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내용
0. 이 본문은 동시대에 유다와 예루살렘을 통치했던 대조적인 두 왕 여호사밧과 아하시야의 운명에 대해 다룬다. 이 이야기는 여러 면에서 열왕기서 메시지 전체의 요약이라 할 만 하다.
1. 유다 왕 여호사밧은 조상 다윗의 전통에 선 신실한 여호와 예배자였다. (왕상22:50) 그는 장수했고 성공적으로 에돔을 통치했으며 아들에게 왕위를 넘겨주고 평화로이 죽어 다윗성에 장사되었다. 반면 이스라엘 왕 아하시야는 아버지 아합과 마찬가지로 바알 숭배자였다. (왕상 22:53) 그는 1년여의 기간 동안만 왕위를 지켰고 모압의 반란에 무력했으며 자녀 없이 수치 속에서 죽었다.
2. 여호사밧은 여러모로 솔로몬과 비슷한 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이스라엘 왕과 평화롭게 지냈고 솔로몬 시대에 오빌에서 금을 실어온 ‘다시스의 선단’을 부활시키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이방인들까지 자신의 배에 태웠던 솔로몬과 달리 여호사밧은 이스라엘 사람을 태우는 것조차 거부했으며, 그의 배들은 오빌까지 가보지도 못한 채 항구에서 파선하고 말았다. '신실한' 여호사밧의 분열왕국은 결코 솔로몬 시절의 영화를 회복할 수 없었다.
3. 난간에서 떨어져 크게 다친 아하시야 왕이 바알세붑에게 자신의 운명에 대해 묻자 하나님의 사람인 엘리야가 심판을 선고한다. 이에 왕이 강압과 무력으로 하나님의 사람을 소환했지만 내려온 것은 불이었다. 보다 예의바른 접근은 왕이 보낸 사자들의 목숨을 살리는 데 성공했지만 배도한 왕에 대한 하나님의 판결을 바꾸지는 못했다.
4. “이방 신들에게 묻지 말라”는 엘리야의 선언과 그 결과인 아하시야 왕의 죽음은 열왕기서 전체 줄거리의 요약이자 그 핵심적 교훈이라 할 수 있다. 선지자는 왕권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만 순종하는 존재이며, 교회는 “왕이 이렇게 말한다”가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보다 결코 앞설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생각해 볼 문제
이 본문들은 '신상필벌(信償必罰)'이라는 신명기 역사서의 신학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열왕기서 전체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열왕기서에서조차 이 전형적 도식을 따르는 본문이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열왕기에서 몇몇 유다의 왕들이 보여준 '신실함'은 그들을 여호사밧처럼 행복한 말년으로 이끌지도, 유다 왕국의 쇠퇴와 멸망을 막지도 못한다. 그렇다면 인간의 '선한' 행위는 역사에 어떤 영향을 끼치며 무슨 의미를 가지는가?
나는 이 문제에 대해 <믿음을 묻는 딸에게, 아빠가>에서 엘륄의 통찰에 따라 역사란 '신상필벌'과 같은 신학적 도식이 기계적으로 적용될 수 없는 하나님의 자유로운 섭리의 영역이며, 그래서 오히려 인간은 자유롭게 그리고 자발적으로 비효율적이고 무익해 보이는 '옳은' 행동을 선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이렇게 "무익한 종이 되는 것만이 자유롭고 해방된 인간이 역사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결론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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