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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연구훈련/성경연구단상

종교개혁 이전의 핵심적 성서번역과 신학언어들

by 서음인 2024. 2. 26.

1. 예수시대(고대 지중해 세계)의 언어
 

지배민족인 로마의 언어라틴어
로마제국 전체(헬레니즘 세계)의 공용어헬라어(그리스어)
예수님이 살았던 팔레스타인 지역의 지역 공용어아람어
구약성서의 언어 히브리어

 
2. 구약성서의 거의 대부분은 히브리어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런데 유대 민족은 망국과 포로생활과 팔레스타인으로의 귀환과 같은 역사적 격동을 거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신약시대인 기원후 1세기경이 되면 구약성서의 언어인 히브리어는 일부 제사장 계층을 제외한 평범한 유대인들에게는 생소한 언어가 되었습니다. 그 당시 팔레스타인에 살았던 유대인들은 히브리어를 거의 몰랐고 주로 아람어나 헬라어를 사용했을 것이라고 합니다.
 
3. 특별히 팔레스타인 지역이 아닌 로마제국 곳곳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디아스포라 유대인, 바울도 디아스포라 유대인 중 하나였습니다)은 당연히 히브리어로 된 구약성서를 읽을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을 위해 기원전 2세기경(?) 히브리어 성서를 헬라어로 옮긴 것이 70인역(셉투아진트, 약칭 LXX)입니다. 히브리어 구약성서와 70인역은 내용과 체제에서 꽤 차이가 있다고 해요. 70인역이 중요한 이유는 신약성서에 나오는 구약의 본문이나 내용들이 모두 히브리어 성서가 아닌 70인역에서 인용되었기 때문입니다.
 
4. 신약성서는 아시다시피 전부 헬라어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서신을 포함한 모든 신약성서는 우리가 잘 아는 철학자나 수사학자들이 쓰던 고전 헬라어가 아닌 일상적이고 상업적인 헬라어인 코이네 헬라어로 기록되었습니다.
 
5. 따라서 대부분의 초대교회들은 헬라어로 이루어진 성서(70인역 구약성서 + 헬라어 신약성서)를 자신들의 텍스트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북아프리카에 있던 로마의 식민도시인 카르타고에 살았던 테르툴리아누스(터툴리안)는 처음으로 라틴어를 신학 언어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헬라어와 헬라 철학에 근거해 신학적 사변을 전개하는 기존의 신학에 반발해 라틴어와 로마법 체계/사상에 근거해 신학적 체계를 세우려 시도합니다.
 
6. 헬라어로 신학을 하는 전자를 동방 신학이라고 부르고, 라틴어를 신학 언어로 사용하는 후자를 서방 신학(라틴 신학) 이라고 부릅니다. “아테네와 예루살렘이 무슨 상관이 있는가”라는 테르툴리아누스의 유명한 말은 동방 신학에 대한 서방 신학의 독자적 자의식을 나타낸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7. 이러한 라틴 신학은 4세기말경 히에로니무스(제롬)이 번역한 라틴어 번역본인 불가타 성서(벌게이트 성서)를 주 대본으로 삼게 됩니다. 불가타 성서는 이후 종교개혁 시기 전까지 서방신학을 지배한 절대적 텍스트가 됩니다.
 
8.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후 유대-기독교를 지배한 신학 언어는 세 가지가 됩니다.
 
(1) 헬라어(70인역 구약성서+헬라어 신약성서)를 사용하는 동방신학 (비잔틴 제국)
(2) 라틴어(불가타 신구약 성서)를 신학 언어로 사용하는 서방신학 (가톨릭 신학)
(3) 히브리어 구약성서를 사용하는 유대교 신학
 
9. 종교개혁 시대에 에라스뮈스나 루터를 포함한 종교개혁자들은 ‘원전으로(ad fontes)'를 외치며 불가타 성서의 권위에 도전해 헬라어나 히브리어 원문로부터 직접 새로운 라틴어나 독일어 번역을 시도합니다.
 
10. 종교개혁 시대 이후에 나오는 번역본들은 모두 구약은 히브리어 성서로부터, 신약은 헬라어 성서로부터 번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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