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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의사!

변소와 안과, 그리고 빨간 등의 추억!

by 서음인 2019. 4. 12.

진료를 마친 후 병원에 남아 책을 읽기로 한 것이 신의 한수가 되었습니다. 요즘은 보통 한두 시 정도까지도 원장실에 앉아 있습니다만, 예전에 비해 책 읽고 리뷰하는 시간이 많이 늘어났습니다. 제게 허락된 독서의 시간이 얼마나 남아 있을지 모르겠지만, 가능할 때 이 행복을 열심히 누려야겠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공부하다 좀 심심해져서 잠깐 딴 짓 좀 해볼까 합니다 ㅎㅎ 페친 여러분께서는 혹시 사진에 찍힌 빨간색 전구를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그리고 저 등이 왜 안과 진료실에 붙어있는지 아십니까?

아마 우리 또래라면 저 등에 익숙하신 분들이 많으실 것입니다. 바로 옛날 푸세식변소에 많이 달려 있었던 그 등입니다! 한밤중에 큰일을 보려고 집밖 으슥한 곳에 위치한 변소로 저벅저벅 걸어가, 저 빨간 등을 켜놓고 쭈그리고 앉은 채 발아래 뻥 뚫린 심연(?)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갑자기 하얀 손이 튀어나와 음산한 목소리로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를 외치지 않는 것이 이상할 노릇이었지요 ㅋㅋ 이제는 저 전구를 구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안과에 왜 저 등이 필요하냐고요? 물론 제가 푸세식 변소 성애자여서 버튼을 누르면 원장실 바닥이 열리며 비밀 변소가 나타나거나 그런 것은 아닙니다 ㅎㅎ 초등학교 아이들이 처음으로 시력검사를 할 때 조명을 끈 상태에서 검영기라는 기구를 사용해 정확한 돗수를 측정하게 되는데, 그때 정확한 검사를 위해 아이들이 어둠 속에서도 먼 곳을 주시할 수 있도록 타겟으로 저 등을 켜 주는 것입니다. 하여, 21세기의 문명화된 대한민국에서 고가의 최첨단 장비로 무장한 안과의사로 살아가는 저는, 아직도 남들이 다 버린 저 빨간 등을 못 버리고 가끔 저 등을 켤 때마다 옛 변소의 추억에 잠기곤 한답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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