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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기독교/교의 .변증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선포한다 (케네스 리치 지음, 손승우 옮김, 비아 펴냄) 요약

by 서음인 2026. 2. 7.

이 책은 여러 곳에서 행한 성금요일 설교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십자가의 복음을 선포하고 이를 기도와 성서 연구, 다른 사람과의 만남과 연관지어 묵상한 책이다.

 

1. 그리스 사람에게는 어리석은 일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그리스도와 수난이라는 위험한 기억에 의해 형성된다. (요한 밥티스트 메츠) 성찬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의례의 방식으로 재현(기억)하는데 초점을 둔, 낯설고 기이하며 신비한 사건이다. 이 기억을 공동체로 공유하면서 우리는 그분의 구성원, 그분의 몸, 그분의 성육신을 인류 역사로 확장하는 지체가 된다. 그리스도인에게 그리스도는 힘과 은총의 원천이자 고통과 고난 가운데 연대가 깊어지게 하는 분이다. 그리스도교의 선포와 증언은 명백한 부조리, 하느님의 어리석음과 십자가의 어리석음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모든 그리스도교 신학, 그리스도인의 모든 기도와 삶은 십자가에 못박히신 하나님이라는 부조리한 신비에 대한 놀라움과 당혹, 경이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십자가의 길과 그 신비를 이해하고 따르기 위해 필요한 것은 그리스도를 위한 ‘거룩한 바보’가 되는 일이다.

 

2. 그의 상처를 통해 우리는 치유되었다

 

교회는 하나님이 고통으로 가득한 세상에 들어오셔서 그 고통을 당신의 것으로 받아들이셨으며, 고통과 죽음이 완전히 사라진 세상을 이루기 위해 고통을 변모시키시며, 고통이 고통과 싸울 동력이자 치유의 계기가 되는 새로운 장을 창조하신다고 선포한다. 때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연약함과 상처를 들어 다른 사람들이 치유받게 하시지만 고통과 괴로움은 그 자체로는 어떤 고귀함이나 구원도 지니지 않는다. 참된 그리스도교 신앙은 고통과 괴로움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거나 우리를 희생양으로 만들지 않는다. 희생양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다. 낮선 복음의 요구에 따르기 위해서는 고통받는 타인에게서 상처 입은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아야 하며,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고통과 죽음에 맞선 그리스도와 연대하라고, 세상의 모든 곳에서 상하고 멍든 채 발견되는 상처 입은 그리스도를 섬기라고 우리를 부른다.

 

3.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나라

 

오늘날 복음은 희석되고, 개인화되어 있으며, 내면화되어 있다. 하나님 나라는 이 시대의 구조 및 가치와 충돌하지만 서구의 복음은 세상을 뒤집기는커녕 잘못된 가치와 구조를 강화하는 역할을 했다. 예수는 세금 논쟁을 통해 로마제국을 압도하는 하나님의 절대성을 선언했고, 공동 식사를 통해 계층과 위계를 넘어서는 하나님 나라의 개방성을 보여주었으며, 성전 정화를 통해 동시대 정치 권력과 종교 권력의 야합을 폭로했다. 사람들이 예수에 대해 갖는 가장 일반적인 인상은 관용과 화합을 장려하는 위대한 화해자의 이미지이나 예수는 반란자, 범죄자, 안정된 질서를 위협하는 자로 십자가에서 죽었다. 교회는 세상 권력에 대한 궁극적 도전인 십자가 사건을 통해 태어난 공동체이며, 십자가는 인간의 정신과 육체를 억압하는 모든 주장과 권력에 대한 항의의 상징으로 서 있다.

 

4. 하느님께서 부어 주신 사랑

 

예수가 선포한 복음은 변혁에 관한 소식이며 개인의 영혼이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닌 모든 이가 의롭게 되는 것에 관한 기쁜 소식이다. 예수 선포의 핵심인 ‘하나님 나라’는 이러한 구원의 우주적이고 공동체적인 성격을 잘 드러낸다. 따라서 구원은 새로운 공동체, 하나님 나라, 새로운 시대 속 새로운 관계로 구현되어야 하며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의 공동체는 세상을 치유하고 해방시키도록 부름받았다. 예수의 취임설교를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전도와 정의 실천, 영성과 사회적 행동, 기도와 정치는 분리될 수 없다. 이러한 하나님 나라의 요구는 극단적이고 절대적이며, 십자가를 통하지 않고 그 나라로 들어가는 길은 없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① 스스로 종의 자리로 내려가는 섬김과 ② 거룩한 전쟁 전통을 거스르는 비폭력 ③ 원수와 적까지 사랑하는 사랑이라는 예수의 길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5. 하느님이 머무시는 어둠

 

십자가는 어둠과 황폐와 비극이다. 십자가의 길은 앞으로 나아갈수록 우리를 뒤흔들고 두려움을 일으켜 영혼의 어둔 밤/긍정적 해체라고 부르는 더 깊은 모호함과 공허에 빠지게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골고다라는 끔찍한 어둠을 통해서만 자신을 알리시는 분이기에, 거짓 안정을 버리고 이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사람만이 해방자 그리스도가 주시는 참 자유와 승리를 경험할 수 있다. 십자가는 인간 현실의 수렁과 심연을 드러내지만 동시에 그 희생의 피를 통해 해방을 일으키고 분열을 종식시키며 수렁을 메운다. 이러한 화해의 활동은 개인 뿐 아니라 사회와 창조질서를 아우르며, 메시지(로고스)임과 동시에 직분(디아코노스)이다. 그리스도교의 영적 시도의 핵심은 사람들이 거짓 안정에서 벗어나 신앙의 어둔 밤 속으로 들어가도록 돕는 것이이며, 그리스도인의 참된 예배는 십자가와 부활의 변증법을 드러내야 한다.

 

6. 우리들의 유월절 양이신 그리스도

 

십자가의 선포는 현실의 비극성에 대한 감각뿐 아니라 승리와 해방에 대한 확신을 담아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이 부활과 영광으로 연결된다고 고백하며, 모든 이를 위한 생명의 원천이자 그분의 경이를 드러내는 계시의 정점이라고 강조한다. 인간은 부서지고 재형성되는 과정 없이 하느님을 알 수 없으며,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는 것을 통해 그분과 연대하는 것을 의미한다. 초기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십자가는 무엇보다 승리의 상징이었으나 (승리자 그리스도 Christus Victor),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무기로서의 십자가가 아닌 겸손 온유함 사랑의 징표로서의 십자가를 전해야 한다. 성금요일은 해방을 향해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이들을 위한 역동적 축제이며, 무엇보다 십자가의 말씀을 권능으로 선포하는 날이다.

 

부록. 전복적인 전통을 향하여

 

언제부터인지 전통은 두려움과 불안, 지키고 방어해야 한다는 심리를 대변하는 말이 되었다. 그러나 부정하고 반대하는 것만으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으며 그런 운동은 방어와 반대에만 골몰하는 종교 전체주의의 성향을 보이게 된다. 기독교는 강력하고 전복적이기에 폭력과 착취를 지향하는 문화는 해방하는 정통의 힘을 끊임없이 사회에 순응하는 종교로 길들여 왔다. 근본주의는 교리를 변치 않는 진리를 표현하는 명제로 가정하고, 자유주의는 교리가 보편적인 종교 경험을 표현한 상징이라고 여기며, 후기 자유주의는 교리를 특정한 종교 전통의 문법을 반영하는 규칙으로 본다. 그러나 우리는 정통을 공통의 언어와 상징의 전통, 계시와 담론이 살아 있는 공통체에 비판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해주는 전통으로 볼 필요가 있다. 역설과 모호함을 거부하는 것이야말로 이단의 가장 큰 특징이며 정통이란 알지 못함, 하나님이라는 신비, 헤아릴 수 없음에 뿌리를 둔다. 교회는 정치와 기도의 재결합, 성사적 유물론에 바탕을 둔 성찬에 대한 새로운 감각. 육신을 입고 오셔서 거부당하고 죽임당하셨던 분에 대한 기억에 입각한 전통의 회복을 통해 소외된 이들, 추방된 이들과 연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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