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학자 필리스 트리블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저는 트리블의 책 중 『하나님과 성의 수사학』 (유연희 옮김, 태초 펴냄), 『공포의 텍스트』 (김지호 옮김, 도서출판100 펴냄), 『수사비평』 (유연희 옮김, 한국기독교연구소 펴냄)을 가지고 있고, 그중 앞의 두 권을 읽었습니다.
성서학에 페미니스트 관점을 도입한 개척자인 트리블은 수사비평의 방식으로 텍스트를 섬세하게 분석해 성서 내러티브가 품은 희망과 공포, 억압과 해방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하나님과 성의 수사학』 및 『공포의 텍스트』 는 제게 가장 큰 충격을 주고 저를 깊이 몰입시킨 성서학 텍스트였습니다. (사진 1)
젊은 시절 『하나님과 성의 수사학』을 접하며 받았던 신선한 충격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이 책은 내가 진리로 확신해 온 ‘정통’의 성서읽기 방식이 전근대적 가부장 남성의 시선에 오염되어 있으며, 그 짙은 색안경을 벗어버릴 때라야 성서가 품은 본래적인 性해방의 메시지를 바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습니다. 저는 이 책을 독서의 여정에서 만났던 여러 책들 가운데 최고 중 하나로 꼽습니다. 특히 아직까지 룻기를 다룬 이 책의 6장 인곡(人曲)만큼 흥미롭고 가슴 뛰는 성서학 텍스트를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사진 2)
비교적 최근에 접한 『공포의 텍스트』는 하갈, 다말, 레위인의 첩, 입다와 같이 구약성서에서 가부장적 폭력으로 희생된 여성들이 겪었을 학대와 폭력, 절망과 공포를 강렬하고 고통스럽게 드러냅니다. 저자는 희생자들이 겪었던 고통을 신학으로 설명하거나 합리화하려는 어떤 시도도 거부하면서, 그 여성들이 겪은 고대의 공포 이야기는 놀라울 정도로 오늘을 살아가는 여성들의 현실에 대해 말해 준다고 말합니다. 이미 이 책의 존재와 내용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음에도 실제로 이 텍스트를 읽는 일은 끔찍하고 고통스러웠습니다. (사진 3)
성서읽기의 시야를 열어주고 성서학의 가치를 알려준 귀한 스승에게 하늘의 평안이 있기를! R.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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