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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저서/믿묻딸 - 서평

송현주 집사 서평 (2023년 7월 2일)

by 서음인 2023. 7. 13.

① 오랫동안 알고 지낸 교회 선배인 한욱형이 책을 내었다.
전북 고창에서 안과 병원의 의사로서 생활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친구 같은 형으로 존경할 만한 선배이다.
함께 했던 성경공부 등 알게 모르게 많은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책은 형이 젊었을 때부터 근 30여년 기독교 서적을 탐독 한 결과물이다.
여기서는 그냥 ‘작가’라고 칭한다.
 
② 책 제목 <믿음을 믿는 딸에게, 아빠가>는
사실 <딸이 믿음에 대해 이런 질문을 해주면 참 좋겠는 아빠가>
더 솔직한 제목이다.
 
딸이 아빠에게 질문하는 형식을 빌려 25가지의 질문을 하고,
아빠가 답변하는 형식으로 정리되어 있다.
질문은 간단해 보이지만,
신앙과 자신에 대해 꽤 진지한 성찰이 없인 나오기 어려운 질문이다.
그래서 질문은 딸이 자신의 삶에 진지한 성찰을 기대하는 아빠가
이런 질문 해주면 참 좋겠다 라는 기대감이 반영된 질문이다.
 
사실 대부분의 딸들은 이런 질문 안 한다.
하더라도 아빠에게 하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아마 2-3개 정도는 작가의 딸이 했을 법한 질문이기는 하지만….
사실 책 표지에 부제처럼 작은 글씨로 써 놓은
기독교에 회의적인 교양인과 나누고 싶은 질문 25가지가 책의 진짜 제목이다.
출판사가 정한 <믿음을 믿는 딸에게,아빠가>는 엄청 잘 뽑은 제목이다.
 
③ 사실 작가는 기독교에 회의적인 교양인이었던 적이 있거나
최소한 그런 사람들에게 우호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25가지 질문은 작가 스스로 좋은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던졌던 질문들이며,
그 질문의 도그마적 답변에서 벗어나기 위한 발버둥이었으며
차마 신앙의 길을 벗어날 수 없었던 나름 절박한 자기 정리였다.
 
④ 작가의 다른 글들도 봐왔던 터라,
책에 상당한 노력이 들어가 있음을 바로 알 수 있었다.
평소에는 좋게 표현하면 철학적이고 본질적 사색을 반영 한 글들이 많다.
나쁘게 표현하면 너무 학문적이라 어렵게 정리가 되어 있다.
내용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보았던 사람들에게는 공감과 울림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어렵다. 사실 거의 철학 논문에 가깝다.
하지만 이번 <믿음을 믿는 딸에게,아빠가>는
어마어마한 순화 작업이 있었음을 직감했다.
일단 상대적으로 쉽다.
 
⑤ 이 책을 구매한 사람들 중 높은 비율이 40,50대라고 한다.
아마도 신앙적 체험을 하고 교회의 마땅한 모습에 대해 고민해 본
사람들이 한 번은 비판적으로 접근해 보았을 다양한 문제를
잘 정리해 놓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에게서 많은 공감을 받았으리라.
 
희망하기는 교회에 다니는 젊은 세대들도 이 책을 한번 보았으면 좋겠다.
한 번은 거쳐야 할 질문들이 많고,
그 질문들에 대해 꼭 같은 결론에 이르지 않더라도
참고할 만한 가치는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교회에 다니지 않으신 분들도,
한국 사회의 중요 구성 단위 중 하나로서
교회에 관심이 있다면 읽어 보았으면 한다.
교회의 구성원인 평신도들이
이런 고민을 하는구나 하고 이해할 수 있는
인문학적 관점에서 책을 보아도 괜찮을 듯싶다.
 
⑥ 형은 아직 직분이 장로가 아니다.
사실 장로가 될 만한 사회적 지위 및 신학적 깊이와 신
앙적 경륜을 두루 갖추고 있다.
하지만 나는 형이 장로가 안 되었으면 좋겠다.
 
장로만 해도 벌써 무언가 권력(?)의 냄새가 난다.
우리 시대에 평범한 교회에서 삶과 신앙을 진지하게 대하는
그냥 평신도가 정말 평범하게 우리 곁에 머물렀으면 하는 바램으로
끝까지 평신도로 남아 있어 주기를 바란다.
겉으로 그렇게 엉망진창으로 보이는 한국 교회가 여전히 버티고 있는 것은
이런 고민을 하는 평신도들이 의외로 많기 때문일 것이다.
더 많은 훌륭한 평신도와 목회자들이 나와 교회가 시대의 걸림돌이 아니라
시대의 디딤돌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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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내용 중 >
 
책의 내용 중 다시 생각해 볼 만한 여러 내용이 있다.
그 중 하나만 정리해 보면.
 
"본회퍼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인간을 종교가 아닌 삶으로 부르셨으며, 그리스도인이 제자로 부름받은 자리는 황홀한 피안이나 은혜로운 교회가 아니라 거칠고 죄악으로 가득 찬 세상 한가운데이기 때문이지. 그는 제자의 핵심적 표지가 세상 한가운데서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며 ‘타자를 위한 존재’로 살아가는 삶이라고 강조해 하나님 없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 함께 그리고 ‘공동체로 존재하는 그리스도’인 교회의 일원으로,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의 섬김과 고난을 기꺼이 따라가며 세상을 위한 존재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지"
 
① 한 때 한국 교회는 선교의 열풍이 불었던 적이 있다.
또 교회에 열심히 다니다 보면
목회자가 되는 것이 가장 훌륭한 선택 중 하나라는
은밀한 선전(?)도 접하게 된다.
다른 관점에서는 목회자와 선교사로서 소명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디인지 신앙이 부족해 보이기도 한다.
 
② 당시에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모두가 목회자가 되고 선교사가 되면 일은 누가 하나?
나름의 사색과 삶의 경험이 쌓이면서 거친 생각들이 조금씩 정리되어 갔다.
 
③ 정리하면 대충 이렇다.
하나님이 사람을 사람으로 창조하였다.
(말장난 같은데 길게 쓰면 복잡 해진다)
그 사람됨이 발현되는 곳, 혹은 발현되어야 하는 곳은 일상이다.
어쩌면 종교성 보다 일상성이 더 중요하다.
그 일상성이 확보되지 않는 종교성은 위험하고 자기중심화 된다.
심지어 종교성을 내서워 <하나님이 사람을 사람으로 창조한>
사람됨을 왜곡한다.
반대로 종교성이 없는 일상성만 있다면 그건 신앙인이 아닌 그냥
좋은 인격체 일 것이고...
두 가지가 잘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그 균형에 대해
<하나님 없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 함께>는
매우 잘 정리된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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