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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기독교/교의 .변증

산둥 수용소 (랭던 길키 지음, 새물결플러스 펴냄)

by 서음인 2016. 5. 30.

2016년의 리뷰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인간 본성에 대한 탁월한 보고나 극한상황에 처한 한 무신론자의 회심 이야기로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저 역시 이 책을 그런 관점에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책이 수용소라는 환경에서 만난 실존적 위기에 치열하게 맞선 한 개인의 신학적 사유의 기록을 넘어,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통해 위기에 직면한 19세기의 서구문명과 신학에 대한 전후신학, 특히 신정통주의 신학의 응답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우화로도 읽힐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저자가 수용소 생활 초기에 가졌던 (19세기 서구신학의 특징이기도 한) 인간성에 대한 낙관적 기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수용소 안에 만개하는 사람들의 죄성을 보면서 산산히 부서지며(칼 바르트), 그후 저자는 이렇게 죄성에 깊이 물든 인간 사회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랑이 아닌 정의이고(라인홀트 니버), 이러한 인간들이 참된 인간성을 회복하는 길은 '궁극적인 것에 대한 관심'을 되찾는 것(폴 틸리히)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렇듯 20세기를 대표하는 여러 위대한 신학자들의 감추어진 목소리에 귀기울여 본다면 더 흥미진진한 독서가 될 것 같습니다^^

원 리뷰 

1. 크리스차니티 투데이에 의해 20 세기의 위대한 책 100 권중의 하나로 선정된 바 있는 이 책은 2차 세계대전 중 중국 북부의 한 민간인 포로수용소에서 저자가 겪었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미국과 영국을 포함해 일본과 전쟁을 벌이던 적성국 서양인들이 주로 수용되었던 이 수용소는 좁은 거주 공간과 만성적인 식량부족 같은 문제는 상존했지만 육체적인 고문이나 극단적 굶주림과 같은 극한의 상황은 없었으며, 수용소에서의 생활 역시 수감자들에게 상당한 정도의 자치권이 주어져 있어 자신들만의 작은 ‘문명’을 건설하고 유지하는 것이 가능했을 정도로 어찌 보면 일상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따라서 복잡한 세상을 관찰 가능한 크기로 축소해놓은 듯한 이 사회는 정상적인 삶의 조건에서라면 드러나지 않았을 적나라한 인간의 도덕적 본성과 인간 사회를 지탱하는 근원적인 토대, 삶의 의미에 대한 궁극적 질문들이 선명하게 나타나는 일종의 살아 있는 실험실이 되었다.

2. 저자는 서양인이라는 것 이외는 아무런 공동점도 없는 두려움으로 가득 찬 한 무리의 인간들이 수용소 내에서 짧은 시간 안에 환경에 적응하며 자신들만의 ‘문명’과 질서를 이루어내는 것을 보면서 인간의 무한한 능력에 대해 감탄한다. 그리고 인류와 그 문명을 위해 종교의 자리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저자는 주거공간이나 식량과 같이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물질적 자원의 부족에 직면한 이 ‘문명’사회가 곧 인간들의 극단적 이기심, 그것도 가장 그럴 것 같아 보이지 않았던 종교와 교양과 지위를 가진 사람들의 이기심에 의해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는 것을 보면서, 자신의 생각이자 전통적 자유주의의 가르침인 인간의 선함과 합리적 이성 그리고 도덕성에 대한 낙관주의적 견해는 잘못된 것이며, 오히려 그가 좋아하지 않았던 '원죄' 라는 전통적인 신학적 개념이 이러한 인간의 본성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어떠한 문명이든 그 유지를 위해서는 물질적이고 정치적인 측면 뿐 아니라 도덕적 혹은 영적 기초가 반드시 필요하며, 이러한 인간의 영성 혹은 도덕성(사랑이나 이타심으로도 표현될 수 있다) 은 실제로 우리가 '자아'를 넘어선 그 '무엇'에 대해 궁극적 관심 혹은 궁극적 헌신을 품을 때만 현실화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저자는 기독교 신앙이란 특정한 종교적 신조에 대한 지적 동의가 아니고 삶의 의미와 안정성의 중심을 자아에 두는 대신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 안에 두는 태도라고 정의될 수 있으며, 이러한 '신앙'만이 개인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삶의 의미를 제공할수 있을 뿐 아니라, 삶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가치를 자신이 아닌 하나님과 이웃의 복지에 두게 할 수 있다고 결론내리고 있다.

 

3. 이 재미와 의미를 함께 담은 책을 어떻게 짧은 요약으로 다 설명할 수 있겠는가. 사회적 종교적 가면이 벗겨져버린 귀족이나 상류층, 선교사와 같은 '고귀한' 인간들의 적나라한 욕망과, 평범해 보였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진실한 인간성을 보여준 몇몇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 이야기들에 담긴 인간과 사회 그리고 종교에 대한 심오한 통찰을 듣는 것은 그곳에서 극한 상황을 견뎌야 했던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정말 흥미 있는 일이었다. 그뿐 아니라 이 책을 읽어가다 보면 하나님과 인간, 종교와 계시의 무한한 질적 차이를 강조하면서 역사에 대한 낙관주의적 전망을 경계했던 칼 바르트 (Karl Barth), 타락으로 인해 완전주의적 사랑의 윤리를 실행할 능력을 상실한 인간에게는  정의의 실현이야말로 참된 사랑의 방법이며 그를 위해서 권력이나 무력과 같은 次惡의 사용이 불가피하다는 라인홀트 니이버 (Reinhold Niebuhr), 신앙을 존재의 근거에 대한 궁극적 관심으로 정의한 폴 틸리히 (Paul Tillich) 와 같은 20세기 신학의 거성들의 목소리를, 역시 전후 미국을 대표하는 신학자가 된 저자를 통해 곳곳에서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책이 단순히 흥미로운 역사적 회고록이나 탁월한 심리 보고서를 넘어 심오한 신학서이기도 한 이유다. 각설하고,  이 책에 대한 내 결론은 한 가지다. 당장 서점에 달려가서 이 책을 사라. 그리고 들어 읽으라  (Tolle Leg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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