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틴 루터 공부의 마지막 발걸음으로 이 개혁자를 본격적으로 다룬 두 권의 전기를 읽고 있습니다. 크리스챠니티 투데이가 선정한 20세기의 기독교 서적 100권에도 포함된 롤란드 베인톤의 명저 『마르틴 루터의 생애』와, 종교개혁 500주년인 작년에 출간되어 호평받은 스콧 핸드릭스의 『마르틴 루터 : 새 시대를 펼친 비전의 개혁자』입니다(사진 1). 두 권 모두 개신교 역사학자가 쓴 매우 ‘프로테스탄트적인’ 루터 전기였습니다만, 앞의 책이 주로 독실한 수도사였던 루터가 겪은 내적이고 신앙적인 갈등과 격변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면, 뒤의 책은 ‘피와 살을 가졌던’ 루터라는 인물을 조금 더 그가 살았던 16세기의 독일과 기독교 세계의 맥락에서 살피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루터의 저작 중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을 꼽으라면 농민전쟁에 대해 과격한 어조로 비판했던「살인자 도둑 떼거리인 농민들에 대한 반박」을 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두 책에서 그 저작을 인용한 부분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 눈에 띠었습니다. 베인톤의 책에는 “누구든지 할 수 있거든 (반역을 일으킨 농민들을) 쳐죽이고 목졸라 죽이고 찔러 죽이게 하십시오. 반역자보다 더 유해하고 상처를 가져오며 악마적인 것도 없습니다. 그건 미친 개를 죽이지 않으면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라는 직설적인 본문이 그대로 인용되어 있습니다(사진 2, 3). 그런데 핸드릭스의 책에는 동일한 부분이 “문제가 있는 자는 얼마든지 찌르고 때리고 죽이십시요”라는 훨씬 부드럽게 완화된(?) 형태로, 그것도 강제로 징집된 농민들에게 자비를 베풀라는 말과 현재의 상황에서는 농민들을 죽이는 것이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길이라는 말에 둘러싸인 채 인용되고 있습니다(사진 4).
과연 핸드릭스는 왜 루터의 말을 ‘날것 그대로’가 아닌 가공된 형태로 인용했을까요? 독자의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서? 그가 발견한 ‘진실’을 좀 더 잘 알리기 위해서?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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