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변화하는 제4복음서 연구동향
(1) 요한복음과 종교들의 역사
이 관점은 제4복음서의 독특성을 종교적 역사라는 맥락에서 조명한다. (1) 루돌프 불트만을 대표로 하는 종교사학파는 제4복음서가 일종의 영지주의적인 교설을 담은 문서라고 주장했다. (2) C.H. 도드는 헬레니즘의 대중 종교가 담긴 문서인 헤르메스 문헌에서 요한복음과의 병행을 발견했다. (3) 여러 학자들은 쿰란 문헌을 토대로 요한복음이 묵시문학적 경향을 가진 소종파 유대교에서 출현했다고 주장한다.
(2) 요한복음의 사회학적 읽기
이 방식은 요한복음의 사회적 맥락을 파악하기 위해 사회과학의 통찰을 사용한다. (1) 사회사적 방식은 웨인 믹스, 루이스 마틴, 레이몬드 브라운으로 대표되며 복음서 배후의 공동체를 재구성하는 데 집중한다. 이들은 소종파인 예수 추종자들과 동시대 주류 유대인들간의 갈등과 상호작용으로 요한복음을 설명한다. (2) 제롬 네이레이와 브루스 말리나는 고대 지중해 세계를 지배했던 명예-수치라는 가치 체계와 후견인-피후견인 관계에 집중한다.
(3) 요한복음에 대한 문학적 분석
이 방식은 요한복음이 무엇보다도 문학작품이며 요한복음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복음서의 최종 본문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에 8장 간음한 여인의 이야기와 21장의 부록 부분은 포함되지 않는다) 이러한 요한복음 연구의 ‘문학적 전환’(Literary Turn)에 기여한 선구적인 연구는 엘런 컬페퍼의 『요한복음 해부』다. 제4복음서의 저자는 마가나 누가같은 다른 복음서를 알고 있었던 것 같지만 예수에 대한 자신만의 이야기를 드라마의 형태로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4) 제4복음서의 드라마적 특성
요한복음은 그리스 드라마라는 장르로 볼 때 가장 잘 이해될 수 있다. ① 요한복음의 서문은 독자들에게 앞으로 마주하게 될 이야기를 미리 알려주는 그리스 드라마의 휘포테시스(hypothesis)와 유사한 기능을 한다. ② 요한복음 내러티브에는 청자들이 드라마의 인물들이 깨닫지 못하는 비밀을 공유하는 ‘드라마적 아이러니’가 등장한다. ③ 최후의 만찬 담화의 15-17장은 그리스 드라마의 특징인 주요한 인물들의 ‘지연된 퇴장’과 정확히 유사하다. ④ 사마리아 여인, 막달라 마리아, 도마는 예수와의 만남을 통해 그리스 드라마에서 익숙한 ‘변화된 인식’(anagnoresis)에 도달한다.
2. 역사와 마주하기
(1) 요한복음과 역사
요한복음은 목격자의 증언이라고 스스로 진술하거나 이에 기초하고 있다. (요 19:35-37, 요 20:30-31) 이는 직접 목격한 역사기록을 아주 높게 평가했던 그리스 역사기록학의 이상을 반영하는 것처럼 보인다. (투키디데스, 폴리비오스, 요세푸스) 그러나 이들과 달리 요한복음은 목격자의 이름을 명확히 밝히지 않는다.
(2) 변화시키는 만남들
드라마로서의 요한복음에서 예수는 여러 인물들과 만나 교류하며 이 모든 이야기에는 변화의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다. ① 사마리아 여인과의 만남에서 요한은 이야기의 역사성보다 예수와 개인이 만났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해 훨씬 많은 관심을 보인다. 이 이야기는 과거의 한 만남이 아니라, 어떠한 상황과도 독립된 진리와의 드라마적인 만남이다. ② 마리아는 예수의 발에 향유를 부음으로서 예수를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이자 부활이요 생명이신 이로 새로이 인식하게 되었음을 고백한다. (변화된 인식) ③ 요한복음 20장에서 막달라 마리아가 경험한 변화된 인식의 초점은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가 하나님과 공유하게 된 연합을 깨닫는 것이었다. 이러한 인식은 우리를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 및 사명/선교로 이끈다.
(3) 예수와의 만남을 인도하는 사람으로서의 애제자
애제자는 청중이 예수과 관계맺을 수 있도록 하며, 이야기의 다른 인물들에 의해 예시된 일련의 드라마적이고 변혁적인 만남을 경험하게끔 독려한다. 예수는 십자가 상에서 그의 어머니를 애제자에게 부탁하며, 이로서 애제자는 예수의 입양된 형제가 된다. 그는 최후의 만찬에 동석했고, 십자가의 현장을 지켰으며, 빈 무덤에도 있었다. 독자는 애제자를 통해 예수와 함께한다는 것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3. 제4복음서에서의 신학 하기
(1) 어떻게 하나님을 알 수 있는가
저자에 따르면 요한복음 사가의 가장 큰 관심은 존재론이 아니라 인식론에 있다. 그는 하나님이 누구신가, 하나님과 예수의 영은 어떤 분이신가에 관심을 두기보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알 수 있는가, 그리고 그러한 앎이 주는 함의는 무엇인가에 집중한다. 이 질문에 대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지 우리의 눈을 열고 하나님께서 분명히 드러내시는 것들을 보는 것뿐이며, 이렇게 봄(vision) 안에 거하는 것은 그 자체가 참되고 풍요로운 삶이다.
(2) 보는 것(vision)의 중요성
요한복음에는 ‘봄’이라는 시각 이미지가 많이 등장한다. 요한이 말하는 ‘봄’은 ‘믿음’과 동일한 것으로 예수에게 집중된 시각을 의미하며, 이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자 하나님을 엿볼 수 있게 해주는 렌즈다. 이렇게 신성한 차원을 ‘봄’에 대한 갈망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전해졌던 유대교적 유산의 일부였다. 헬레니즘 세계에서도 데메테르나 페르세포네를 숭배했던 일부 신비주의 종교 집단이나 필론이나 플루타르코스 같은 철학자들은 인간에게 영감을 주고 변혁시킬 수 있는 ‘봄’, 즉 신비적 만남을 추구했다. 1세기는 하나님을 ‘보려는’ 탐구가 유행하던 시기였다.
(3) 하나님을 ’보는‘ 것에 대한 요한복음의 이야기
진리를 바르게 보는 것에 대한 요한복음 기자의 주장은 “하나님을 뵌 사람을 여태껏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하나뿐인 아들이신 하나님, 곧 아버지 품속에 계신 그분이 자세히 알려주셨다”(요 1:18)이라는 구절에 잘 요약되어 있다. 요한복음에 따르면 하나님이 머무시는 혹은 거하시는 지상의 장소가 바로 예수이며, 이 예수 안에서 믿는 자들은 하나님 안에 머문다. 우리가 아들이라는 렌즈를 통해 하나님을 ’보기‘ 위해서는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한다. 요한복음에 나오는 예수와 관련된 다층적인 이미지들은 복음서의 마지막에 나오는 중심 사건, 거대한 이미지와 연결되어 있다. 이는 고통스러운 수치의 도구 위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영광스럽게 된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다.
(4) ‘말씀’의 말씀이 이미지를 설명하다
예수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행동을 통해 자신의 사역이 종의 역할을 감내하는 것임을 알렸으며(요 13) 이는 빌립보서 2장 그리스도 찬가의 내용과 놀랄 만큼 유사하다. ‘그리스도의 마음’은 겸손한 섬김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이 섬김이 십자가의 사명을 받아들이게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섬김은 자신을 완전히 내어주는 사랑에 뿌리내려 있으며, 예수는 제자들에게 두 차례에 걸쳐(요 13;34, 요 15:13) 이 사랑을 명령한다. 더 나아가 요한일서 저자는 하나님을 사랑과 동일시하는 유명한 주장을 하기까지 했다. (요일 4:16) 우리가 요한복음을 통해 궁극적으로 ‘봐야’할 한 가지는 바로 이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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