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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및 기타

은행 계좌에 구멍이 뚫린 한 주

by 서음인 2021. 6. 27.

1. 이번 달은 소득세를 내는 달이다. 정당한 방법으로 한 푼이라도 절세하려고 세무 사무실에 열심히 자료를 챙겨주고 선고를 앞둔 죄인의 심정으로 세무사의 전화를 기다렸다. 그리고 예상은 했지만 올해도 역시나 엄청난 액수의 세금을 ‘선고’ 받았다. 납부하고 나면 1년간 열심히 아끼고 저축해 쌓아놓았던 은행 계좌의 잔고가 확 줄어들 것 같다. 어쩔 수 없다고 자위해 보지만 앞으로 아이들 셋을 교육하고 결혼까지 시켜야 하는 부모의 입장에서 은행잔고를 바라보면 허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나는 정치 사회 종교를 포함한 어떤 공동체의 이익도 개인의 자유와 권리보다 앞설 수 없다고 확신하지만, 개인의 소유와 관련된 경제적 자유와 권리만큼은 그가 속한 공동체의 경제적 평등과 상관없이 무한히 허용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이 문제에 대한 내 스승은 “평등주의적 자유주의”의 주창자인 미국의 정치철학자 존 롤스다. 정의와 평등의 문제에 깊이 천착했던 롤스는 한 사회가 정의롭기 위한 두 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1) 첫 번째의 원칙인 “평등한 자유의 원칙”은 정치적 시민적 자유가 모든 시민에게 동등하게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2) 두 번째 원칙인 “차등의 원칙”은 ① 모든 성원들에게 균등한 기회가 보장되고(기회균등의 원칙) ② 사회 구성원 중 가장 약한 자에게 가장 많은 혜택이 돌아가도록 조정되는 경우(최소 수혜자 우선성의 원칙)에만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용인된다는 것이다.

 

이는 개인의 창의성을 바탕으로 하는 경제활동의 자유와 그에 따른 소득의 차이를 인정하되, 사회의 부가 가장 약한 자에게 최대의 이익이 돌아갈 수 있도록 분배되는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라는 의미다. 한 마디로 개개인이 적법한 수단을 사용해 벌 수 있는 만큼 벌되, 많이 벌면 벌수록 그 사회의 최약자도 인간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일에 훨씬 많은 책임을 지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롤스가 말하는 "공정으로서의 정의"다. 

 

20세기 내내 지속된 인류사의 가장 거대하고 중요한 실험 중 하나였던 사회주의체제의 실패는 완전한 평등이라는 최선의 이상이 인간의 죄성 때문에 어떻게 최악의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었는지 잘 보여주었다. 그리고 20세기 후반을 지배한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류의 신자유주의는 통제되지 않는 인간의 죄된 욕망이 어떻게 인간 사회를 약육강식과 빈익빈 부익부의 정글로 만들 수 있는지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렇다면 존 롤스의 "공정으로서의 정의" 또는 “평등주의적 자유주의”야 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고아와 과부의 나그네의 하나님”이 명령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이상인 정의와 평등을 불완전하게나마 실현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 아니겠는가?

 

앞으로 내 삶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모르지만 혹시 소득이 올라가서 더 많은 세금이 나오더라도 이웃사랑이라는 성경의 정신을 실천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낼 수 있는 마음과 상황이 유지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내가 낸 세금이 우리 사회가 더 정의롭고 공정하며 평등한 사회가 만들어지는 데 기여할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2. 오래 인연을 맺고 함께 일해 왔던 두 명의 직원이 이번에 퇴직한다. 우리 클리닉의 급여 및 복지 수준은 옆 병원들과 비교해 아주 높은 편으로 알고 있다. 급여 외에도 외래환자 수 및 수술 숫자에 따른 인센티브를 매달 지급해 왔고, 보험료와 연금 세금까지 전부 부담하고 있으며, 20평대 아파트의 임대료까지 매달 대납하고 있다. 당연히 들어갈 퇴직 비용이 만만치가 않다.

 

내 신앙의 멘토이신 오선교사님이 한국에 오셨을 때 내게 하나님께서 직장을 통해 주신 소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으신 적이 있다. “인술을 펼쳐 눈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하고, 직업을 통해 주변에 복음을 전파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다”와 같은 멋진 대답을 준비하며 머뭇거리던 내게, 오 박쉬는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소명은 직업을 통해 가족들을 부양하고 내게 고용된 직원들이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라는 대답을 주셨다. 나는 그 말씀에 무릎을 탁 치며 깊이 공감했다.

 

나와 가장 가까이서 일하는 직원들을 행복하게 해준다는 가장 기초적인 소명을 이루는 데 실패한다면, 사람들이 보기에 아무리 고상하고 거창한 업적들을 이뤄낸다 한들 하나님을 진심으로 기쁘게 해드리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바깥에 드러난 외형과 성취에 집중하지만, 하나님은 드러나지 않는 동기와 과정에까지 관심을 가지시는 분이시다. 병원을 유지하는 동안 맘몬의 유혹에 굴복하지 않고 직원들의 노력에 정당함을 넘어 후한 대가를 지불하기를 아까워하지 않는 신실한 그리스도인, 좋은 인간으로 남아있게 되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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