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가 빌헬름 라이히(Wilhelm Reich 1887-1957)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본 것은 독일의 여성 정치신학자인 도로테 죌레(Dorothee Soelle 1929-2003)의 책에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프로이트와 마르크스를 결합해 자신만의 독특한 性-정치 이론을 전개했다는 이 괴짜 학자는 잠시 내 지식욕을 자극했지만, 호기심에 구입한 그의 저서들을 잠시 들춰본 후 그 낯섦과 난해함에 질려 곧 흥미를 잃고 말았다. 그 후로도 68운동이나 성 혁명, 파시즘 체제와 관련하여 가끔 그의 이름과 저술들이 언급되는 것을 들을 수 있었지만 식어버린 흥미가 다시 살아나지는 않았다. 그런데 얼마 전 유명한 스타 목회자 한 분이 논란이 된 반동성애 설교에서 라이히의 이름을 언급했다는 기사를 보고 갑자기 이 괴짜에 대한 호기심이 다시 불타올랐다. 평소 기독교 TV에 금요일 밤마다 단골로 등장해서 마치 만담가나 약장수를 방불케 하는 설교로 가끔 나를 웃겨주시는 그분이 빌헬름 라이히를 설교에 인용했다니!
2. 오스트리아의 프로이트 마르크스주의자로서 성욕과 계급문제를 처음으로 결부시켜 급진적인 성-정치(Sex-Pol)운동을 전개했으나 어느 진영에서도 인정받지 못한 채 결국 미국의 감옥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해야 했던 라이히의 주장은 과연 소문대로 매우 급진적이다.
(1)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학은 자유 연상 기법으로 환자의 억압된 욕망을 기억나게 함으로서 그것을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형태로 승화시키거나 거부하도록 유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라이히에 의하면 이러한 프로이트의 이론은 생물학적 본능(성욕) 은 나쁜 것이며, 현 사회의 도덕적 가치가 불변한다는 잘못된 전제 위에 서 있다.
(2) 라이히는 신경증의 원인이 오르가즘을 통해서만 적절하게 방출될 수 있는 억압된 성 에너지이며, 성적 능력의 장애는 신경증의 여러 증상 중 하나가 아닌 신경증의 전반적이고 대표적인 증상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신경증적 치료의 목표는 오르가즘의 능력의 회복에 있으며, 신경증 환자의 증상은 프로이트의 주장처럼 욕구의 승화나 거부가 아니라 욕구의 충족, 즉 만족스러운 성 경험을 통해서 사라질 수 있다.
(3)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생식기관만이 오르가즘을 제공할 수 있고 성 에너지를 완전히 해방할 수 있으며, 성기적 성 생활 이외의 모든 불완전한 성생활은 긴장을 증가시킬 뿐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정상적인 성기적 성 생활에 대한 도덕적 규제로 인한 억압이나 불만족이 야기하는 동성애나 변태성욕과 같은 도착적이고 비사회적인 성 충동은 자유롭고 만족스러운 성 생활이 보장된다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다.
(4) 가부장제 문화에 기반한 권위주의 사회는 다양한 도덕적 종교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지지되는 전반적인 성 억압이라는 기초 위에 서 있으며, 이러한 성 억압은 아동기에는 성 부정적 교육으로, 청년기에는 성적 욕망에 대한 억제요구로, 결혼기에는 일부일처제라는 형식으로 나타난다. 권위주의적이고 일부 일처제적이며 평생 유지되는 가부장적 가족제도는 이러한 성 억압이 일어나는 주된 장소일 뿐 아니라 권위주의적 이데올로기와 성적으로 억압되고 권위주의적인 성격 구조를 가진 인간이 재생산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러한 가족은 자율적인 삶을 불안해하고 권위를 두려워하면서도 의존하는 성격 구조를 가진 복종자를 끊임없이 창조하며 권력자에 대해 대중이 지배될 수 있는 가능성을 항상 새롭게 만들어낸다. 결혼 의무와 가족 권위에 바탕을 둔 강제적 도덕은 자연스러운 사랑의 힘을 구현할 능력이 없는 겁장이나 성불구자들의 도덕일 뿐이다.
(5) 이렇게 성을 부정하도록 성격 구조화된 인간이 사회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부르주아적 성 도덕으로부터의 일탈을 의미하는 것이자, 권위주의적이고 가부장적인 (주로 자본주의적인) 사회체제를 거부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성-정치(Sex-Pol) 운동은 일부일처적이고 강제적인 결혼 제도의 해체와 여성들과 아이들에 대한 경제적 권위주의적 억압의 중지 그리고 소아나 청소년의 성적 자율권 인정을 포함하며, 저자는 이러한 변혁이 사람들로 하여금 권위와 도덕적 압력 없이 독립심과 자발적인 자기규율을 지니고 사회적 유대 속에 살아가고 일할 수 있게 해줄 것이라고 강조한다. 혁명적인 인간은 성 쾌락의 긍정이라는 주체적인 형태로 그리고 노동 민주주의라는 객관적인 사회 형태로 삶을 긍정하는 인간이며, 사회주의의 목표는 주체성의 변혁(성 혁명)을 통해 사랑과 노동과 지식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노동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것이다. “사랑, 노동, 지식은 우리 생활의 원천이며, 이것들이 우리 생활을 지배해야 한다.”
3. 이러한 라이히의 이론은 서구 사회를 휩쓴 변혁의 물결인 68운동과 성 혁명을 계기로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으며, 그중에서도 특히 성 해방과 관련된 그의 주장은 68운동 이후의 서구사회나 과거 사회주의권 국가들에서 진행된 가히 혁명적이라고 할 만한 전통적 가족개념의 변화에서 보듯 상당 부분 현실화되었다. 개인적 견해로는 지나친 성적 억압이 권위주의적 성격구조를 가진 개인과 가부장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사회를 만들어낸다는 라이히의 분석에 어느 정도 공감하지만, 가족의 해체나 전면적인 성 자유화를 포함한 성-정치(Sex-Pol)운동이 현실의 모든 성적-정치적 모순과 억압을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은 인간존재의 심층에 존재하는 악의 성향을 무시하는 지나치게 낙관적이고 나이브한 견해인 것 같다. 정일권은 그의 책『우상의 황혼과 그리스도』에서 기존의 모든 권위와 제도의 가치를 부정했던 68운동의 물결이 지나간 후 유럽의 지식계도 점차 가족이나 교회와 같이 과거 서구 사회를 지탱하던 전통적 제도들(소위 말하는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 의 필요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p.s. 마지막 한 가지. 나는 그 스타 목사님의 문제의 설교를 들어본 적이 없고 따라서 어떤 맥락에서 라이히를 동성애 비판에 끌어들였는지 잘 모른다. 그러나 라이히는 동성애를 정상적인 성애의 형태로 인정하지 않고 만족스러운 ‘성기적’ 성 생활을 통해 고칠 수 있는 불완전한 성 충동으로 보았기에, 그 목사가 라이히를 '동성애' 설교에 끌어들였다면 부정확하게 인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만약 그 설교를 라이히를 아는 비그리스도인들이 들었다면 얼마나 그 목사님이, 교회가, 더 나아가 복음이 비웃음거리가 되었겠는가? 강단에 서는 설교자는 아무말 잔치를 벌이기 전에 자신이 뱉어내는 말의 책임이 얼마나 엄중한 것인지 깊이 깨달아야 한다.
'책 - 인문 > 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관용론 (볼테르 지음, 한길사 펴냄) (0) | 2016.06.02 |
---|---|
철학과 굴뚝청소부 (이진경 지음, 그린비 펴냄) (0) | 2016.06.02 |
전체주의의 기원 1,2 (한나 아렌트 지음, 한길사 펴냄) (0) | 2016.06.01 |
처음 읽는 독일 현대철학 (철학아카데미 지음, 동녂 펴냄) 그리고 네 권의 지식인 마을 시리즈(21. 후설 & 하이데거 24. 헤겔 & 마르크스 32. 푸코 & 하버마스 34. 벤야민 & 아도르노) (0) | 2016.06.01 |
형성과정에 있는 종교 (A.N 화이트헤드 지음, 동과 서 刊) (0) | 2016.06.0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