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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연구훈련/성경연구단상

강성열 교수님과의 『내가 네게 장가들리라 - 설교를 위한 호세아 연구』 줌모임 후기 (2026년 2월 22일)

by 서음인 2026. 2. 28.

지난 주일 (2월 22일) ‘성경 묻고 답하기’ 모임에서는 호세아 연구서인 『내가 네게 장가들리라』를 쓰신 강성열 교수님을 온라인으로 모시고 책 내용에 대해 묻고 답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제가 이번 주 내내 바쁘고 몸 컨디션도 안좋아 1주일이 지난 지금에야 올리게 되었네요. 총 12명의 인원이 참여해 2시간여 동안 호세아서의 세계에 푹 빠졌던 시간이었습니다. (사진 1,2)
 
저는 강성열 교수님이 직접 쓰신 책을 이번에 처음 접했습니다. 그러나 제 서재에는 교수님이 번역하신 구약신학 관련 책들이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버나드 앤더슨의 『구약성서 이해』 와 로날드 E. 클레멘츠의 『구약성서 해석사』는 오랫동안 제 구약공부의 기본 교과서였습니다. 클라우스 베스터만의 『창세기 주석』은 창조신학이라는 성서읽기의 새 패러다임을 가르쳐준 책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첫 만남이었음에도 굉장히 반갑고 편안했습니다! (사진 3,4)
 
다섯 번째 사진은 제가 가진 호세아 관련 주석이나 해설서들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예언서 공부의 기본서로 삼아온 책은 도널드 고웬의 『구약 예언서 신학』입니다. 호세아서는 주로 피터 크레이기의 『바클래이 패턴 구약주석(DSB) 소선지서』와 정중호 교수님의 『설교자를 위한 호세아 해석』을 참조해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정중호 교수님 책은 호세아의 핵심 주제인 ‘우상숭배’를 ‘반 앗수르 반란(세력)’으로 이해하는 독특한 입장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앞으로는 강성열 교수님 책을 호세아서의 기본 해설서로 삼으면 될 것 같네요!
 
많은 배움과 깨달음을 얻은 만남이었습니다만, 그중에 특별히 인상적이었던 몇 가지를 기록합니다.
 
(1) 히브리 성서의 두 번째 부분인 느비임 (신명기 역사서 +예언서) 전체는 ‘예언’과 ‘성취’라는 관점에서 이스라엘 역사를 바라보며, 그 핵심적 질문은 “하나님을 섬겼는가 우상을 섬겼는가”이다. 주로 사회정의의 문제에 천착한 아모스와 달리 종교적 우상숭배를 날카롭게 비판하는 호세아서는 이런 느비임의 내용과 잘 부합하며 따라서 소예언서의 맨 앞자리를 차지하기에 제일 적합한 책이다.
 
(2) 호세아서는 1-3장까지의 산문체로 된 전기적 자료와 4-14장까지의 시문체로 된 고전적 예언 메시지가 혼합되어 있다. 호세아를 비롯한 선지자들은 기본적으로 저술가나 문서 기록자가 아닌 말씀의 선포자였으며, 그들의 예언 메시지는 대부분 함축적이고 간결하며 다의적인 시문체 형식으로 되어 있다. 오늘날에도 가장 훌륭한 설교는 시문체 설교이며 설교자는 시인이 되어야 한다. (이는 공기도에 대해서도 유효한 통찰이다. 가장 훌륭한 공기도는 함축적이고 간결하며 다의적인 시문체 기도이며 공기도의 자리에 선 성도 역시 시인이 되어야 한다.)
 
(3) 이런 시문체 예언서를 이해하려면 시적 감수성이나 상상력이 필수적이다. 호세아서에는 파격적인 비유나 표현이 자주 등장하며 이는 호세아 선지자가 상상력과 감수성이 풍부한 인물이었음을 보여준다. 하나님이 유독 호세아에게 부당해 보이는 요구를 하신 이유는 이런 그가 하나님의 의도를 충분히 이해하고 수용할 만한 그릇을 가진 선지자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예언자를 기계적 전달자로 쓰시지 않고 각 예언자의 품성에 맞는 메시지를 선포하게 하신다. 호세아뿐 아니라 모든 예언자는 나름의 방식으로 시대와 불화했고 그로 인한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4) 하나님이 호세아에게 죄없는 자녀의 이름을 저주의 의미로 지으라고 명령하신 것은 매우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중에 이 이름들을 바꾸어 주시며 이는 저주가 아닌 회복이 호세아의 자녀들과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원래 의도임을 보여준다. 호세아의 삶과 가정 생활은 가 자체로 타락이 극에 달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였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맺은 계약의 기본적 뼈대는 조건적이고 쌍무적인 시내산 언약이었으나, 이스라엘의 거듭된 불순종과 실패는 결국 하나님을 아브라함/다윗 언약처럼 일방적이고 무조건적인 편무계약으로 이끌 수밖에 없었다.
 
(5) 조직신학에서는 왕-제사장-선지자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삼중직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구약성서의 관점에서 보자면 여기에 지혜자까지 포함해 사중직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구약의 다양한 전승이 모두 만나 완성되는 지점에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
 
(6) 호세아서를 포함한 대부분의 구약성서가 고멜을 포함한 여성을 죄된 존재로 비하하고 있다는 비판은 사실에 가깝다. 그러나 창세기의 이야기를 자세히 살펴보면 가부장제란 원래적 창조질서라기보다 죄로 인한 타락의 결과라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구약성서의 여성 비하는 가부장제라는 시대적 한계 속에서 그에 맞춰 메시지를 전달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7) 주석은 본문의 해석과 이를 오늘의 청중에게 적용하는 과정을 모두 포함한다. 설교자와 성서 연구자는 한 손에 성경 한 손에 신문을 들어야 하며, 삶에 들어오지 못하고 삶으로 번역되지 못한 성서는 쓰레기나 폐품에 가깝다. 이 백성이 지식이 없어 망한다는 호세아의 선포는 ‘실천적인 지식’이 없다는 의미이며, 말씀에 대한 바른 지식(正知)은 반드시 삶의 변화(正行)로 이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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