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유명한 신학자인 안셀름(Anselm 1033-1109) 의 잘 알려진 이 책 인간이 되신 하나님 (CUR DEUS HOMO) 는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시작하고 있다. " 어떤 이유 혹은 필연성 때문에 하나님이 친히 사람이 되셔서 우리를 구원해야만 했는가? 그분이 다른 인격체 - 천사 또는 사람 - 을 통하여, 또는 심지어 단순히 그분의 의지를 행사하심으로서 우리를 구원할 수 있지 않았을까? " 이 질문에 대해 그는 오늘날 만족설로 잘 알려져 있는 논증을 통해 대답한다.
저자에 의하면 인간은 하나님의 통치 아래서 그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도록 창조되었으나, 불순종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었고, 그 결과 하나님의 명예가 심각하게 손상되고 말았다고 한다. 따라서 하나님은 그러한 불순종에 대하여 형벌을 내리시거나, 자신이 받은 불명예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받으셔야만 했다. 이러한 하나님의 명예회복을 위하여는 무한한 보상이 요구되나, 인간에게는 스스로의 죄에 대한 보상을 지불할 능력이 없다. 따라서 인간보다 무한히 큰 존재인 하나님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죄로 인하여 하나님께 지은 빚을 갚을 수 없다. 그러나 죄를 지은것은 바로 인간이기에, 죄책을 감당해야 하는 존재는 다름아닌 인간일 수 밖에 없다. 이러한 딜레머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이면서 동시에 인간인 한 분이 필연적으로 오셔야만 했으며, 이 분이 바로 성경이 증거하는 그리스도시다.
저자는 "하나님께서 주신 선행하는 은총에 의하여 구속에 의한 신앙을 확실히 붙들고 있기에, 설령 신앙을 뒷받침할 만한 어떠한 이성적 사실을 발견하지 못한다 해도 신앙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지만...일단 신앙에 이른 다음에 우리가 믿는것이 무엇인지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것은 부주의한 일" 임을 천명함으로서 이해하기 위해서 믿는다 (credo, ut intelligam) 는 어거스틴의 전통에 서 있음을 확고히 밝히고 있다. 그러나 그가 추구하는 이해란 일단 신앙으로 받아들인 사실에 대해 성경에 의존하지 않고 순수하게 논리적 추론을 사용하여 증명하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즉 그는 이 책에서 성육신과 속죄의 필요성을 성경적 계시의 도움 없이 오직 합리적 이성과 논리적 필연성의 관점에서 증명하려고 시도한다 . 이러한 그의 신학적 방법론은 실제로는 오히려 이성을 사용한 합리적 논증과 하나님의 계시를 동시에 긍정하는, 중세 스콜라 신학의 전통인 소위 자연에 덧붙여진 은혜 (donum superadditum) 라는 개념에 더 가까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리는 우리의 죄사함을 위해서는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필연적으로 인간이 되실 수 밖에 없었다는 이 위대한 중세 교부의 가르침에 기쁜 마음으로 감사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결론에 동의한다고 해서 그가 사용한 신학적 방법론까지도 100%동의해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우리는파스칼을 따라 하나님은 철학자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주장해야 하지 않을까? 칼 바르트를 따라서 신학적 명제란 이성으로 증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은 오직 계시를 통해서만 알려진다고 주장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종교개혁자 루터의 가르침대로 오직 말씀으로 (sola scriptura) 가 우리 신앙의 모토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2014년 12월 성탄절의 단상 2014년 12월 성탄절의 단상 지난 몇년간 리뷰를 적었던 책중에 그나마 성탄과 가장 가까운 것이 위대한 중세의 신학자인 안셀름이 지은 <인간이 되신 하나님 CUR DEUS HOMO> 네요.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내용도 내용이었지만, 이성적 접근을 중시하는 저자의 신학적 방법론이(아마도 스콜라 신학의 방법론이겠지요?)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러한 접근은 과연 '틀린' 것일까요, '다른' 것일까요? 2011년 당시에는 '틀린' 것으로 단정지었던 것 같습니다만 이제는 좀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다들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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