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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인문/문학14

사랑하는 나의 문방구 (구시다 마고이치 지음, 심정명 옮김, 정은문고 펴냄) 『사랑하는 나의 문방구』는 500권 이상의 책을 남긴 문필가이자 소문난 장서가였던 구시다 마고이치(串田孫一, 1915-2005)가 『월간 사무용품』이라는 잡지에 1970년부터 4년간 연재했던 짧은 글들을 모아 펴낸 책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연필 · 지우개 · 클립과 같이 우리에게 익숙한 물건에서부터, 문진이나 라벨기, 등사판처럼 이제는 거의 볼 수 없는 생소한 물건에 이르기까지, 그의 손을 거쳐 간 56가지의 문방구에 얽힌 개인적 일화와 단상들을 담담한 어조로 들려준다. 그런데 읽다 보면 눈 밝은 독자는 이 책이 ‘문방구’보다 ‘저자’에 대해 훨씬 할 말이 많다는 사실을 쉽게 눈치챌 수 있다. 이 책은 제목만 보자면 일종의 '유사 문방구 백과사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워드 프로세스를 이용한 글쓰기가 .. 2020. 9. 17.
서유기 1-10 (오승은 지음, 임홍빈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 서유기 - 고대 중국인의 사이버 스페이스 (나선희 지음, 살림 펴냄), 어른의 서유기 (성태용 지음, 정신세계사 펴냄) 『서유기』는 중국의 사대기서(四大奇書) 중 하나로 삼장법사가 요괴 출신인 세 제자와 함께 불경을 가지러 천축으로 여행하면서 온갖 어려움을 극복한 끝에 마침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정과(正果)를 얻기까지의 험난한 여정을 재미있게 그린 이야기다. 이 소설은 당나라 시대의 구법승이었던 현장이 실크로드를 통해 인도까지 여행했던 역사적 사실을 그 출발점으로 삼지만, 실제로는 역사의 한계를 완전히 벗어나 신괴(神怪) 혹은 신마(神魔) 소설이라는 새롭고 독창적인 장르의 옷을 입고 새롭게 태어난 완전한 창작물이다. 서유기를 판타지 문학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나선희의 『서유기 - 고대 중국인의 사이버 스페이스』와, 서유기를 불교의 구도 과정을 묘사한 우화로 해설하는 성태용의 『어른의 서유기 - 철들고 다시 읽는, 원숭이.. 2020. 9. 1.
조지 오웰 (피에르 크리스탱 글, 세바스타앵 베르디에 외 그림, 마농지 펴냄) 『조지 오웰 』은 과 등의 소설을 쓴 20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이나 같은 르포 문학의 걸작을 남긴 탁월한 저널리스트이기도 했던 조지 오웰(George Orwell, 1903~1952)의 삶과 작품 세계를 정교한 흑백 만화와 강렬한 컬러 그림에 담아낸 그래픽 전기다. 작가인 피에르 크리스탱과 여섯 명의 만화가들은 식민지 경찰, 극빈층 프롤레타리아, 인민전선 의용군, 르포 작가, 소설가, 사회주의자, 애국자, 국토방위군, 저널리스트, 反전체주의자 등 다양한 얼굴을 가진 이 자유로운 휴머니스트의 초상을 150여 페이지 남짓 되는 그림책 안에 잘 그려냈다.에릭 아서 블레어(조지 오웰의 본명)는 인도의 벵골에서 식민정부의 하급 관리의 아들로 태어났다. 남편과의 관계가 소원했던 어머니를 따라 영국으로 이.. 2020. 2. 21.
아무도 없는 곳을 찾고 있어 (쇼노 유지 지음, 오쓰카 이치오 그림, 안은미 옮김, 정은문고 펴냄) 『아무도 없는 곳을 찾고 있어』는 대학졸업 후 희망도 의욕도 없이 여행사에 근무하다가 서른 다섯이 되는 해부터 커피를 볶기 시작해 고향인 도쿠시마에 ‘아알토커피’와 ‘14g’라는 커피 가게를 열고 10여 년간 커피 로스터로 살아온 한 남자의 이야기다. 요식업이나 소매업을 해본 적도 없고 돈도 인맥도 재능도 없었지만 10년간의 좌충우돌 끝에 ‘살아남는’ 데 성공한 저자는, “지금껏 서툴러 하루하루 격투를 벌이는 나 같은 인간도 어떻게든 해내고 있다”는 말을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일류도 이류도 아닌 ‘보통사람’인 자신이 실수와 실패를 거듭하며 알게 된 것을 앞으로 뭔가 시작하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슬쩍 전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이 책을 썼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커피가게를 열고.. 2019. 10. 4.
발터 벤야민의 수수께끼 라디오 (발터 벤야민 지음, 마르타 몬테이로 그림, 박나경 옮김, 봄볕 펴냄) 『발터 벤야민의 수수께끼 라디오』는 독일의 문예 비평가이자 철학자인 발턴 벤야민이 1932년 프랑크푸르트 라디오 방송 대본으로 썼던 글을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벤야민 책 몇 권을 인터넷으로 구입하면서 함께 산 책이었는데 도착하고 보니 초등학생 상대의 그림책이어서 황당했던 기억이 있다. “농부는 자주 볼 수 있고, 왕은 가끔 볼 수 있지만, 신은 결코 볼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수수께끼 때문에 밤새 한숨도 자지 못한 주인공 하인즈는 친구인 안톤에게서 “자신의 모자를 놓고 갔으니 찾아 달라”는 부탁과 “이미 모자를 찾았으니 신경쓰지 말라”는 자답이 함께 담긴 이상한 편지를 받는다. 이 편지를 받은 주인공은 안톤이 수수께끼 풀기의 귀재임을 떠올리고 해답을 얻기 위해 그를 찾아 .. 2019. 9. 28.
일본적 마음 (김응교 지음, 책읽는 고양이 펴냄) 『일본적 마음』은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숙명여대 김응교 교수가 유학생과 객원교수로 일본에 살았던 1996년부터 2009년까지 13년 동안 썼던 글 중 ‘일본적 마음’을 담은 것들만 모아 펴낸 ‘인문여행 에세이’다. 저자는 ‘예술’, ‘독서’, ‘사무라이’, ‘야스쿠니’의 4부로 구성된 이 책에서 와비사비, 하이쿠, 우키요에, 무라카미 하루키, 사쿠라, 사무라이, 야스쿠니 신사 등 일본을 대표하는 문화적 키워드와 그 안에 담긴 일본인들의 집단 심성을 함축적이고 생생한 필치로 잘 그려냈다. 이 책의 1부인 ‘예술’은 가난과 외로움 가운데서도 맑고 가라앉은 정조를 즐기면서 자족과 풍성함을 누리는 일본의 독특한 미학적 정서인 ‘와비사비’와, 이 정서를 따라 5.7.5 조의 짧은 시구에 한적함과 가벼운 일상, 그.. 2019. 8. 24.
엔도 슈사쿠의 동물기 (엔도 슈사쿠 지음, 안은미 옮김, 정은문고 펴냄) 『침묵』이라는 소설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소설가 엔도 슈사쿠는 자신의 인생에서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존재가 바로 그가 지금까지 길러왔던 동물들이라고 말한다. 동물들은 언제나 그의 말벗이자 친구였고 때로는 친구 이상의 특별한 짝궁이자 위로자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의 아내인 엔도 준코는 이 책의 말미에서 “남편 엔도 슈사쿠에게 있어 동물은 전부 형제 같은 존재로, 그에게는 가축이라는 개념이 아예 없었습니다”라고 회상한다. 그는 이 책에 실린 짧은 글들에서 부모의 불화로 힘들었던 어린 시절 첫 친구이자 말벗이 되어주었던 만주견 '검둥이'로부터 시작해 개, 고양이, 원숭이, 너구리, 구관조에 이르기까지, 그가 키우거나 만나왔던 여러 동물들과의 이런저런 인연을 가식이나 과장이 없는 담담한 목소리로 들려준다.이.. 2018. 9. 21.
그리스 비극 - 인간과 역사에 바치는 애도의 노래 (임철규 지음, 한길사 펴냄) 『그리스 비극 - 인간과 역사에 바치는 애도의 노래』는 원로 인문학자인 임철규 연세대 명예교수가 쓴 그리스 비극 전체를 조망하는 깊이 있는 연구서다. 저자는 6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이 두툼한 책에서 그리스의 3대 비극작가로 꼽히는 아이스퀼로스 ·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의 대표적인 작품들을 선정해, 고전학자와 철학자에서 페미니즘 비평가에 이르기까지 이 고전들을 둘러싸고 고금의 다양한 학자들이 벌여 온 여러 논의와 논쟁들을 소개하며(앞으로 소개할 본문들에서만도 헤겔, 하이데거, 르네 지라르, 레비나스, 데리다, 에드워드 사이드, 시몬 보부아르, 뤼스 이리가라이와 같은 이름들을 만날 수 있으며, 심지어 각주에는 라인홀트 니버와 폴 틸리히의 이름도 나온다!), 각 텍스트의 심층을 깊이 탐사해 감추어진 의미의.. 2017. 4. 6.
그리스 비극 - 아이스킬로스 편, 소포클레스 편, 에우리피데스 편 (이근삼 외 옮김, 현암사 펴냄), 그리스 비극의 이해 (천병희 지음, 문예출판사 펴냄) “인간이 신이 되지 않는 한 인간에게 고통과 절망은 그치지 않는다. 이것이 인간의 조건이다” (임철규, 『그리스 비극 - 인간과 역사에 바치는 애도의 노래』中) 그리스 정신의 정수이자 인류문명사의 찬란한 금자탑 중 하나로 손꼽히는 그리스 비극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 따르면 의하면 디오니소스에게 바치는 합창 서정시인 디튀람보스(dithyrambos) 혹은 사튀로스 극으로부터 생겨났으며, 매년 3월에 아테네에서 열렸던 디오니소스 축제 때 예심을 통해 선정된 세 명의 작가가 세 편의 비극과 한 편의 사튀로스 극을 각각 하루에 한 편씩 무대에 올리는 형태로 총 나흘에 걸쳐 공연되었다. 호메로스의 영웅시대를 지배하고 있던 신화의 세계와 가치가 해체되던 전환기인 기원전 5 세기 아테네의 시민이었던 이들 비극.. 2017. 3. 30.
고대 그리스의 시인들 - 살림지식총서 118 (김현 지음, 살림 펴냄) 神과 詩 고대 그리스 시인들의 작품에서는 항상 신이 등장한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인들은 종교적 실체로서 인간 위에 군림하는 두렵고 전지전능한 신을 상정하기보다는, 신을 인간의 인식능력을 초월하는 신비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형이상학적 술어로 여겼으며 신을 기리며 노래하는 ‘신화적 유희’를 즐겼다. 중요한 시인들 (1) 서양 문학의 출발점인『일리아드』『오디세이아』에서 영원히 빛날 명예를 위해 두려움 없이 죽음의 운명과 맞서는 전설속의 영웅들을 불멸의 신들과의 관계 속에서 노래함으로서 영웅의 힘과 영광을 신의 수준으로 끌어올려 웅장하게 표현한 대시인 호메로스 (2) 세계 질서의 구석구석을 지배하는 신들의 탄생과 그 계보를 밝힘으로서 영웅시대가 저물고 찾아온 철의 시대에 인간의 본분과 정의가 무엇인지를 알리고.. 2017. 2. 10.
일리아스 (호메로스 지음, 김원익 평역, 서해문집 펴냄), 오디세이아 (호메로스 지음, 김원익 평역, 서해문집 펴냄) 『일리아스』와『오디세이아』는 기원전 8세기경 소아시아의 이오니아에 살았던 시인인 호메로스가 그때까지 전승되어 오던 그리스의 전설이나 민담을 집대성하여 기록한 서사시로 서양문학의 출발점이자 원형으로 일컬어지는 고전이다. 이 두 서사시의 중심 사건은 트로이 전쟁으로,『일리아스』는 전쟁 발발 후 트로이가 함락될 때까지 10년간의 이야기이며 (정확히는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의 불화에서 아킬레우스의 죽음까지),『오디세이아』는 트로이 전쟁의 영웅 중 한 명인 오디세우스가 수많은 난관을 헤친 끝에 고향으로 귀향하기까지 10년간의 여정을 그린다. 문학적 소양이 특히 부족한 내가 이 위대한 고전을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겠지만, 몇몇 관련서적의 도움을 받아 간략한 단상이나마 남겨 보기로 한다. 1.『일.. 2016. 11. 9.
오두막 (윌리엄 폴 영 지음, 세계사 刊) 비전케어 미주팀 김진아 집사님의 소개를 받고 지난 주 월요일부터 펴들기 시작했던 이 소설은, 하루 이틀내로 읽을 수 있으리라는 예상과 달리 완독에 1주일 가까이 걸렸다. 처음에는 아이를 잃는 부모의 이야기라는 것 때문에 심리적 저항감에 책장을 열기가 쉽지 않았고, 중반 이후로는 내용에 대한 당혹감이, 거기에 한번에 몇 권씩 책을 읽는 못된(?) 습관까지 곁들여져 생각보다 많이 힘들고 오랜 여정이 되었다. 소설의 내용은 비교적 단순하다. 납치 살해범에게 사랑하는 딸을 잃은 주인공이 딸이 살해된 바로 그 오두막으로 하나님의 초청을 받아, 삼위 하나님을 만나고 그들과의 동거와 대화를 통해 치유를 경험한다는 내용이다. 이 소설의 모티프는 사실 우리에게 낮설지 않다. 오두막은 하나님의 부르심과 사랑, 치유를 거부.. 2016. 6. 1.
몽골 현대시 선집 (이스 돌람 외 지음, 문학과 지성사 펴냄) 내 신앙의 은사이자 멘토인 오박쉬가 파송받아 MK 학교에서 교감으로 봉사하고 계시는 곳, 비전케어라는 단체와 처음으로 인연을 맺고 그 이름으로 의료사역을 위해 밟았던 첫 땅, 매너리즘에 빠져 안주하고 있던 나에게 문화적 충격과 함께 신앙적 소명을 다시 일깨웠던 나라. 그곳에서 잠시나마 보았던 초원과 자연, 들었던 연주와 노래, 그리고 만났던 사람들, 또 몇몇 분들에게 졌던 마음의 부채까지..... 몽골은 그 이후로 나에게 특별한 나라가 되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위대한 대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몽골의 용감하면서도 소박하고 강인하면서도 섬세한 사람들의 삶과 사랑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그래서 나에게 특별하다. 드넓은 고비의 집 데 체데브 먼 여행길에서 피곤에 지친 나는 한 잔의 차를 갈망하며 멀고 광활한.. 2016. 5. 31.
연을 쫓는 아이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현대문학 펴냄) * 모로코의 팅히르에서 열렸던 이번 156차 비전케어 캠프의 여정 중에 두 권의 책을 읽었다. 한 권은 미주 비전케어 김진아 집사님께 소개받은 아프가니스탄 출신의 미국 소설가 할레드 호세이니의 베스트셀러 이고, 다른 한 권은 영국의 신학자 알리스터 맥그래스가 쓴 C.S. 루이스의 두툼한 전기인 다. 오가는 비행시간에 해당하는 36시간이 독서를 위한 황금 같은 선물로 주어진 셈이지만, 아무래도 비행 중에 하는 책읽기는 지속적으로 집중력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기에 좀 읽기에 편안할 만한 책들을 골랐고, 결과적으로 이 선택은 성공한 전략이었다고 자평한다. 1. 아프가니스탄의 지배계급인 파쉬툰족에 속하는 주인공 아미르는 어렸을 때 어머니를 잃고 그의 아버지인 바바와 충실한 하자라족 하인인 알리, 그리고 그의 아들.. 2016. 5.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