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장 그리스도인들은 왜 핍박을 받았을까?
전체요약
1. 기독교의 급속한 전파로 지역에 따라 정권 차원에서 위협을 느낌
2. 조직적이고 전면적인 박해가 시행되지 않았음
3. 박해는 정권이 아닌 민간 차원에서 촉발 - 정치적 사건이 아닌 사회적 현상
4. 적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로 신앙을 떠남
5. 그럼에도 신앙을 지킨 그리스도인들도 많음 - “완고함과 강퍅한 고집
플리니우스의 서신과 기독교 박해
- 로마인들이 기독교인에 대해 남긴 최초의 문서 (AD 112년경)
- 질문은 “기독교인이라는 이름만으로” 처벌할 수 있는가?
- 대답은 “유죄가 입증되면 처벌하되 수색하지는 말라”
박해는 그렇게 광범위하지 않았다
- 박해 사실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과장되었다.
- 카타콤은 집회장소가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이 죽은 자들을 매장한 곳이었다.
- 공인 이전의 박해는 세 시기로 나뉜다.
① 30-64 조직적 박해 없었고 폭력은 로마인들과의 마찰로 인함
② 64-249 대화재로 인한 네로의 박해와 이어지는 간헐적 박해
③ 250-313 데카우스 황제 이후 기독교 공인까지 제국 차원의 조직적 박해
다신교 사회인 로마기 기독교를 박해한 이유 - 무신론자들
- 식인습관?, 근친상간?, 무신론자!
- 로마는 다신교 사회로 기본적으로 속주의 문화와 종교에 대해 관용적이었다.
- 로마의 종교적 사고는 제사를 통한 ‘신들과의 평화’(pax deorum)였다.
- 신들에 대한 제사(경건, pietas)는 로마 시민의 의무로 국가에 충성과 연결되었다.
- 1세기 후반에 공식화된 황제숭배는 국가종교 의식의 일부였다.
- 따라서 다른 신들에 대한 경배를 금하는 일신교는 문제가 많은 종교였다.
- 그들은 무신론자, 즉 신들에게 합당한 존중을 표하지 않는 자들로 여겨졌다.
- 유대교는 전통을 인정받는 종교로 국가 종교에의 참여의무에서 면제되었다.
- 기독교가 유대교와 갈라짐에 따라 문제가 발생했다.
옆으로부터의 박해 - 국가가 아닌 동료 시민들
- 삶에 닥친 모든 불행은 신들의 노여움 때문이며 그 촉발자는 그리스도인이다.
- 군중이 위협하고 관원과 군인들이 보호한다. (예수의 십자가 처형도 마찬가지)
- 회심하면 우상숭배를 멈추고 윤리적 삶을 살아가게 된다.
- 가정집이나 사업체릎 방문했을 때 우상이 없다면 발길을 돌리게 됨.
- 윤리적 삶은 방탕한 친목모임이나 사업모임에 나가기 힘들게 함.
- 결국 그들의 ‘무신론적’ 행태는 사회적 소외와 경제적 손해로 이어지게 된다.
- 옆으로부터의 박해가 여론을 형성하고 위로부터의 박해로 이어질 가능성을 만든다.
- 요한계시록의 독자들은 정치적 박해가 아닌 사회적 소와외 경제적 궁핍을 겪음?
박해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태도
- 죽기를 구하는 자들(death-seeker) - 박해를 불사하는 충성을 정체성으로 삼음.
- 이그나티우스의 편지 - 구명운동으로 순교를 방해하지 말아 달라.
- 죽음을 불사하는 충성은 완고한 고집, 제국의 질서에 대한 도전으로 여겨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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