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저자는 세계에서 문명이 가장 발달한 민주국가와 가장 압제적인 전제국가의 공통점은 무고한 생명을 대량학살했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전 세계 역사 속 거대 단일국가나 대규모 정치적 운동에서 그 결과를 달성하기 위해 대량학살의 힘을 빌지 않은 경우는 없으며, 인류의 역사는 벽돌이나 회반죽, 철이 아닌 학살당한 사람들의 피와 살, 뼈로 세워졌다는 것이다. 이 책은 기원전 146년에 벌어진 로마에 의한 카르타고의 멸망에서부터 20세기에 자행된 난징 학살사건, 베트남 미라이 사건,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르완다와 보스니아의 인종청소에 이르기까지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했던 18건의 조직적이고 의도적인 대량학살과 집단살육에 대해 그 원인과 전개과정, 학살의 결과와 영향, 그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응과 사후처리에 이르기까지 각 사건의 전 과정을 간략하게나마 다루고 있다.
2.저자에 의하면 이러한 대량학살 사건들에는 몇 가지 공통 요소가 존재한다. (1) 첫 번째는 가해자가 피해자를 비난한다는 것이다. 수많은 희생자들이 마땅히 제거되어야 할 미개인, 열등인종, 이교도, 빨갱이, 국가의 적이라는 비난과 함께 무참히 학살당했다. (2) 두 번째는 가해자들이 홀로코스트 자체를 부인하거나 그 규모를 축소한다는 것이다. 즉 가해자들은 학살 자체가 결코 일어난 적이 없으며 일어났다 해도 그 규모가 극히 작았다고 주장한다. 혹은 학살이 일어나긴 했지만 국가의 명령이 아니고 사악한 특정인들이 자행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일본은 난징 학살사건에 대해 아직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베트남에서의 한국 역시 예외는 아니다. (3) 세 번째 공통점은 여성을 끔찍한 방법으로 취급한다는 것이다. 거의 대부분의 대량학살에서 여성 피해자의 숫자가 훨씬 많으며 일단 살인이 시작되면 여성에게는 강간이나 사지 절단과 같은 가장 잔인한 방식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4) 특히 20세기에 발생한 대량학살의 경우 대부분은 국제사회의 개입으로 충분히 막을 수 있었거나 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즉 이러한 대량학살의 배후에는 정치적 이해관계에 민감한 미국이나 NATO, UN 과 같은 국제사회의 방조가 자리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3. 이 책은 다행히(?) 한국에서 벌어진, 혹은 한국인이 벌인 학살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고 있다. 그러나 굳이 저자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한국의 현대사 역시 해방 후 제주에서, 한국전쟁의 아비규환 속에서, 이국 땅 베트남에서, 80년의 광주에서 자행되었던 수많은 학살의 무고한 피와 살과 뼈 위에 세워졌다는 것을 부인할 수 있을까? 이규봉은 그의 책 미안해요 베트남(푸른역사 펴냄) 에서 박정희나 전두환이 저지른 민간인 살육이 반공 이데올로기와 국가주의로 정당화되어, 학살의 역사가 승리의 신화로 둔갑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한국전 직후의 민간인 학살과 베트남에서의 학살, 그리고 광주에서의 학살은 결코 독립된 사건이 아닌 동일 연장선상에 있으며, 우리가 왜곡되고 은폐된 학살의 과거를 기억하지 않는다면 그 끔찍한 과거는 언젠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고 우리에게 경고한다. 과연 우리는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
4. 독일의 역사가 데틀레트 포이케르트는 그의 책 나치 시대의 일상사(개마고원 펴냄) 에서 자신들의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유대인 대량학살에 대해 알고 있었거나, 관심만 가졌으면 누구든지 확인할 수 있었음에도 타인의 고통과 희생을 외면하거나 침묵했던 대다수 독일 국민들은 단순히 나치의 피해자나 동반자가 아니라 적극적인 “공범자”였다고 말한다.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한길사 펴냄) 에서 극렬한 반유대주의자는 아니었지만 그에게 주어진 유대인 학살을 위한 계획의 임무를 소시민적인 성실성을 발휘하여 열심히 수행했던 나치의 중간관리 아이히만에게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타인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생각하는 능력의 결여, 즉 타인의 고통에 대한 무관심과 생각없음이야말로 악의 본질이라고 갈파한다. 결국 권력에 의한 야만적 범죄행위가 일상화된 시대에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것은 그 자체로 사악함의 공모자요 공범이라는 이야기인데...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어떤 사람들이었고, 어떤 사람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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