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경제를 잘 몰라서 이번 일에 입다물고 있었습니다만, 한국일보에 실린 "힘내라 문제인 정부"라는 이 칼럼의 내용은 한 마디 한 마디가 심금을 울립니다. 기적적인 출애굽에 성공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끝내 가나안 땅으로 들아가지 못한 채 모두 광야에서 죽고 만 이유는 바로 "노예근성" 때문이었습니다. 뼛속까지 뿌리박힌 노예근성을 버리지 못한 채 조금만 문제가 생기면 그래도 '밥은 편하게 얻어먹던' 대제국 이집트의 우산 아래로 돌아가자고 아우성치던 사람들은, 자신의 운명에 용감하고 당당하게 맞서는 자유인들이 살아가야 할 가나안 복지에 들어갈 자격도 능력도 없었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하고 말았습니다. 힘 없는 자의 용기가 항상 정답은 아닙니다만, 개인이든 공동체든 가끔은 위험을 무릅쓰고 자존심과 존엄을 지켜야 할 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지금이 그 때가 아닐까요?
".... 그러니까 대체 어쩌자는 걸까?
아베의 주장을 받아들여 과거사 문제를 다시 되돌려야 하나? 대법원 판결을 억지로라도 무효로 만들라는 건가, 유일하게 살아있는 징용피해자에게 오히려 왜 소송을 했냐고 책임이라도 물으라는 건가, 아니면 위안부 합의를 박근혜 시절로 다시 되돌리라는 건가?
이들의 주장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반도체 산업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국민들의 인권이나 억울함 정도는 모른 체 해야 한다는 말이다. 조국근대화를 위해서는 일제 식민 지배를 받아들여야 하고,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노동자의 희생을 감수해야 하고, 국가안보를 위해서는 민주주의를 잠시 잊어야 한다는 지긋지긋한 논리가 아직도 위세를 떨치고 있다.
“이게 나라냐?”고 외쳤던 지난 촛불정신을 벌써 다 잊은 걸까? 그런 나라라면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반도체 종사자들의 인권도 손쉽게 짓밟을 수 있다. 대체 왜 우리는 반도체 산업을 일으킨 것인지 근본적인 질문부터 다시 던져보자. 그게 일본의 식민 지배가 정당했다고 우리 스스로가 인정해줄 만큼 가치 있는 일인가?
지식인의 사회적인 책무는 강자에 맞서 약자의 편에서 정의를 옹호하는 일이다. 까닭 없이 생트집을 잡고 약자를 괴롭히면 가해자의 부당함을 지적해야지 덮어놓고 강자의 편에 서서 약자에게 “네가 힘이 없는 게 잘못”이라고 야단쳐서야 되겠나. 이는 마치 매 맞는 아내에게 맞을 짓을 했으니까 맞는 거라고 꾸짖는 행패와 다를 바 없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907161005024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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