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64 년 처음으로 세상에 나온 후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신학서 중 하나이자 현대의 고전으로 자리잡은 위르겐 몰트만의 명저 <희망의 신학>을 읽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 논지 자체가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난해하거나 복잡해서가 아니라, 그가 과거의 위대한 신학적, 철학적 전통에서부터 바르트나 불트만, 폰 라트와 같은 당대의 거장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인물/사상들과 철저하고 집요하게 대화하고 대결해가며 자신의 신학적 사유를 전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쉽지 않은 이 책의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거나 그 내용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당연히 내 능력의 한계를 벗어나는 일이 되겠지만, 이 책에 들인 시간과 노력을 허공으로 날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몰트만 자서전> 과 <알기 쉽게 간추린 몰트만 신학> 그리고 몇몇 현대신학 소개서들의 도움을 받아 내용을 요약해 보기로 한다.
2. 오늘날 종말론은 최후의 날에 일어날 일에 대한 일련의 가르침으로 축소된 채 교의학의 끝자락에 달린 중요하지 않은 부록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그 결과 그리스도인들의 구체적 삶을 위한 의미와 타당성을 상실하고 소수 열광주의적 종파들의 관심사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러나 저자는 기독교란 그 본질상 철저히 종말론이자 희망이며 미래를 향한 전망이자 앞으로 나아가는 행진일 수밖에 없다고 강조하며, 종말론은 결코 기독교 교리의 한 부분이 아닌 모든 기독교적 선포와 실존의 핵심이자 그 매개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저자에 의하면 그리스도교적 신앙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실제적 문제는 바로 미래의 문제이며, 종말론은 마땅히 올바른 신학의 마지막이 아니라 그 시작이어야 한다.
3. 저자는 기독교적 희망의 신학에는 세 가지 핵심적 개념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1) ‘하나님의 약속’ 이라는 개념 (2)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부활’ 을 세계를 위한 하나님의 약속으로 생각하는 것 (3) 인간의 역사를 ‘하나님 나라의 선교’로 이해하는 것이 그것이다.
(1) 이스라엘의 역사 - 족장들의 역사, 광야의 역사, 다윗의 역사 - 는 미래에 대한 약속과 희망으로 가득 차 있으며, 하나님은 약속의 방식으로 그리고 약속의 역사에서 자신을 계시하신다. 구약성서가 증거하는 하나님은 세계 안에 갇혀있는 내재적 존재나 세계 밖에 있는 초월적 존재가 아니라 ‘세계 앞에 있는 존재 즉 ’희망의 하나님’ 이며, 따라서 참된 기독교적 종말론은 ‘영원한 것의 현존’ 을 묻는 고대 근동의 현현종교나 바르트와 불트만의 실존적 종말이해와는 달리, 끊임없이 ‘약속된 것의 미래’를 소망하며 추구한다.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은 율법과 예언자적 선포, 그리고 묵시적 종말론을 거치면서 모든 민족들에 대한 야훼의 통치라는 보편적 전망을 획득하며, 인간 실존의 한계에 대한 질문에까지 도달함으로서 이스라엘로 하여금 죽음과 부활의 문제앞에 직면하게 한다.
(2-1)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은 만물의 새창조를 위한 하나님의 궁극적이고 우주적인 약속이자,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와 그 임재의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확증이다. 이 악속의 성취는 현재 예수에게만 적용되어 있지만, 하나님께서 죽음의 지배를 이기고 부활한 예수를 잠에서 일어난 모든 자의 첫 열매로 삼으셨을 뿐 아니라 만물을 위해 생명을 가져오는 자로 삼으셨기에, 다가올 하나님의 미래에 산 자들과 죽은 자들과 탄식하는 모든 피조물에게 보편적으로 성취될 것이다. 만약 다가오는 하나님의 영광의 나라와 미래 세계의 영원한 삶이 없다면 하나님이 예수를 다시 살리신 것은 아무 의미가 없으며, 만약 예수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인들의 희망도 아무런 기독교적 근거를 가질 수 없다. 따라서 신학의 그리스도론적 중심은 미래적이고 종말론적인 지평을 가져야 하며, 모든 종말론적 지평은 그리스도의 부활이라는 역사적 현실에 그 근거를 두어야 한다. 신약성서에서 선험적으로 예수의 부활에서 출발하지 않는 신앙은 존재하지 않으며, 부활신앙이 아닌 기독교신앙은 기독교적이지도 않을 뿐 아니라 심지어 신앙이라고 불릴 수도 없다. 희망을 잃는 것, 절망에 빠지는 것은 불신앙과 죄의 다른 이름이다.
(2-2)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이 현재 그리스도의 통치에 완전히 참여하고 있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대안적인 미래를 향한 희망은 믿는 자들에게 현재와 갈등하게 하며 현재에 집착하는 사람들과 충돌하게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신자들이 기독교적 희망 안에서 현존하는 현실과 빚는 갈등은 부활의 세계가 십자가의 그림자 안에서 세상과 빚는 갈등이며, 희망하는 자는 죽음이라는 현실 및 계속적으로 악을 생산하는 세상과 도저히 화해할 수 없다. 만약 하나님이 박해와 버림과 시련을 받고 이 세상의 권력자들에 의해 처형당한 예수를 일으켜 세우셨다면, 그 분은 이 땅에서 억압과 버림과 저주를 받은 자들에게도 동일한 희망과 미래를 선사하실 것이다. 따라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의 불의와 억압에 대항하여 십자가와 고난과 죽음을 짊어지고, 시련과 투쟁을 겪으며, 사랑의 고통 가운데 헌신할 때에만, 우리는 세상 가운데 그리스도의 부활과 그 결과인 생명과 의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미래를 선포할 수 있다. 만약 ‘부활한 자’가 ‘십자가에 달렸던 자’와 동일하다면 하나님의 나라는 십자가의 덮개 아래 있는 것이며, 성도들의 고난과 투쟁을 통해서만 이 땅에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3)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부활’은 바로 그 부활한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서 새 창조와 부활의 소망 가운데 살아가는 종말론적 구원의 공동체인 교회에 즉각적으로 ‘선교’라는 사명을 부여한다. 하나님의 미래가 우리에게 열어 보이는 보편적인 미래의 약속 (promission) 은 우리를 필연적으로 모든 민족을 위한 보편적인 사명 (mission) 으로 인도한다. 교회에 주어진 이 사명 (mission) 은 일차적으로는 ‘세상의 모든 민족에게 차별 없이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지만, 이를 넘어 종말론적 정의의 실현과 인간의 인간화, 타락 가운데 신음하는 모든 피조물의 샬롬을 추구하는 데까지 확장되어야 하며, 교회는 이 사명을 성취하기 위해서 공허한 유토피아적 공상이나 알려지지 않은 미래의 가능성이 아닌 오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 오고 있는 공의와 평화, 오고 있는 자유와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성서적 약속에 근거한 기대의 지평 안에서 끊임없이 소망하고 투쟁해야 한다. 기독교 선교의 목적은 세상을 향해 오고 있는 이러한 하나님의 나라의 생생하고 활기찬 희망을 일깨우는 것이며, 오늘날 선교는 오직 사람들을 희망으로 감염시키는 일을 함으로서만 자신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세상이 길들일 수 없는 ‘탈출 공동체’ 인 동시에 세상을 섬기도록 부름받은 ‘세계를 위한’ 교회, 현상황 (status quo) 의 제도적인 고착화에 저항하며 세상을 창조적으로 변혁하기 위해 노력하는 교회만이 이러한 ‘하나님의 선교’ 를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4.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기독교의 마지막 전망, 즉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를 제시함으로서 창백한 그리스도인의 피 속에 철분을 공급했다”는 슈피겔 紙의 찬사에서부터 “마르크스주의자인 마르크 블로흐의 <희망의 원리> 에 세례를 베푼 것 에 불과하다” 는 칼 바르트의 비평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찬사와 비판, 그리고 논쟁에 휩싸였다고 한다. 혹자는 그의 종말론, 그것도 미래적 종말론에로의 지나친 편향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하며, 혹자는 그의 신학이 함축하고 있는 정치적 참여적 측면에 대해 불편해 하기도 한다. 다 일리가 있는 지적이다. 그러나 아무도 도달하지 못한 미답지에 새로이 발을 디디기 위해서는 중용과 균형의 안정된 자리를 박차고 경계와 금기를 넘어서는 월경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몰트만의 말마따나 희망의 가장 큰 적은 ‘위험 없는 신앙(혹은 신학)’이요, ‘평안한 교회‘일지도 모르겠다. 전통에 깊이 뿌리박고 있으면서도 현실의 도전을 외면하지 않고 미래를 향해 과감하게 투신했던 그의 신학에 대해서 그 자신이 내렸던 평가가 가슴에 와 닿는다. “나는 성서적 근거를 갖는 신학, 종말론적 방향을 갖는 신학, 정치적으로 책임 있는 신학을 추구하려고 노력한다. 이것은 바로 고통 중의 신학. 하나님 자신을 기뻐하는 신학, 항상 놀라는 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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