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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사회/한국사회

고종석의 낭만 미래 (고종석 지음, 웅진문학임프린트 곰 펴냄)

by 서음인 2016. 5. 27.

이 책은 몇몇 대표적 지식인을 선정하여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의제 중 입장이 첨예하게 갈려 있는 주제들에 대해 질문하고 대답을 듣는 형식으로 되어 있는 “지식과 책임”이라는 기획의 한 열매다. 한국에서 자유주의라는 말은 하이에크류의 자유 지상주의나 독재자를 숭배하는 유사 파시즘집단에 의해 오용되고 더럽혀져 있지만, 저자는 칼 포퍼와 존 롤스 그리고 조지 오웰을 스승으로 삼는 자신의  ‘고종석표 자유주의’ 는 그러한 사이비 자유주의와 달리 (국가나 민족을 포함한) 집단이나 공격적 다수에 대한 불신, 좌 우를 막론하고 전체주의에 대한 단호한 반대, 시장의 실패를 보완할 정부의 역할에 대한 폭넓은 인정, 소수자와 약자의 자유에 대한 강력한 옹호를 그 특징으로 하는 “평등주의적 자유주의” 라고 강조한다. 

 

내가 서 있는 기독교라는 토대가 몇몇 구체적 사안에 대한 그의 결론에 대해 100% 동의하는 것을 주저하게 하지만, 나는 그가 강조하는 위와 같은 '고종석표 자유주의’ 의 큰 전제들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공감하는 편이다. 성경은 인간적으로 말하자면 탈출한 노예와 약소국 백성 그리고 포로민들과 식민지 백성들, 한마디로 소수자와 약자의 손을 빌어 기록된 책이며, 성경의 메시지는 절대자 하나님을 제외한 어떠한 종류의 전체주의적이고 전제적인 초자연적, 정치적 권세도 강력하게 무장해제 시키며 비신성화하는 하나님 앞의 평등을 가르치고 있지 않은가? 오늘날 세계 도처에서 억압적인 주류 정치 종교 권력에 의해 고난 받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타종교인들에게 또다른 억압적 권력을 의미할 전제적인 ‘기독교 국가’ 가 아닌, 바로 자유와 평등 그리고 소수자 보호를 골간으로 하는 ‘고종석표 자유주의’ 국가가 아니겠는가?  몇몇 주제에 대한 그의 주장을 직접 들어본다면 그의 자유주의가 어떤 것인가를 더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국가보안법  “국가보안법은 말할 나위 없이 폐지해야 합니다. 국가보안법이 양심의 자유를 제약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미국 연방 대법원판사인 올리버 웬델 홈스는 ‘사상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것은 우리가 동의하는 사상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반대하는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자유주의자는 공동체의 다수가 동의하지 않는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는 사람입니다...”

 

통일  “모든 통일은 좋다는 의견에 대해 저는 생각을 달리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통일은 자본주의 자유주의 통일밖에 없습니다....물론 그 자본주의는 지금 남한의 자본주의와는 달라야 하겠지요. 사회경제적 약자에게 지금보다 훨씬 더 너그러운 자본주의 말입니다...설령 통일이 되지 않아도 남과 북이 사이좋은 이웃나라로 지내는 것 역시 그것대로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통일이라는 가치는 평화라는 가치에 견주어 훨씬 보잘 것 없는 것이고, 심지어 복지라는 가치에 견주어도 대수롭지 않으니까요...”

 

사형제  “사형금지는 사형제가 인간의 존엄에 반한다는 강력한 전제에서 출발합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가장 기본적인 가치로 여기는 사회에서라면 사형제가 존재할 수는 없습니다. 생명권은 그 생명이 누구의 것인지를 막론하고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이 자유주의의 기본 가정입니다. 사형제는 가장 극악한 범죄를 또 하나의 가장 극악한 범죄로 씻어내는 짓입니다...빅토르 위고는 ‘단두대는 인간의 위엄과 문명의 진보를 가장 모욕적인 방식으로 훼손한다. 단두대가 놓일 때마다 우리는 모욕을 받게 된다. 우리가 이 범죄의 주동자가 되는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사형을 통해 범죄자에게 보복하려는 집착은 공동체 차원에서 피해자의 유족들을 도우려는 연대의 노력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낙태  “원칙적으로 낙태는 가능한 한 최소화하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유사 살인인 것은 확실하니까요.....여기서 가능한 한 이라는 것은 ‘임신한 여성이 거부하는 한’이라는 뜻입니다. ‘부양권을 지닌 이들’이 아니라 ‘임신한 여성’입니다. 다른 사람은 거기에 관여할 윤리적 권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서 저는 이 입장에 대해 단호히 임신중절에 찬성하는 입장을 취합니다.....한마디 하자면 임신중절에 반대하는 분들이 대부분 사형제를 지지하는 것도 얄궂습니다. 그 사람들은 왜 태아의 생명은 애지중지하면서 온전한 사람의 생명에는 그만큼의 애착을 보이지 않을까요? 제가 보기에 그이들은 그냥 반여성주의자일 뿐입니다....”

 

안락사  “제 기본적 입장은 안락사를 인정해야 한다는 겁니다. 안락사 문제는 환자가 고통을 무릅쓰고 신이 지정한 시점까지 숭고한 시점을 유지해야 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고통스러운 삶을 포기하고 자발적으로 죽을 권리를 지닐 수 있어야 하느냐의 문제죠. 말을 바꾸면 삶의 존엄이 먼저냐, 죽음의 위엄이 먼저냐의 문제라고도 할 수 있겠죠...그러나 최악의 경우에 안락사는 우생학과 결합해서 우리가 지난 세기 히틀러 정권이나 다른 전체주의 체제에서 목격한 조직적 장애인 제거의 악몽을 재현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동성 결혼  “저는 동성 혼인의 법적 인정에 아무런 유보 없이, 완전히 동의합니다. 그리고 혼인을 했든, 안 했든 동성애에 대한 어떤 사회적 차별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여성이거나 장애인이거나 이주노동자이거나 혼혈인이거나 귀화인이라는 이유로 사회적 차별을 해서는 안 되는 이유와 완전히 동일합니다. 어떤 특정한 개인이 동성애자 정체성을 가장 중요시할 때. 공동체가 그 정체성을 부정할 권리는 없다는 겁니다. 개인에 대한 존중, 소수자 보호는 자유주의의 중요한 원칙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소수자는 공동체의 그늘이자 그림자이고 그 그늘과 그림자에 눈길을 주는 것은 자유주의자들의 임무이기도 합니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는 허용되어야 합니다. 사실 지금의 징병제를 모병제로 바꾸면 이 문제가 발생할 소지 자체가 없어집니다.....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은 나라를 위한 봉사의 의무를 저버리겠다는 것이 아니라. 집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나라에 봉사하겠다는 겁니다....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특히 개신교에서 문제 삼고 있는 것은 그들이 이단으로 여기는 ‘여호와의 증인’ 때문일 텐데요. 매년 수많은 소수파 종교인들을 범죄자로 만드는 이런 종교적 불관용이 예수가 말씀하신 사랑과 양립할 수 있는지 저는 모르겠습니다.....우리가 군대에서 배우는 것의 본질은 결국 사람을 죽이는 일인데, 그것이 국방이라는 맥락을 떠나면 보편타당한 선인지는 확실치 않죠. 사실은 악이지요. 그렇다면 그 악을 실천하지 않겠다는 사람의 의지를 존중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p.s 20세기의 가장 효과적인 마르크스 비판서 중의 하나라는 “열린사회와 그 적들”의 저자인 칼 포퍼를 스승으로 삼는 이 자유주의자는 아마도 한국에서라면 많은 사람들에게 좌파 내지는 유사좌파로 낙인찍히지 않을까? 아이러니를 넘어 일종의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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