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과 사경회 특강을 잘 마쳤습니다. “행위가 없는 믿음에 관하여”라는 제목으로 80분간 강의했고 20분 질문을 받았습니다. 학생들이 집중해서 잘 들어주셨고 예정됐던 20분의 질문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질문을 많이 해주셨네요. 끝난 후에는 신학과 교수님들과 식사하며 교제하는 영광도 누렸습니다. 한 교수님께서 오랜만에 신학적 대화가 가능한 장로님을 만나서 기뻤다고 말씀해 주셔서 참 감사했습니다. 준비해주신 정성스러운 선물도 받았습니다. 저도 감사의 마음으로 제 책과 <믿음을 묻는 딸에게, 아빠가>와 정은문고의 신간 <꿈꾸는 도서관>을 선물했고요. 평신도 장로가 무려 장신대 신학과 사경회 강사라니,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감사하고 영광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https://youtu.be/3WhmPW74QEw?si=svOZQ835f1cr8HfY
2분 40초경에 딱 1초 나옵니다 ㅎㅎ















1 장신대학교 사경회에 강사로 초청받게 되어 무한한 영광입니다. 제가 여러분들게 믿음과 행위에 대해 설교를 할 수도 없고 여러분도 그것을 원하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자피 강연 전체가 제 믿음과 행함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자리가 될테니 별다른 소개 없이 시작하겠습니다.
4. 성 안토니우스의 유혹
6 제 강연을 듣는 여러분의 마음은 이 그림과 같을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물들인데 그 크기나 배치가 뒤죽박죽이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맥락에서 분리되어 새로운 맥락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얻는 경우도 있다.
우산과 재봉틀이 해부대 위에서 우연히 만난 아름다움
그 이유는 제가 신학/개념을 연장통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7 신학에 접근하는 두 태도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성당의 방식과 연장통의 방식. 나는 연장통 - 신학 비전공자/개인적 성향/과연 옳은가?
9.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로 죽은 것이다
10. 그리스도인은 오직 은혜로 구원받는 성도이자,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이기도 하다.
그리스도인은 실천하는 사람, 곧 제자여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실천을 규정하는 가장 적절한 용어는 ‘제자’다
14. 교회를 넘어 세상 한가운데 이미 그리스도에 의해 시작되었고 역사의 종말에 그분이 완성하실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는 포괄적인 개념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교회는 더 이상 선교의 주체나 목적이 아닌 이 세상에 샬롬을 세우기 위해 하나님이 쓰시는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며, 하나님의 선교는 교회가 아닌 다른 방식이나 도구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진행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전통적인 관점인 하나님-교회-세상의 패러다임은 이제 하나님-세상-교회로 바뀌어야 하며,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교회에 연연할 필요가 없이 선포와 교제, 그리고 봉사를 통해 종말론적인 샬롬에 동참함으로서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선교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뉴비긴은 그리스도를 주요 구주로 고백하고 회심과 개종과 선교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그리고 교회는 부름 받은 동시에 보냄 받은 사람들의 공동체이기에, 선교란 교회의 한 기능이 아니라 교회의 본질 그 자체라는 ‘선교적 교회론’을 주장한다. 또한 그는 선교의 주체는 삼위일체 하나님이시고 교회는 그 도구일 뿐이며, 구원과 섭리를 포함하는 하나님의 경륜은 교회의 울타리에만 한정되지 않는다고 강조함으로서, 선교하시는 하나님의 자유와 능력을 제한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거부한다.
뉴비긴은 그리스도인들이 타종교인과 무신론자들 가운데 이미 하나님이 주신 선하심에 감사하면서도 우리에게 맡겨진 소명에 따라 겸손하게 복음을 선포해야 하며, 교회는 삶과 예배를 통해 복음의 이야기를 살아내는 그리스도의 제자요 증인 공동체가 되어 삼위일체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스도를 주요 구주로 고백하면서도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자유를 제한하지 않고, 구원을 나와 다른 타자를 언제든 지옥으로 보낼 수 있는 심판자의 자리에 오른 것으로 여기는 대신 예배와 증거와 삶을 통한 겸손한 증인으로의 부르심으로 받아들이는 그의 생각이 나는 참 좋다.
16. 가난한 자/무인격자(조르조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 르네 지라르의 희생양)가 더 정의로운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이 가난한 자를 편애하시는가? 그렇지 않다. 문제는 운동장이 기울어져 있다는 것이다.
신학이 자신의 언어를 고수하느라 타 학문과의 대화나 소통을 거부하게 되면 창조과학이 발생한다.
17. 로티를 끌어들이는 데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는 반토대주의자
그리스도인은 신학의 언어가 궁극적 의미를 가지며 삼라만상의 최종심급의 역할을 한다는 믿는 사람,
그러나 21세기에 신학의 위치는 어디에 있는가.
이론에 입각한 실천은 듣기 좋지만 실천 불가능하며 위험하다.
18. 몰트만은 하나님은 세계 안에 갇혀있는 내재적 존재나 세계 밖에 존재하는 초월적 존재가 아니라 세계 앞에서 미래로 우리를 부르는 분이시며, 따라서 기독교란 그 본질상 철저히 종말론이자 희망이며 끊임없이 ‘약속된 것의 미래’를 소망하며 추구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기독교의 모든 종말론적 소망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부활이라는 역사적 현실에 그 근거를 두고 있으며, 이러한 부활사건은 교회에 다가올 미래를 선취하기 위해 역사의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선교’라는 사명을 부여한다고 강조한다.
사이보그의 말
난 너희 인간들이 상상도 못할 것들을 봐 왔다.
오리온 성좌의 어깨부위에서 불타던 전투함들
탄호이저 관문 부근에서 어둠 속에 반짝이던 C-빔
이 모든 기억들이 시간 속에 스러져가겠지
빗속의 내 눈물처럼
죽을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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