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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인문/읽기쓰기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이연숙 옮김, 청어람미디어 펴냄)

by 서음인 2025. 2. 6.

이 책은 고양이 빌딩으로 유명한 다독가, 장서가, 저술가인 저자 다치바나 다카시가 쓴 “독서론, 독서술, 서재론”이다. 20만권의 장서를 소장하고 평생 엄청난 양의 독서를 해온 일본을 대표하는 저술가의 책과 독서 이야기답게 귀 기울여 들을 내용이 많다. 특히 나이가 들고 저자의 이름을 얻게 된 후에 접해서인지 그의 독서론에 더 많이 공감하게 된다. 중요한 내용을 정리해 독서의 길잡이로 삼기로 한다.
# 저자가 작년 10월에 별세하셨군요. 남겨주신 귀한 가르침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나의 지적 호기심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알려고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으며, 인간이 문명사회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지적 욕구의 역사적 축적 과정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인류문명은 주로 실용적인 지적 욕구에 의해 형성되었지만 이를 저변에서 지탱하는 것은 ‘어찌되었든 알고 싶고 조금 더 알고 싶다’는 순수한 지적 욕구다. 소재식(所在識) 검사에 사용되는 세 가지 질문 -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지금은 언제 - 은 인류가 전 역사를 통해 찾고자 노력해 온 목표이며, 이에 대해 깊이 있는 대답을 찾고자 기울여 온 노력이야말로 과학과 문화와 문명을 만들어 온 원동력이다. 지적 욕구의 수준이 낮은 사람은 지식이 오토마톤화된 후 학습에 대한 의욕을 상실하지만 지적 욕구가 높은 사람은 그후에도 자신의 의식을 이끌어 새로운 지식을 학습하려고 시도한다. 오토마톤화된 자신에게 만족하지 않고 지적 욕구를 항상 새로운 곳을 돌리는 인간만이 지속적으로 내면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으며, 이런 삶의 방식이야말로 '잘 사는' 방법이다. 공부를 하는 것이 가장 즐겁지만 50대가 넘어가는 현재 만족할 만한 지적 수준을 유지하며 작업할 시간이 많이 남아있지 않다. 시간이 남아있을 때 더 많은 것을 알아야 하겠다는 욕구가 더 강렬해진다.
 
나의 독서론
 
목적으로서의 독서와 수단으로서의 독서    독서는 독서 그 자체가 목적인 독서와 독서를 하나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독서로 나눌 수 있다. 나(다치바나 다카시)는 이제 더 이상 문학이나 교양서적을 읽는 ‘목적으로서의 독서’를  하지 않는다. 문학을 더 이상 읽지 않게 된 이유는 픽션보다 더 재미있고 흥미로운 살아 있는 현실이 사방에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활자매체는 대상을 실재에 가깝게 전달하는 힘에서 영상매체를 따라가기 어렵다.
 
知의 총체는 고전이 아닌 최신 보고서에     이전에는 과거의 지의 총체를 고전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준 후 그것을 바탕으로 현대의 지를 축적하는 것이 출판의 본래 기능이라 여겨졌다. 그러나 출판의 특징은 일과성이며, 진정한 의미의 고전은 책의 메시지가 지닌 적실성이 아니라 그 책이 토론의 대상이 되어 대화의 소재로 활용되기에 적절하냐에 따라 규정되어야 한다. 따라서 진정한 과거知의 총체는 고전의 내용 중 현재의 지와 직접 관계된 부분이 선별되어 담긴 최신 보고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인간 지식의 총체는 그 시대의 다수집단이 보여주는 지적 작업이 집적해 가는 방향으로 끊임없이 축적되고 확대되며, 이에 대한 관심이야말로 현대인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의미있는 독서활동이다.
 
실전에 필요한(독학을 위한) 독서법
 
1. 책을 사는 데 돈을 아끼지 마라
2. 하나의 테마에 대해 팀구하려면 반드시 몇 권의 관련서를 읽으라.
   - 교과서적인 입문서를 서로 성향이 다른 것으로 세 권
   - 젊은 학자가 집필한 입문서
   - 일반인을 위한 딱딱하지 않은 해설서
   - 그 학문의 역사, 학설사, 사상사
   - 각론을 설명한 책
2.1 모든 책은 머리말, 맺음말, 목차, 판권장을 살펴보라.
   - 머리말, 맺음말, 목차를 통해 저자의 의도와 구입 가치를 알 수 있다.
   - 교과서적 입문서의 경우 판권장을 통해 책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잇다.
3. 책 선택에 대한 실패를 두려워 말라.
4. 자신의 수준에 맞지 않는 책은 무리해서 읽지 마라.
5. 읽다가 중단한 책이라도 마지막 쪽까지 한 장 한 장 넘겨보라
6. 속독법을 몸에 익혀라
7. 책을 읽는 도중 메모하지 말라. 다 읽고 나서 한 번 더 보면서 메모하라
8. 남의 의견이나 북 가이드에 현혹되지 마라.
9. 주석을 빠뜨리지 말고 읽어라.
10. 책을 읽을 때는 끊임없이 의심하라. 책에 쓰여있다고 모두 진실은 아니다.
11. 의심 가는 부분은 정보의 원천과 저자의 판단근거를 숙고해 보라.
12. 의심이 들면 사실로 확인 될 때까지 의심을 풀지 말라.
13. 번역서는 오역이나 나쁜 번역이 생각보다 많다.
14. 대학에서 얻은 지식은 대단하지 않다. 젊은 시절 책 읽을 시간을 꼭 만들라.
14.1 그 학문 전체의 밑그림과 인간의 지식 체계에서 그 학문의 위치를 파악하라.
 
우주 인류 책
 
서평     서평에 담겨야 하는 것은 그 책이 읽을 가치가 있는가에 관한 정보이며, 그 목적은 서점 앞의 판매대에서 책을 펼쳐볼 수 있도록 해주는 것까지이다. 서평에는 비평형과 소개형이 있다. 소개형은 재미있는 곳을 발췌하고 핵심을 요약하여 제시하며, 개인적 비평과 코멘트는 가능한 한 줄이는 방식이다. 현대 사회는 400자 원고지 4-5매 안에 정보를 압축해 전달하는 능력을 필요로 한다. 정보 압축의 관건은 그 정보를 어떻게 시각화하느냐이며, 어떤 책도 한 장의 도표에 담는 것이 가능하다.
 
속독      속독이 가능한 책은 읽는 것 자체를 즐기는 책이 아니라 정보를 담고 있는 책이다. 이를 위해서는 세부 사항을 먼저 읽고 전체적으로 파악해가는 ‘음악적 책 읽기’ 방식에서 먼제 전체를 대략적으로 파악한 후 조금씩 세세한 부분을 읽어가는 ‘회화적 책 읽기’ 방식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 방식의 특징은 전체상을 눈여겨보면서 책 읽기의 깊이와 템포를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속독 기술의 핵심은 전체적인 책 읽기 자체는 회화적 책 읽기로 진행하고, 음악적 책 읽기는 깊이 있는 독서가 필요한 텍스트로 한정하는 것이다. 먼저 머리말과 맺음말을 살피고, 목차를 구조적으로 파악한 후 책을 대충 넘기며 읽어가면 개략적인 전체상을 파악할 수 있다. 그 후 그 책이 처음부터 음악적 책 읽기에 알맞은 책이라고 판단되면 그렇게 하고, 그렇지 않다면 전체적으로 회화적 책 읽기, 부분적으로 음악적 책 읽기의 방식으로 읽는다. 인터넷의 발달로 만들어진 정보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재빠른 정보 선별 기능과 정보 섭취 기능이 필요하며, 그 기본이 속독 기술, 곧 회화적 책 읽기이다.
 
이상한 것에 애정을 느끼는가     인간의 뇌는 정상이 아닌 것을 빠르게 발견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화되어 있다. 일상적 관례에 따른 반응은 우리 안에 있는 자동 기계 인간(automaton)이 담당하고, 이상 현상이 발견되면 의식 있는 행동인 휴먼(human)이 전면에 나서게 된다. 인간은 이상 현상과 만나면 어떻게 대응할지 생각하고 판단 내려 적절한 행동을 취하게 되며, 정설이 아닌 것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바뀐 환경(패러다임)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의 핵심이다.
 
문화 공유/향유 공동체     문화의 최하층 구조를 형성하는 매트릭스는 ‘책을 만드는 사람과 읽는 사람 사이에 형성되는 소세계’라는 단위(unit)로 구성된다. 이러한 책의 소세계는 책의 숫자만큼 무수히 형성되어 공시적, 통시적인 중층구조를 만들어간다. 또한 책뿐 아니라 모든 문화의 산물마다 각각 생산자와 향유자의 소세계가 만들어지고 이 모든 소세계가 함께 섞여 무수한 다세계 복합체로서의 ‘인류 문화.공유=향유공동체’가 만들어진다. 이 공동체 안에서 개개인은 무엇인가를 향유할 때마다, 어느 소세계의 주민이 되어 보다 많은 것을 향유하게 되고, 동시에 많은 소세계에 속하는 다세계 존재가 된다.
 
책 공유/향유 공동체     그 중에서도 책의 세계는 문화의 공통 기반을 담당하는 존재로서 무엇보다 중요하다. 인류 문화의 전체상을 가장 잘 투영하고 있는 것은 책 세계의 전체상이며, 인류문화를 대우주라고 볼 때 서점이나 도서관은 그 전체상을 최대한 투영해 놓은 중우주가 되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책을 읽고 얼마나 많은 소세계의 주민이 되어, 자신을 얼마나 많은 다세계 존재자로 만들었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소우주가 얼마나 풍요로운지가 결정된다. 대학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며 졸업 후에도 무언가를 배우고 싶다면 결국 책을 읽지 않을 수 없다. 
 
출판    출판 세계가 일반 비즈니스와 다른 점은 편집자 개개인의 마음가짐과 의지에 의해 지탱되는 부분이 크다는 것이다. 돈벌이에 편승하지 않고 오직 문화로서 의미있는 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양서 지향파 출판인들이 있으며, 이런 사람들이 만든 책과 그 책을 사는 사람들이 큰 돈 벌어보겠다는 사람들의 포장술로 책의 저급화 경향이 심해지고 있는 출판 문화를 그나마 부끄럽지 않게 유지하는 것이다. 
 
디지털 시대 종이책의 운명     디지털 콘텐츠 시대가 되면서 전자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디지털 데이터에서 종이로 만든 책 만들기가 더욱 쉬워지고 싸져서 오히려 종이로 된 책의 세계는 더욱 발전할 것이다. 종이책은 일람성과 속독성에서 압도적으로 우세하며, 종이 책 자체의 모습 속에 이미 많은 무형의 정보가 담겨 속독성을 가속화시킨다. 철저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것과 사물로서의 매력이 있다는 것 역시 종이책의 큰 장점이다. 미래의 책에서 예상되는 중요한 방향성인 비주얼화에서도 해상도와 편리성, 그리고 원초적 이미지의 파악이라는 면에서 종이책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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