 패닉 상태를 즐기는 ‘일링크스’로 나눈다. 카유아는 놀이란 비생산적이고 낭비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놀이를 하는 ‘정신’은 가장 높은 수준의 문화활동을 하게 하는 원동력일 뿐 아니라 개인의 지적발달과 정신교육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개인은 축제를 통해 평등을 체험하고 해방감과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일상의 구속과 제약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고 강조한다.

 

바흐친 : 반 구조적 카니발과 소통시스템      바흐친의 이론은 ‘대화론’으로 요약될 수 있다, 그는 대화가 주체들 사이의 사회적 상호작용이고, 자아-타자간 관계는 '대화적'이고 ‘상호 포용적’인 특성을 가진다고 말한다. 또한 문화란 차이들로 인해 열려 있는 비완결적인 과정이고, 이러한 차이들은 대화를 통해 그 통일성을 발견하게 된다고 강조한다. 중세 기독교 사회에서 유래한 축제인 ‘카니발’은 기존 질서에 저항하면서 억압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며, 그 안에서는 모든 위계적 서열이나 가치나 규범이 사라지고 모든 대조적인 것들의 차이가 없어진다. 또한 카니발 속 민중의 ‘웃음’은 억압적이고 제약적인 모든 것을 정복하며, 조롱과 승리, 단정과 부정, 매장과 부활을 동시에 드러낸다. 바흐친은 이렇게 소란스럽고 무질서한 카니발이 만들어내는 자유롭고 전복적인 세상은 극적으로 대립하는 것들의 소통과 대화가 활발하게 일어나는 공간이기에, 오히려 그 안에서 사회를 유지시키는 상생과 공존의 원리를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마리안느 메스닐 : 민속학에서 민족기호론으로     메스닐은 ‘뱅슈 축제’를 예로 들며 축제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축제의 정형적 현상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민속학적 관점에서 벗어나, 축제를 사회적 삶이라는 맥락적인 차원에서 민족기호론으로 이해해야 하며, 축제의 변화 모습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현재 축제가 연희되고 있는 맥락과 상호작용의 측면을 더 강조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사육제가 ‘출생-죽음-부활’이라는 순환적이고 창조적인 총체성을 재생시키며, 이는 축제를 지지하는 사회적 집단의 존재 및 축제적 시간에 기초한 세계관과 상응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축제와 관계된 문화적 가치를 담지한 사회 집단이 더 이상 ‘공동체’를 구성하지 못하면, 축제는 외형적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더라도 탈신성화되고 탈의미화되며 행위자와 관람자가 분리된 스펙터클인 ‘민속화된 축제’로 변화하게 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축제적 시간’은 해체의 위험에 처한 공동체의 응집력을 일시적으로 회복시키며, 축제는 이러한 연속적인 ‘탈의미화’와 ‘재의미화’의 과정을 반복하며 점차 특정 사회로부터 분리된다.

 

장 뒤비뇨 : 문명과 판타지 그리고 자유로움      장 뒤비뇨는 축제란 기존에 존재하는 신성이 발현된 것이 아니라 ‘신성한 것에로의 의지’이며, 축제 속에서 유도되는 절정은 ‘신성한 것의 통치’와 유사하다고 말한다. ‘상징적 환각’의 상태인 축제가 지속되는 동안 사회는 모호한 일상생활의 습관과 규칙이 전도되고 파괴되는 탈규범 · 탈문화의 세계가 되며, 이렇게 혼미와 희열이 존재하면서 나타나는 축제의 흥분 속에서 인간은 신과 결합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축제는 때로 무례하고 신랄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치밀하고 예민한 상상적 창조의 순간이 되기도 한다. 또한 축제는 사물이나 세상의 질서를 바꾸는 기회나 가능성을 상기시키며, 기존 질서가 부정하는 사물의 잠재적인 실체를 드러내기도 하기에 그 범위에 혁명까지를 포괄한다. 이러한 축제는 열려있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폐쇄되고 황폐화되어버린 현대인의 삶을 위한 하나의 출구로 작용할 수 있으며, 인간에게 잃어버린 꿈을 다시 찾게 해준다.

 

리처드 셰크너 : 퍼포먼스와 스펙터클      셰크너는 민속학과 축제 연구에서 널리 활용되던 연행이론(연행적 의사소통)의 적용 범위를 연극적 스펙터클에까지 확장시켜 활용함으로서 축제 연구의 대상을 다양화했다. 셰크너가 창안한 연극이론인 ‘환경연극’은 배우와 관객이 동일한 환경 속에서 상호교류하는 것으로 보며, 하나의 연극적 연행이 구성되기 위해서는 연행자, 연출가, 텍스트나 연행 행위, 시간, 공간, 관중의 여섯 개 인자가 유기적 관계를 맺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관객도 수동성을 벗어나 연극의 공동 참여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극장의 형식에 구애받음이 없이 자유로운 연극 공간의 창출과 즉흥적인 성격을 강조했다. 축제란 특정한 시공간에서 비교적 많은 사람들이 많은 것을 표현하고, 이해하고, 공감하고, 판타지와 일탈 또는 카타르시스를 경험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연행의 대표적인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의례적 연행과 연극적 연행(스펙터클)을 구분했으며, 의례가 효과성과 결과를 강조하며 상징적 시간을 표현한다면, 연극(스펙터클)은 여흥과 오락을 제공하며 현재의 시간을 중요시한다고 할 수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