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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연구훈련/성경연구단상

송민원 교수님과의 『태초에 질문이 있었다』 줌모임 후기 (2026년 2월 7일)

by 서음인 2026. 2. 11.

지난 주 토요일 (2월 7일) 저녁에 ‘성경 묻고 답하기’ 모임에서 송민원 교수님을 모시고 『태초에 질문이 있었다』 의 내용으로 질문과 대답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20명 가까운 인원이 참여해 2시간이 넘도록 진지하게 진행된 좋은 시간이었네요! 기억을 위해 교수님의 말씀 중 인상 깊었던 몇 가지 내용을 요약해 보았습니다. 물론 제 요약이라 교수님 생각과 동일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1. 나는 문헌학을 공부하고 남침례교에서 안수받은 목사이기에 학문적 엄밀성과 ‘오직 성경’의 정신으로 성서 text를 꼼꼼하게 읽습니다. 구체적으로 다른 학자의 연구나 주석을 읽기 전에 먼저 성서 본문을 처음 접하는 것처럼 읽어 ‘팩트’를 발견하려고 노력합니다. 해석은 자유로울 수 있지만 팩트에 오류가 있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2. 이렇게 성서를 꼼꼼하게 읽어 보면 지금까지의 주류 견해였던 ‘수직적 읽기’ 혹은 ‘구속사적 해석’에 틈이 많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창세기 텍스트를 조금 더 자연스럽고 문맥에 맞게 읽는 방식으로 삶과 살림, 관계와 환대의 관점에서 창세기에 접근하는 ‘수평적 읽기’를 제안했습니다. 이렇게 수평적인 방식으로 보면 창세기의 원역사는 ‘창조가 어떻게 완성되었는지’ ‘인류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어떻게 나뉘고 땅에 편만해졌는지’를 설명하고, 족장사는 ‘나눠진 민족들이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타지에서 온 이방인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3. 전통적 신학은 대체로 바울신학의 패러다임을 따라 성서 전체를 ‘수직적 읽기’의 방식으로 이해해 왔습니다. 그러나 ① 구원을 문제를 넘은 후 삶과 일상의 영역으로 접어들게 되면 바울보다 복음서와 구약성서를 살피는 것이 필요합니다. ② 바울도 수평과 수직이 부딪히는 곳에서는 항상 수평(사랑)을 강조합니다. 바울신학의 결론은 결국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③ 성서 전체의 레토릭을 잘 살펴봐도 죄와 심판을 강조하는 곳에서조차 부정보다는 긍정에 훨씬 강한 방점이 찍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수평)는 언제나 심판(수직)을 압도합니다.
 
4. 이렇게 ‘수평적 읽기’를 강조하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기존의 해석이 너무 ‘수직적 읽기’에 치우쳐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과하게 느껴질 정도로 ‘수평적 읽기’를 강조해야 그나마 조금이라도 균형을 맞출 수 있습니다.
 
사실 송민원 교수님이 남침례교에서 안수받았다는 사실에 좀 놀랐습니다. 저자의 학문적 이력이나 책의 내용이 제가 알고 있는 남침례교와는 잘 어울리지 않아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보수적 신앙인들이 전가의 보도로 여기는 ‘오직 성경’으로 기존의 해석과 다른 ‘수평적 읽기’를 이끌어내는 저자의 솜씨는 놀라움을 넘어 짜릿함을 선사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교수님이 책을 내기 전에 두려움에 주저했었다는 말씀에 공감이 되었습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다행히 교수님의 염려가 기우로 끝나면서 한국교회가 참 좋은 저자를 얻게 되어서 감사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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