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주 한인교회의 현직 목회자와 요한계시록을 전공한 신약신학자인 저자들은 이 두 권의 책에서 한국교회를 혼란과 미혹에 빠뜨리고 있는 “신사도 운동” 과 “백 투 예루살렘 운동”의 주요 흐름과 주장에 대해 설명한 후, 각각에 대한 상세한 신학적 검토와 비판을 수행한다. 저자들은 상호간에 깊이 연관되어 있으며 세대주의라는 공통의 신학적 기초를 가진 이 두 운동은 이미 한국교회 전반에 깊이 스며들어 여러 심각한 문제들을 일으키고 있으며, 영성이나 선교의 이름으로 방치하기에는 그 신학적 실천적 해악이 너무 커지고 있다고 경고한다.
2. 1906년 아주사 부흥운동과 1930년대의 늦은 비 운동에서 시작하여, 1980년대 캔사스시티 부흥운동과 존 윔버의 빈야드 운동을 거쳐 1990년대의 토론토 블레싱과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연합, 마이크 비클의 IHOP 까지 이어지며, 한국에서는 손기철 장로의 치유집회, 김하중 장로의 성령운동, 송만석 장로의 이스라엘 회복운동, 최바울 대표의 인터콥, 이용희 교수의 에스더기도운동 등에 깊이 스며들어 있는 신사도 운동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사도나 선지자의 은사가 현재도 존재한다고 주장하며 그 지도자들이 스스로 사도나 선지자를 자처한다. (2) 성경계시의 완결성을 부인하고 자칭 사도나 예언자들이 하나님이 직접 주신다는 예언을 전하며 그 메시지에 따를 것을 요구한다. (3) 성령의 기름부음이나 임파테이션과 같이 성경적 근거가 희박한 개념에 근거하여 집회 중에 넘어짐이나 웃음, 금가루 금이빨과 같은 여러 기괴한 현상들을 일으킨다. (4) 자신들이 사탄을 결박하는 권능을 지닌 중보기도의 은사를 받았다고 주장하며, 이와 관련하여 땅밟기 기도, 영적 도해, 선포기도, 동일시 회개 등과 같이 영적전쟁론의 기도이론들을 적극적으로 도입한다. (5) 극단적인 세대주의적 종말론에 의거하여 백 투 예루살렘 운동과 같은 이스라엘 회복운동을 강조한다.
3. 핍박받던 중국의 가정교회에서 이슬람 선교운동으로 시작한 후 키이스 인트레이더의 “그날이 속히 오리라” 나, 로버트 하이들러의 “메시야닉 교회” 와 같은 소위 메시야닉 쥬들의 저서를 통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한국에서는 KIBI 의 송만석 장로나 인터콥 최바울 선교사로 대표되는 백 투 예루살렘 운동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1) 유대인들이 대규모 귀환을 통해 이스라엘 땅에 자신들의 국가를 세우고 대규모 회심을 통해 그리스도께로 돌아오며 성경에 예언된 이스라엘과 열방의 마지막 전쟁이 벌어진 결과 이스라엘이 결정적으로 승리하게 되면 이스라엘 땅으로 예수가 재림하여 천년왕국이 시작되면서 종말이 도래하게 된다. (2) 따라서 '대추수의 시대'를 살고 있는 현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종말을 앞당기기 위해 이스라엘의 국가적 종교적 회복을 적극 지지하고, 유대인들의 이스라엘 귀환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며, 백 투 예루살렘의 정신에 따라 예루살렘으로의 서진을 막고 있는 무슬림들과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유대인 선교에 집중해야 한다. (3) 그들의 이러한 주장은 성경 예언에 대한 극단적 문자적 이해에 근거하여 이스라엘과 교회를 엄격히 구분하며, 성경의 예언은 미래의 천년왕국에서 이스라엘에게 문자적으로 성취되어야 한다고 가르치는 세대주의 신학, 특별히 환난 전 휴거를 주장하는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
4. 이 두 운동에 대해 이 책에서 제시한 비판 중, 개인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정리해 보기로 한다.
(1) 비판의 핵심은 그 두 운동이 공유하고 있는 신학적 기초인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의 가르침이 될 수 밖에 없다. 한국교회의 여명기에 한국에 온 초창기 선교사들의 신앙으로 아직도 한국교회의 저변에 깊이 뿌리박고 있으며, 강렬한 종말론적 색채로 성도들의 말초신경과 감성을 자극하는 세대주의적 감성은 신사도와 백투더 예루살렘 운동의 성행에서 알 수 있듯이 여전히 한국교회의 목회 현장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이스라엘과 교회를 엄격히 구분하며 구약의 예언은 교회가 아닌 이스라엘에게 문자적으로 성취될 것이라고 가르치는 세대주의는 성서신학의 발전에 따라 학문적으로는 이미 사망선고를 받은 이론이라고 주장한다.
(2) 이 운동들의 가장 큰 문제는 자신들의 신학적 주장을 입증하거나 특정한 영적 체험들을 설명하기 위해 해석학적 일관성과 엄밀함을 결여한 채 성경을 자의적으로 사용한다는 데 있다. 이런 운동을 대표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살펴보면 대체로 성경에 대한 빈약한 주해와 허술하고 일관성을 결여한 해석학, 그리고 신학적 무지라는 기초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또한 오늘날도 사도나 선지자들에 의해 새로운 계시가 주어지고 있다는 그들의 주장은 필연적으로 완결된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의 권위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밖에 없다.
(3) 또 다른 심각한 문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 이후에도 하나님의 구속사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인간의 노력이 요구되는 특정한 조건이 충족되어야만 한다는 백투 예루살렘의 주장이나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드러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특정한 기도의 방법/형태나 인간적인 중보의 능력이 필요하다는 신사도의 가르침에서 드러나듯 그 운동들이 구속사의 과정에서 하나님의 주권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의 유일성과 완결성을 심각하게 약화시킨다는 것이다. 개인적 체험에 따르면 이 운동이 성행하는 현장에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언급 자체가 이상할 정도로 감소하며, 십자가 사역이 단지 성령의 능력을 얻기 위한 공로의 원천이나 그 능력의 저장소 정도로 취급되는 것을 본 적도 있다.
(4) 따라서 이 운동들은 필연적으로 그리스도의 고난과 제자도를 강조하는 ‘십자가의 신학’ 보다는 성령의 능력과 성공을 사모하는‘영광의 신학’으로 기우는 경향이 있으며, 교회성장과 선교의 한계에 부딪힌 목회자들과 선교 리더들에게 부흥과 활력을 약속하는 매력적인 도구로 여겨질 가능성이 많아 보인다. 신사도 색체가 농후한 알파코스나 두날개 같은 훈련 프로그램이나 백투더 예루살렘을 강조하는 인터콥 같은 선교운동들이 교파나 신학을 초월하여 널리 퍼져나가는 현상이 그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5. 과거 특정 사건과 관련하여 신사도 운동을 자세히 공부해야만 했던 때가 있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런 종류의 운동들에 대한 내 감정은 한마디로 ‘짜증’ 이다. 어떻게 이렇게 빈약한 성경해석과 허술한 신학에 근거한 운동들에 심지어 신학을 공부했다는 목회자들을 포함한 그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미혹될 수 있는지. 왜 아까운 시간을 이렇게 허접한 신학적, 해석학적 기반에 서 있는 운동들을 공부하느라고 허비해야 하는지. 그러나 현실을 보면 ‘정통’ ‘보수’를 유난히 강조하며 오직 말씀으로 (Sola scriptura) 를 소리 높여 외치는 수많은 교단과 목회자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실제로는 이들이 보여주는 괴이한 ‘체험’과 거짓에 근거한 ‘비전’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대한 정확한 이해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매력적인 신앙의 근거와 동력으로 작동하는 것 같다. 이러한 우리의 현실이야말로 한국교회 위기의 본질은 실천 (Orthopraxis) 의 빈약일 아니라 신학 (Orthodoxy) 의 빈곤이며, 복음주의자를 자처하는 이 땅의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집단적으로 ‘지성’을 무시하는 일종의 ‘이단’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일종의 표적이라고 말한다면 과연 지나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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