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좋아하는 예수전 중의 하나인 욕쟁이 예수(살림 펴냄) 를 썼으며 “문학과 인문사회과학을 동시에 섭렵했고, 미학 공부하러 유학 갔다가 신학을 공부했으며....낭만성향과 생태적 감수성, 의협심과 무모함, 반골기질” 등을 두루 갖추었다는 이 탁월한 글쟁이가, 그간의 독서 여정에서 만난 "혼자 전율하고 희구하기에는 아까운 한 구절, 마음에 불을 지르고 지울 수 없는 자국을 남기는 그 한 구절”들에 자신의 짧지만 빛나는 단상을 덧붙여 이 책에 모아들였다. 책의 만듦새나 구성은 일견 소녀취향의 격언 모음집을 방불케 하지만, 풍부한 시적 감수성과 탄탄한 인문학적 내공을 바탕으로 각 구절 안에 감추어진 '진실'의 광맥을 드러내 보여주는 저자의 솜씨는 절로 감탄과 공감을 자아낸다. "영성"과 관계된 책들과는 거의 상극이라 할 만한 정신세계를 가진 나 같은 냉혈한 마저도 도무지 눈을 뗼 수 없게 만들다니, 정말 좋은 책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아니면 혹시 돌과 같이 단단하던 내 마음이 세월의 흐름과 함께 살과 같이 부드러워진 것일까? 하나같이 주옥같은 구절에 주옥같은 단상들이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내게 좋은 깨달음과 위로를 준 몇 구절을 모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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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어렵다 남의 고통을 고쳐보겠다고 나서는 것은 용단을 필요로 하는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남의 고통을 해결하겠다고 나서지 않는 것은 훨씬 더 어렵다.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 것처럼 쉬운 일도 없지만 실은 고통 받는 사람 곁을 지키며 가만히 있는 것만큼 힘든 것도 없다. 왜냐 하면 자신의 무력감을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무기력한 친구의 상태와 같아지는 것은 인간이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성육신이다
나태함의 두 얼굴 역설적이지만 나태해질 권리를 보장해주지 않는 사회는 악하다. 나는 성실함과 나태함 중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고 열심히 살라고만 강요하는 사회가 가장 악한 사회라고 믿는다. 같은 맥락에서 불순종할 자유를 주지 않고 복종만 요구하는 부모가 가장 악한 부모다. 영적 기복을 불허하고 헌신만을 외치는 목회자가 가장 악한 목회자다. 헐떡이며 이익을 추구하는 시간이 가장 무익할 수 있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비효율적 시간이 실은 가장 유익할 수도 있다.
오죽하면 하나님이 한숨을 돌리셨을까 안식일만이라도 경쟁을 위한 질주를 멈추고 혼인 잔치를 즐겨야 할 텐데, 안식일에 되려 가속하는 우리는 정글의 사나운 짐승이 되거나 감정도 없는 ‘생존봇’이 되어 간다. 오늘의 한국교회가 복기해야 할 가장 절박한 메시지는 “하나님도 한숨을 돌리셨다” 는 말씀이어야 한다. 오죽하면 하나님이 다 쉬셨을까.
본디 천박한 은혜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이 인간이 짐작하는 것과 얼마나 다른지 보여주기 위해 자극적 사례를 들곤 한다. 보통 사람으로선 용납할 수 없는 극단적 인생을 허락하시고, 그런 인생을 향한 극단적 사랑을 보여준다...... 그러나 ‘모범적인 형’으로 살아온 이들은 ‘돌아온 탕자’가 증거하는 극단적 은혜를 천박하다고 힐난한다. 그러서일까 마이클 야코넬리는 "은혜보다 교회 안의 사람들을 더 화나게 하는 것도 없다" 고 했다. 참된 은혜는 사람을 걸려 넘어지게 한다. 자신의 공로에 의지하는 이, 사랑받기 위해 몸부림치는 이를 격발시키지 못한다면 은혜가 아니다. 은혜는 본디 천박한 법이다.
사라지게 두라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사라지게 두라고. 실행에 옮기지도 못할 기회를 바리바리 쌓아두면 벌레가 꼬이고 고약한 냄새가 난다고. 오가는 기회에 일희일비 말고 인생이 기회상실의 연속임을 받아들이라고. "불편해도 괜찮아"의 김두식을 흉내 내자면 "놓쳤어도 괜찮아" 이다.
유목이라는 전쟁기계 유목적 그리스도인은 제도화, 화석화된 교계에 反한다. 종교 권력이 점령한 ‘영토’를 ‘탈영토화’ 한다. 믿음 좋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떠해야 한다는 ‘코드화된’ 기독교를 전복한다. 그들은 우리 세대의 성상파괴주의자이며, 정주적 기독교와 싸우는 ‘전쟁기계’이다. 하지만 이는 파괴의 전쟁이 아니라 창조의 전쟁이다. ‘그리스도의 군사’라는 바울의 메타포는 이제 유목전사 nomadic worriors 로 재해석되어야 한다.
불안은 나의 양식, 약함은 나의 음료 다른 나라들처럼 왕을 세워달라는 것은 하나님나라의 자유민이기보다 제국의 신민이길 원한다는 것이다. 반복한다. 불안한 삶, 나약한 삶이 바로 우리 생의 본질임을 받아들여라. 이를 거부하고 힘과 안정을 추구하는 것은 제국을 확대. 재생산함으로써 자신과 다른 이들을 억압하는 삶으로 끝나고 만다.
미야지키 하야오 감독의 <붉은 돼지> 中, 배고픈 파시스트이보다 배부른 돼지이기를 페라린 : 모험 비행가의 시대는 끝났단 말이다! 국가라든지, 민족이라든지. 그러한 시시한 스폰서라도 두지 않으면 날 수 없어! 포르코 : 파시스트가 되느니 돼지 쪽이 낫지.
폴 투르니에, <인생의 사계절> 中, 개길 수 없으면 은혜가 아니다 아브라함과 모세에서부터 야곱, 예레미야. 베드로, 바울에 이르는 성경의 인물들도 하나같이 갈등으로 점철된 삶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하늘에 저항합니다....하나님은 곧바로 포기하는 이들보다는 그분과 맞붙어 싸우려는 이들을 사랑합니다. 성경의 인물들은 하나님과 싸우며 성장했습니다. 실로 그들은 참인간이었습니다! 자신을 변호할 줄 알았고, 쉽게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보여준 의탁은 남자다운 용기에서 나온 행동이었습니다.
악하디 선한 물론 성경은 인간의 악함을 통렬하게 지적한다....하지만 인간은 그럼에도 하나님의 형상이고, 그로 인한 신성과 선함,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음도 엄연한 사실이다. 이를 부인하면 죄의 능력이 하나님의 창조보다 더 강하다고 하는 신성모독의 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인간의 선함을 송두리째 부인하고 죄의 능력을 경배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능멸해 왔다.
목차
1 시든 꽃에 반하다
나를 즐기렴ㆍ016│시든 꽃에 반하다ㆍ018│하찮기에 더 소중한ㆍ020│내게 온 이 하나만큼은ㆍ023│거절만큼 절박한 요청이 있으랴ㆍ025│가식적인, 아니 가시적인ㆍ027│참 즐거움의 색은 초록ㆍ030│믿지 않되 존중하는ㆍ032│공손히‘살 보시’를 받다ㆍ033│그분이 손수 짠 무늬ㆍ035│노동과 미학이 얼싸안을 때ㆍ038│헌신보다 향유가 먼저다ㆍ041│‘나’가 아니라‘우리’로ㆍ044│하나님의 동문서답ㆍ045│구제는 없다ㆍ048│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어렵다ㆍ050│늘 있는 것들을 위한 노래ㆍ054│온 세상 vs. 단 한 명ㆍ056│바람의 애무ㆍ058│고통을 시로 바꾸는 연금술사ㆍ059│나의 살던 고향은ㆍ061│가혹해서 아름다운 행복론ㆍ064│사랑하면 죽는다ㆍ065
2 시시한 삶을 고르다
나태함의 두 얼굴ㆍ068│둠벙을 만드는 그리스도인ㆍ069│게으름은 천부인권이다ㆍ072│제 숨을 쉬며 걷는길ㆍ074│오죽하면 하나님이 한숨을 돌리셨을까ㆍ076│안식을 향한 열망ㆍ078│두려움의 부재와 과잉 사이ㆍ080│입맞춤 하나 지니고 살리ㆍ084│말보다 꽃ㆍ086│강함은 관계에서 나온다ㆍ089│우리는‘복수형단수’로 존재한다ㆍ090│본디 천박한 은혜ㆍ094│신이 날 사랑하는 방식ㆍ097│죽음에서 피워낸 경제학ㆍ100│향유가 생태다ㆍ102│그 집에 가고 싶다ㆍ103│잔인한 소속감ㆍ104│시시한 삶을 고르다ㆍ106│한국 교회에 가장 절실한 가르침ㆍ108│폭풍보다 센 빈풍貧風ㆍ111│가장 무서운 말ㆍ112│광장으로 가신 예수ㆍ115│신이 기도에 응답하는 방법ㆍ120│도리도리가 먼저다ㆍ122│병든 육체와 함께 구원을 기다리다ㆍ124
3 신발 끈 매는 걸 보러 가다
쥐와의 동침ㆍ128│이야기로 영생하다ㆍ132│예수에 대한 의리ㆍ133│스스로 살 수 없는 하나님ㆍ135│사라지게 두라ㆍ138│방언보다 방귀ㆍ140│출애굽은 모든 나라의 경험이다ㆍ142│세상 모든 주부에게ㆍ145│신발 끈 매는 걸 보러 가다ㆍ150│책 읽기의 회심ㆍ152│전쟁을 부르는 경제ㆍ156│유목이라는 전쟁기계ㆍ160│하늘에 뿌리내린 자들ㆍ163│축제연출가 하나님ㆍ165│꿀 타지 않은 일상ㆍ168│뿌리가 부끄럽다ㆍ170│생활과 신앙이 하나였던 시절의 기도ㆍ173│왜곡된 모정ㆍ178│넌 작아지니? 난 커지는데!ㆍ181│획일성의 저주ㆍ184│가까운 벗이 위인이다ㆍ186│귀여운 교인ㆍ192│불안은 나의 양식, 약함은 나의 음료ㆍ194│도시에 사막을 일구라ㆍ195│걷기는 배타적이다ㆍ196
4 시적이지 않은 혁명은 가라
창녀가 집전한 성찬ㆍ202│두 번째로 위대한 기도ㆍ207│신분 상승의 욕망을 버려라ㆍ209│낮은 자들과의 연대 없는 예배ㆍ211│나를 부끄럽게 하는 사람ㆍ214│이런 어머니 안 계십니까ㆍ216│따끔함과 따스함ㆍ218│시적이지 않은 혁명은 가라ㆍ220│행동이라는 이름의 묵상ㆍ222│대책 없는 예수의 윤리ㆍ226│배고픈 파시스트보다 배부른 돼지이기를ㆍ230│구하고 받은 줄로 믿었던 사람ㆍ233│진정한명문가ㆍ236│무균질 가정에 때를 묻혀라ㆍ238│고통을 환기시키는 사람ㆍ241│죽더라도 바로잡을 수 있다면ㆍ243│사랑으로 통하다ㆍ248│신앙까지 때려잡은 반공ㆍ249│반토건 성경ㆍ251│골리앗을 넘어뜨린 투표지ㆍ254│선교가 선교를 막다ㆍ256│신앙의 반미주의자들ㆍ259│세상의 고통에 대한 예의ㆍ263│요한과 김어준ㆍ266
5 끝없이 패배하는 삶을 한없이 긍정하다
개길 수 없으면 은혜가 아니다ㆍ270│무엇을 준대도 놓치고 싶지 않은ㆍ274│아이는 윤리의 창시자ㆍ276│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자유ㆍ278│불순함의 옹호자 예수ㆍ280│단 한 잔의 술ㆍ282│죽임당한 미의 하나님ㆍ284│뉴턴의 만유인력, 힐데가르트의 성인력ㆍ287│변두리 성자의 태극권ㆍ290│본회퍼의 방법적 회의ㆍ293│백년해로의 급진성ㆍ298│연약한 자 사이로 그분을 따라가다ㆍ301│말랑한 감사가 철옹성을 무너뜨린다ㆍ304│아버지 됨의 영광과 고통ㆍ308│저녁을 놓치면 모든 것을 놓친 것ㆍ312│악하디 선한ㆍ316│예수에게 베팅하라ㆍ320│제로섬과 윈윈 게임ㆍ322│타락한 회심을 회심케 하라ㆍ326│똥꽃보다 더 아름다운 꽃이 있으랴ㆍ330│내가 원하고 선택한 삶ㆍ334│부디 달라지지 마라ㆍ337│스스로 제한하는 은혜ㆍ340│거룩한 바보의 길ㆍ343│감각의 제국ㆍ347│승인된 욕망ㆍ351│끝없이 패배하는 삶을 한없이 긍정하다ㆍ354│읽지 않아도 괜찮아ㆍ358
감사의 글ㆍ360
인용 출처ㆍ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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