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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기독교/교의 .변증

20세기의 사건들과 현대신학 (그레고리 바움 엮음, 대한기독교서회 펴냄)

by 서음인 2016. 5. 27.

1. 영국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의 말마따나 20세기는 "극단의 세기" 였다. 진보와 평화의 낙관적 전망으로 시작했던 이 세기는 곧 전쟁과 폭력, 파시즘과 혁명, 공황과 빈곤 등 최악의 야만이 판치는 아수라장으로 변했고, 이 묵시론적 위기의 도전 앞에  철저히 무력했던 구시대의 신학은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도록 무너진 채 새로운 시작을 요구받게 되었다. 이 책은 (1) 20세기의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이 당대의 신학에 끼친 영향을 살펴보고 (2) 이 세기에 성취된 중요한 문화, 종교적 발전에 대해 신학적으로 평가함으로서 , 20세기의 도전에 대한 현대신학의 응전을 총체적으로 개괄할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 편저자인 가톨릭 신학자 그레고리 바움 (Gregory Baum) 은 서론에서 이 책의 이야기가 “충성과 번민의 이야기", 즉 “변화하는 역사적 상황에 대응하는 창조적 응답과 충성의 이야기며, 해결할 수 없는 질문과 세상의 죄악 가운데서 무기력해진 진리로 인한 번민의 이야기” 라고 말한다. 


2. 이 책의 첫 번째 특징은 일반적인 현대신학 개설서와는 달리 특정 신학자나 신학 운동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20세기의 역사적 사건들을 신학적 사유의 출발점으로 삼는다는데 있다. ‘신학’ 보다 ‘사건’을 앞세우는 이러한 접근 방식은 신학이란 특정 시대의 역사적 도전에 뒤따르는 창조적 응답의 과정이며, 역사적 정황을 벗어나서는 영원한 진리를 언급할 수 없다는 저자들의 생각을 잘 드러내준다고 할 수 있다. 당대의 역사적 과제에 창조적으로 대응하는 데 실패한 채 단단히 굳어진 도그마의 껍질 안으로 퇴각하여 오직 과거를 반추하는데만 몰두하는 신학은 결국 살림을 위해 사용되기를 멈추고 누군가를 정죄하고 배제하며 심지어는 죽음으로 내모는 도구가 되는 운명을 피할 수 없다.


이 책의 두 번째 특징은 말 그대로 ‘에큐메니컬’한 기획이라는 것이다. 편저자는 독일 출신의 저명한 캐나다 가톨릭 신학자이지만 이 책에는 로즈메리 레드포드 류터처럼 가톨릭 배경을 가진 학자들의 글뿐 아니라 하비 콕스와 같이 저명한 개신교 신학자의 글도 섞여 있으며, 심지어 러시아 혁명 이후 서구로 망명한 러시아 정교회 신학자들을 다룬 글도 존재한다. 뿐만 아니라 범위와 주제에 있어서도 1차 세계대전에서부터 대공황과 러시아 혁명, 홀로코스트, 복지 자본주의, 생태 위기와 포스트모던 논쟁에 이르기까지 지난 세기의 주요한 사건들이 모두 망라되어 있다. 이쯤 되면 20세기 기독교의 모든 영역을 총망라한,  “책으로 구현된 에큐메니즘” 이라고 이름 붙이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3. 그러나 다양한 저자들이 참여한 책들이 대부분 그렇듯, 이 책도 저자들의 신학적 배경이나 주제에 관한 접근 방식이 워낙 다양하다보니 좀 산만한 느낌이 있으며, 현대신학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지식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개신교인의 경우 몇몇 글들, 특히 가톨릭이나 정교회를 다룬 글들은 이해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 현대신학에 대한 친절한 소개서나 해설서로 읽힐 만한 책은 결코 아니며, 굳이 말하자면 ‘심화과정’ 쯤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겠다.


목차

                                                                                                             

제1부 20세기의 역사적 사건들이 신학에 끼친 영향


제1장 '위대한 전쟁'과 신학자들 (더글라스 존 홀)

제2장 근대주의에 대한 정죄와 가톨릭 신학의 살아남기 (빅토르 콩세뮈)

제3장 볼셰비키 혁명 이후: 러시아의 디아스포라 신학자들 (버나드 듀피스)

제4장 추방에서 귀환: 1930년대의 가톨릭 신학 (조셉 A. 코몬책)

제5장 대공황: 북미 신학자들의 반응 (도날드 슈바이처)

제6장 나치 독일의 신학자들 (제임스 레이머)

제7장 유대인 대학살: 신학적이고 윤리적인 고찰 (로즈메리 래드포드 류터)

제8장 복지 자본주의의 황금기: 거장들의 황혼 (게리 도리엔)

제9장 세계교회의 출현과 가난한 사람들의 등장 (비르길리오 엘리손도)

제10장 새로운 세계의 탄생: 위로부터의 세계화 대 아래로부터의 세계화 (리 코미)


제2부 20세기의 사건들과 운동들에 대한 신학적 평가


제11장 20세기의 신화: '세속화'의 등장과 쇠퇴 (하비 콕스)

제12장 에큐메니컬운동: 제국주의적 세계주의와 편협한 종족주의를 넘어서 (울리히 두크로)

제13장 제2차 바키칸 공의회의 영향 (로버트 J. 슈라이터)

제14장 마르크스주의가 그리스도교 신학에 끼친 영향 (그레고리 바움)

제15장 20세기 여성운동과 신학 (수산 A. 로스)

제16장 미국 안에서 소수자의 목소리 (드와이트 홉킨스 & 린다 토마스)

제17장 생태위기 (스티븐 B. 쉐퍼)

제18장 포스트모던 논쟁 (마이클 J. 스캔론)


결론적 성찰: 한 세기를 돌아보며 (그레고리 바움)

 

                                                                                                                             

본문 맛보기


 “......북미 사람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이 환상으로부터 벗어난 20 세기 전반에 젊은 신학자들이 일으킨 신학적 갱신이 갖는 정치적 함의를 명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칼 바르트나 에밀 브루너, 그리고 그 외의 신정통주의 운동의 대표 신학자들이 견지하던 신정통주의 운동의 정통사상에 감탄하면서도, 정작 그 신학이 가지고 있던 사회주의적 사회분석과 윤리관을 무시하거나 거부하는 보수주의 그리스도교인들은 거의 언제나 신정통주의 신학을 왜곡시켰다. 왜냐하면 신정통주의는 하나님의 초월성 즉 절대타자이신 하나님이라는 교리에 있어서 정통으로만 회귀한 것이 아니라, 세계를 변혁시키실 자로서의 구원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도 고백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글라스 존 홀, 위대한 전쟁과 신학자들)


“......니버가 이해한 대로 사회복음운동은 이성과 선한 의지를 통해서 인간조건이 점차로 진보해 간다는 문화적 낙관주의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유주의적’ 이었다. 그러나 이성과 사랑은 자유주의와 사회복음운동이 생각하는 것만큼 사회변화에 충분히 효과적이지 않다. 모든 인간의 노력과 행동은 자기 이익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인간이 기대할 수 있는 최선책은 계속적인 비판과 조정이 필요한 불완전한 정의를 이룩하는 데 있다.......그러나 그리스도적 사회질서를 위한 모임 (FCSO) 에 의하면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투쟁하는 근거는 인간의 선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에 있다. 라인홀트 니버의 신학은 항상 이 점에서 약하다. 그는 원죄론을 반복하면서 성령론을 발전시키지 못했다. 만약 그가 그랬다면, 그는 인간의 신적 잠재력을 실현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못한 인간의 죄성을 더욱 깊이 이해했을 것이며, 역사 속에서 어느 정도 악을 극복하려는 급진적인 사회운동에 더욱 개방적이었을 것이다......." (도날드 슈바이처, 대공황 : 북미 신학자들의 반응)


“........대학살 이후의 신학은 해방과 구원을 일방적으로만 이야기하는 모든 신학의 어두운 부분을 비판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는 질문해 보아야 한다. 우리의 해방으로 인해 누가 피해를 당할 것인가? 우리의 구원으로 인해 누가 노예가 되는가? 피해자와 가해자를 넘어 연대하는 신학은 구원론의 어두운 측면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 민족의 메시야가 다른 민족을 저주함으로서만 승리할 수 있고, 우리의 약속의 땅이, 그것이 고대 가나안 사람이든, 현재의 팔레스타인 사람이든, 아프리카 원주민이든 간에, 다른 누군가를 몰아냄으로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면, 그것은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의미할 뿐 아니라 새로운 죄악, 즉 ‘새로운 대학살’의 씨앗이 뿌려진 것을 의미한다......” (로즈메리 래드포드 류터, 유대인 대학살 : 신학적이고 윤리적인 고찰)


“.......내 초창기 저서 (세속도시) 의 주제는 많은 종교인들의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종교적’ 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삶의 영역에서는 ‘세속적’ 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일어나고 있는 종교운동들은 다양한 ‘세속적’ 영역에 신성한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다시 용감하게 주장하고 있다. 또한 내 옛날 책은 전통적인 교회들이 가난하고 소외받는 사람들을 무시하는 것을 비판했다. 지금 많은 새로운 종교운동들은 전통적인 종교들이 접근하지 않았던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호소하고 있다. 사신신학자들은 서구 신학자들의 추상적인 하나님과 유신론적 철학체계가 이제 끝장났다고 보았으나, 미래에 대한 그들의 예언은 틀리고 말았다. 그러나 은사주의와 같이 신조나 철학에 의존하기보다 신과의 직접적인 체험에 의존하는 새로운 종교운동들의 부흥은 사신신학자들의 견해를 역설적으로 입증하고 있는 듯하다. 오늘날 전통적 그리스도교 신학에 가장 큰 도전이 되는 것은 무신론과 합리주의가 아니다. 그 도전은 ‘신의 죽음’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신들(그리고 여신들!) 의 재탄생’으로부터 온다........“ (하비 콕스, 20 세기의 신화 : ’세속화‘의 등장과 쇠퇴)


“........페미니스트 학자들은 우리가 ‘정신-자아’ 일 뿐 아니라 ‘육체-자아’이며, 섹슈얼리티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선물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상기시키고자 노력하였다. 인간의 육체와 자연의 세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로막는 장벽이기는커녕 하나님과의 만남에 이르는 수단이 된다. 그래서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의 안수를 반대하는 정서가 대부분 여성들의 육체와 섹슈얼리티에 대한 두려움에 의거한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이러한 노선에 따르는 사람들은 여성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대리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육체화와 섹슈얼리티를 하나님과 연합시키는 것을 그 둘을 조심스럽게 분리하고자 노력해 왔던 서구 그리스도교 전통을 위협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육체와 섹슈얼리티의 중요성을 특별히 여성의 전망 속에서 다시 구축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여성들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수산 A. 로스, 20 세기 여성운동과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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