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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이야기12

메시야 음반으로 성탄을 맞이하다 성가대인 저는 매년 연말이 되면 성탄절 칸타타를 준비하며 기쁨과 감동을 누려 왔습니다. 신학자 슐라이에르마허는 대중들에게 친숙한 성탄 축제가 딱딱한 교리 교육보다 기독교의 전승에 더 큰 역할을 담당해 왔으며, 감동을 주는 음악은 차가운 의례나 난해한 설교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종교적 감정을 불러일으킨다고 주장했지요. 공감되는 견해입니다. 그런데 작년에 이어 올해까지 코로나 때문에 그 기쁨을 누리지 못하게 되니 아쉬움이 큽니다. 그래서 올해는 그간 모아온 ‘메시야’ 음반들을 한데 모아 진료실에서 하루에 한 편 이상씩 듣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고 있습니다. (사진 1) 세어 보니 메시야 음반만 서른 개가 넘어가는군요! 화려한 비첨, 우직한 클렘페레, 모범적인 데이비스, 엄숙한 리히터, 청아한 호그우드, 깔끔한.. 2021. 12. 19.
진료실에 차린 작은 음악실 (사진 1-3) 진료실에 꾸민 작은 음악실 이번 주는 클리닉에 여러 가지로 신경 쓸 일이 많이 생겨 독서든 글쓰기든 집중이 잘 안되네요. 책상 앞에 앉아 딴짓만 하다가 오늘은 안되는 공부 때려 치우고 진료실에 있는 제 CD 음반이나 소개해 볼까 합니다. 저는 젊었을 때부터 클래식 음반을 모아 다람쥐마냥 집에 잔뜩 쌓아 놓았습니다만, 클리닉에는 그 중에 일반적으로 중요하다고 여겨지고 개인적으로도 친근한 곡들 위주로 곡당 음반 하나씩만 가져다 놓았습니다. (사진 1-3) 보통 많이들 하는 대로 교향곡 - 관현악곡 - 협주곡 - 실내악곡 - 독주곡 - 종교음악 - 오페라 및 성악곡 순으로, 그리고 작곡가가 활동했던 시대 순서로 배열해 놓았습니다. 오페라 쪽은 잘 몰라서 좀 취약합니다. (사진 4-7) 한 곡당.. 2021. 10. 15.
추억의 해남 원장실 오디오 (2011) 승민형제의 도움으로 원장실에 자그마한 오디오 세트를 장만했습니다^^ 이제 집에서 이웃집 눈치보느라 많이 못들었던 교향곡이나 관현악곡들을 좀 많이 들어야겠네요^^ 기계치인 저를 위해서 음악듣는것 외에 모든것을 대행해준 승민형제 땡큐^^* (2011. 2. 7) 2018. 2. 19.
오디오 시스템 세팅! 노집사님 감사!! 어제 교회후배 노승민 집사가 제 병원과 숙소에 방문했습니다. 오디오 매니아로 스피커를 자작할 정도로 장인의 경지에 이른 친구입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고음용 스피커도 노집사의 자작품입니다^^) 약 십여 년 전 음악을 좋아하지만 기계치에 가까운 저를 위해 오디오 시스템을 구축해 주었는데 병원과 숙소를 옮기면서 문제가 생겨 도대체 제대로 소리가 나지 않던 차에 마침 병원 근처로 출장을 온다기에 간절히 부탁해 모셔온 것입니다. 함께 식사후 집에 오자마자 온갖 공구를 꺼내더니 음향기기를 이렇게 험하게 다루다가 고장낸 후 몇 개월씩 방치한 기계치에 대한 분노와 비난의 신음소리와 함께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두시간여 만에 빈사 상태에 빠졌던 내 시스템이 완벽하게 부활했습니다!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 2017. 9. 11.
'시끄러운' 말러 교향곡과 드럼 어제 산 을 흥미롭게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지금은 말러 교향곡 중 가장 전통적이고 점잖은 것으로 평가받는 교향곡 1번에 대한 당대인들의 반응을 보여주는 캐리커쳐(3,4 번째 사진)가 아주 재밌습니다. 죄다 귀를 막고 쓰러져 있네요. 그 시대 사람들이 듣기엔 거의 소음 수준이었던 것 같습니다 ㅋㅋ "비극적"이라는 부제를 가진 6번 교향곡에서는 소방울과 해머를 포함한 온갖 희한한 타악기(?)들을 동원해 구설에 오르기도 했고(다섯 번째 사진), 거대한 규모로 1000인 교향곡이라는 별명이 붙은 8번은 연주를 위해 너무 많은 사람을 동원하다 보니 객석에 청중이 한 사람도 없을 정도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답니다(여섯 번째 사진). 제 생각에 여기에 비하면 요즘 시끄럽다고 말도 많은 드럼은 순한 양 수준 아닐까요 .. 2017. 7. 31.
드럼 논쟁과 "교황 마르첼리 미사"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작곡가 팔레스트리나(Giovanni Pierluigi da Palestrina, 1525~1594)의 "교황 마르첼리 미사", 서양음악의 걸작으로 꼽히며 제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 중 하나입니다. 대학다닐 때 처음 접한 후 너무 좋아서 한동안은 아침에 조금 일찍 일어나 음반을 걸어놓고 다시 침대에 들어가 전곡을 다 듣고 학교에 가기도 했지요. 그런데 혹시 이 고색창연하게 들리는 노래가 당시로서는 새로운 방식이었던 다성음악을 교회에서 금지해야 하느냐의 문제로 시끄러운 논쟁이 벌어졌던 시기에 바로 그 논란의 방식으로 작곡된 노래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그레고리안 성가처럼 고요하고 단순한 단성음악의 형식에 익숙해져 있던 당대 성직자들에게 이 곡처럼 여러 성부가 독자적으로 번갈아가며 노래하.. 2017. 7. 26.
타지키스탄의 대성당과 라흐마니노프의 Vespers 올 가을 비전케어 캠프를 위해 타지키스탄으로 가는 길에 구소련 연방의 하나인 카자흐스탄의 수도 알마티에 있는 유서 깊은 러시아 정교회의 성당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고요하고 엄숙하고, 경건하고...... 그러나 그 모든 것에 앞서 숨막히게 아름다왔습니다. 지성소에 좌정하신 하나님의 임재를 면전에서 뵈었다면, 변화산에서 나타난 예수님의 영광을 직접 대면했다면, 비슷한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 하는 착각(?)에 빠질 정도로... 그곳에서 저는, 보고 듣고 만진 것만을 믿을 수 있었던 도마와 같은 ‘서툰’ 신자로 퇴화하고 말았던 것일까요? 그곳에서 제가 본 것은 '신앙' 이라는 보석이 아니라 '종교' 라는 유해한 껍데기에 불과했던 것이었을까요? 오늘, 러시아의 작곡가인 라흐마니노프가 전통적인 러시아 정교의 .. 2016. 6. 1.
편지의 이중창 그리고 야곱의 사다리 진료실이 한가한 오늘,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을 꺼내어 영화 “쇼생크 탈출”에 나왔던 유명한 “편지의 이중창”을 들으며 영화와 음악에 대한 몇 가지 상념에 빠져 보기로 합니다. 주인공이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에 나오는 ‘편지의 이중창’ 을 들려주었을 때, 쇼생크 교도소의 수많은 죄수들은 마치 석상이라도 된 양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맙니다. 아마도 그들에게 이 아름다운 음악은 囚人의 현실에 길들여져서 삶이 아닌 생존을 강요당하는 그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졌던 그 무엇, 바로 꿈과 희망의 이름으로 다가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 음악이 그들에게 일깨운 것이 단순히 꿈 혹은 희망이라는 단어로만 표현되기에는 조금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음악에 대한 그들의 반응은 꿈이나 희망의 차원.. 2016. 6. 1.
비오는 날에 듣는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비의 노래" 20대 초반의 젋은 시절 한때 브람스를 많이 좋아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집에 틀어박혀 브람스의 교향곡 4번이나 독일 레퀴엠 같은 음악들을 들으면서 별달리 커다란 고민도 없었던 사람이 인생의 비극성과 삶의 고뇌를 홀로 짋어진 것 같은 치기어린 감상에 잠기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브람스는 나의 세계에서 점차로 멀어져 갔지요. 인생의 심오한 비밀을 들려 주는 것만 같던 그의 음악들이 어느 순간 너무 어둡고 칙칙하게 들리기 시작했고, 열정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도무지 찾을 수 없는 맥빠진 황혼의 음악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비오는 날이 되면 어김없이 브람스의 곡인 바이올린 소나타 1번, 일명 “비의 노래”를 찾게 되는 것을 보니 그렇게 멀어졌.. 2016. 6. 1.
고난주간에 듣는 바하의 "마태수난곡" 마태수난곡은 마태복음서를 바탕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를 표현한 음악극으로 지금까지 작곡된 모든 기독교 음악 중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작곡자인 바하에게 다섯 번째 복음사가라는 영예로운 별명을 선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위대한 음악을 듣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일단 전곡을 연주하는 데만 장장 세 시간 이상이 걸리는 대작이기에 전곡을 들을 시간을 낸다는 것 자체가 어렵고, 설령 큰맘 먹고 전곡을 듣기 위해 자리에 앉았다 해도 세 시간 내내 온전히 이 음악에 집중하기란 매우 힘겨운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 일쑤였다. 결국 전곡을 듣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기껏해야 몇몇 좋아하는 곡들만 반복해서 듣는 것으로 만족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10년 전쯤 일터를.. 2016. 6. 1.
"아이들이 치기에는 너무 쉽고, 어른들이 치기에는 너무 어렵다" 호로비츠를 좋아하세요 라는 영화로 클래식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이름이 알려진 금세기의 위대한 피아니스트 중의 한 명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는 젋은 시절 강력헌 타건과 초인적인 기교로 난해하고 화려하기로 소문난 리스트나 라흐마니노프를 즐겨 연주하던 연주가였습니다. 그런 그가 나이가 들어 젋을 때는 잘 연주하지 않던 모짜르트의 피아노 소나타를 연주하자 누군가가 그 이유를 물어보았답니다. 그러자 그는 "이 나이가 되어서야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고 대답했다네요. 언뜻 쉬워 보이지만 제대로 치기는 어렵고, 내면의 아름다움을 끌어내기는 정말로 힘든 곡들이 모짜르트의 피아노 소나타가 아닌가 싶군요. "아이들이 치기에는 너무 쉽고 어른들이 치기에는 너무 어렵다." 피아니스트 아르투오 슈나벨이 모짜르트의 피아.. 2016. 6. 1.
모짜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과 하나님의 미소 혹자는 “바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준다면, 모차르트는 하나님의 미소를 전해준다” 라고 말합니다. 칼 바르트가 쓴 모차르트 이야기(칼 바르트 지음, 한들출판사 刊)에서 저자는 “모짜르트는 음악을 통해 어떤 것을 말하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단지 노래하고 연주하는 것이다. 그는 청중에게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으며 어떤 결정이나 입장을 천명할 것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는 단지 청중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다.” 라고 이야기했지요. 칼 뵘이 지휘하고 Gundola Janowitz, Edith Marthis 가 노래한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음반을 듣다보면 이러한 말들에 대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부부간의 갈등이나 남자의 바람기와 같은 지극히 세속적인 주제를 다루는 이 오페라의 아리아나 .. 2016. 6.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