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대표작 인간현상이 과학에 강조점을 두고 진화론의 용어로 기독교를 재해석하고 있다면 이 책 신의 영역은 기본적으로는 동일한 내용을 다루고 있지만 훨씬 사변적이고 신앙고백적이다. 그는 이 책에서 이 세상에 세속적인 일이란 없으며, 인간의 모든 노력은 결국 그리스도 안에서 세계의 완성에 협력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인간은 신앙의 이름으로 그에게 주어진 세상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피조계에 대한 과학적 탐구의 신성한 의무에 충실해야만 한다고 한다. 물론 개개의 인간은 실패와 쇠퇴를 경험하게 되고 결국 죽음의 운명을 맞게 되지만, 그는 이러한 쇠퇴마저도 초자연적 영역에서 신의 신비한 섭리 하에 선으로 바뀌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인류의 역사란 결국 모든 인류가 완전에 이르는 진화의 정점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며, 이러한 인간들의 모든 노력을 완성의 공통된 중심으로 불러 모으는 힘은 바로 부활한 그리스도라고 결론내리고 있다.
이러한 그의 결론은 이성의 역할을 긍정하고 그리스도의 구속이 그 위에 덧붙여진 은혜(donum superadditium) 라고 주장하는 아퀴나스와 가톨릭의 세계관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교회나 수도원이 아닌 세상이 그리스도인들의 소명의 장소이며, 예배가 아닌 우리의 일상이야말로 참된 영성의 현장이라는 그의 주장에 기꺼의 동의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세상은 죄로 인하여 철저히 오염된 곳이며 , 따라서 은혜는 자연과 이성에 단순히 덧붙여지는 것으로 충분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철저히 변혁시키는 것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리챠드 니버의 고전적인 저술 그리스도와 문화의 패러다임을 빌려 말하자면 그리스도는 '문화위에 계신 그리스도' 가 아니라 '문화의 변혁자 그리스도' 라는 말이다. 우리는 마지막 날 거룩한 도성에 인간이 이룩한 문명과 문화의 정수들이 모여들 것이라는 이사야 60장의 위대한 비젼을 보며 기뻐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정화시키는 심판을 통해 철저히 변혁되고 지상에서보다 훨씬 더 영광스러운 형태로 존재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에 더욱 기뻐해야 하지 않겠는가? 천국에 가면 제일 먼저 모짜르트의 안부를 물어보겠다던 신학자 칼 바르트는 아마도 지금 지상에서보다 훨씬 아름다운 모짜르트 음악의 선율 가운데 안식하고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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