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민 교수님과 함께 한 열왕기 묻고 답하기 온라인 모임에 참여했습니다. 저는 자동차와 기차로 이동하면서 참여하느라 주로 듣기만 했지만 진지한 질문과 통찰력 있는 대답이 어우러진 유익한 시간이었네요!
[열왕기하 묻고답하기 전성민 교수님께 드리는 질문]
[개관적 질문]
1.교수님께서는 열왕기상 묵상올 돕는 키워드로 두 개의 짝으로 이룬 4개의 키워드로 설명해 주셨는데요. (1.역사/이야기 2,성전/왕궁 3.은혜/순종 4.예배/윤리). 열왕기하도 열왕기상과 동일한 키워드로 묵상하면 열왕기하 말씀을 잘 이해할 수 있는 듯 싶은데요. 혹, 앞에서 설명한 4개의 키워드 이외에 열왕기하서에서 보이는 또다른 독특한 키워드가 있으신지요? 열왕기하 묵상에 돕는 키워드, 그리고 묵상에 도움이 되는 조언의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2.열왕기 역사를 살펴보면 대체로 좋은 평가를 받는 왕들은 역사적으로 주변 강대국들의 힘이 상대적으로 약해졌을때 활동했고 ‘악한’ 왕들은 상대적으로 주변 강대국들의 세력이 강했을때 왕위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국제정치적 역학으로 상당 부분 설명이 가능해 보이는 이 문제를 어떻게 ‘신앙’과 조화시킬 수 있을까요?
3.신명기 역사서 – 신명기,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상하, 열왕기상 –을 포로기의 관점으로 봐야하는것은 아닐런지요? 보통 사료들을 이야기하면서 당대의 관점으로만 접근하는데, 최종 편집자, 최종 저자의 포로기의 관점으로 본 것으로 봐야하지 않을런지요?
4.질문 / 열왕기의 1차 독자는 누구인지요? 그리고 "오늘까지/지금까지"의 신학적 의미는?
- 열왕기에 "오늘날까지/지금까지"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오늘날까지"(아드 하욤 하제)는 열왕기에서(왕상 8:8, 9:13, 21; 12:19; 왕하 2:22; 8:22; 10:27; 14:7; 16:6; 17:23, 34, 41) 12회 정도 등장합니다. "지금까지"(아드 아타)는 한 번 등장합니다(왕하 13:23). 열왕기에 "오늘날까지/지금까지"에 대한 언급은 과거에 일어난 사건들을 1차 독자들과 연결시켜 "읽을 대상과 시점"을 분명히 했을텐데 과연 1차 독자들이 누구이며 그 시점은 언제였을지, 그리고 오늘날까지/지금까지가 주는 신학적 의미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 1차 독자를 개인적으로 바벨론 포로지에서 막 돌아온 백성들로 저는 보고 있는데, 그렇게 설정할 때 설교자로서 본문을 이해하는 새로운 안목을 생기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요시야 본문(왕하 22장)이 성전 수리 과정은 거의 언급하지 않고 성전 수리 중에 "율법 책"을 발견했다는 사실과 그것에 요시야가 반응한 것을 비중있고 길게 설명하는 것은 바벨론 포로지에서 돌아온 1차 독자들에게 성전 건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율법에 반응하는 삶이라는 메세지를 주기 위한 저자의 전략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1차 독자들이 어떻게 읽었을까는 열왕기를 이해하는 좀더 섬세한 안목을 열어주었기 때문입니다.
5. 열왕기서를 비롯한 구약역사서에서 꾸준히 이스라엘의 종교혼합주의를 비판하는데 이스라엘에 야훼의 유일성에 대한 믿음이 세워진 시기는 언제로 볼 수 있을까요? 야훼의 유일성에 대한 믿음이 후대에 발전된 것이라고 본다면 열왕에 대한 역대기 저자의 평가는 기록시기인 포로 후기의 입장이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나요?
6. 요시야는 다윗과 히스기야를 능가하는 신실한 왕으로 평가되는데 그의 뜬금없는 죽음은 신명기 사가의 신학과 불일치해 보입니다. 그리고 왜 저자는 므낫세에게 계속하여 유다 멸망의 책임을 돌리는지 궁금합니다.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의 죄’와 유사한 라임인가요?
7. 요시야의 개혁(23:1~20)
요시야가 남유다 뿐 아니라 북이스라엘 지역까지 개혁을 단행하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당시 아마도 국제정서상 앗수르의 영역이었을텐데 어떻게 개혁을 할 수 있었고, 북이스라엘 개혁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또 가장 선한 왕 요시야왕에 대한 죽음에 대해서는 어떤 스텐스로 바라봐아야 할런지요?
[본문에 대한 질문]
1. 왕하 1장 9-12절에 나오는 엘리야가 세 번에 걸친 오십명의 군사들에대해 두 번에 걸쳐 100명을 살랐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이들을 죽였다는 것인가? 아니면 불을 내려 야훼신이 응답하는 신인 것을 보여주는 것일까요?하나님의 불(에쉬 엘로힘)과 하나님의 사람(이쉬 엘로힘)의 언어유희가 사용된 것이 분명하고, 하나님의 사람을 불렀을 때 하나님의 불이 내려와서 하나님의 심판이 내려온다는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보여지고/ 바알과 연결해서 본다면 불(천둥)을 내리는 신은 바알이 아니라 야훼임으로 아하시야가 질문하러 바알에게 물으러 간 것은 잘못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이야기로 보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언어유희가 사용되었다 할지라도 100명의 사람을 살라 죽인 것이라면, 단순히 엘리사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이고, 단순히 하나님의 심판 문제를 넘어서 하나님의 폭력으로도 보입니다. 이 구절에 보여지는 인권의 문제를 어떻게 봐야할까요? - 죽였다는 단어는 없음 – 단순히 불이 내렸다 정도로 봐야할까요? - 혹 이렇게 번역한 성경은?
2.열왕기하 2장 벧엘의 어린아이들(또는 젊은이들)의 저주는 어떻게 이해를?
열왕기하 2:23-25에서 엘리야가 하늘로 올라간 후, 엘리사가 예언자로서 첫 사역을 시작하는 장면에서, 벧엘의 어린 아이들(또는 젊은이들)이 엘리사를 조롱하자 엘리사가 그들을 저주하고, 그 결과로 암곰 두 마리가 그들을 공격하여 죽인사건은 어떻게 해석되어야 할까요? 하나님을 조롱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저주한건데 왜 그렇게 가혹한 저주가 주어졌을까요? 이 사건은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의 성품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엘리사의 저주가 하나님의 뜻에 따른 정당한 행위였는지, 아니면 단순하게 그의 인간적 감정이 개입된 결과였는지 궁금합니다.
3. 17장34절 "그들이"는 누구인지요?
17장 북이스라엘의 멸망 후 사마리아에 "앗수르 이주민들이 정착하였다"는 내러티브와 북이스라엘의 멸망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데요.34절 "그들이"가 '북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앗수르 이주민들'에 대한 말씀으로 보는 견해들이 있는듯 합니다. 즉 24~34절을 한 단락으로 보아 사마리아의 앗수르 이주민들로, 35절~41절을 북이스라엘의 멸망이 대상자로 보는 듯 합니다. 34절 "그들이"는 누구라고 보시는지요? 그리고 만약 그들이 앗수르 이주민들이라면 이들에게도 "야곱의 자손에게 명령하신 율례와 법도와 율법과 계명을 준행하지 아니하였다"라고 북이스라엘처럼 동일한 율법준수를 말씀하시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타당한지요?
4.히스기야왕(18장)의 모습 어떻게 이해를?
히스기야가 유다 가운데 모든 우상을 제거하고 난 이후에 앗수르에게 조공을 바칩니다.(18:13~15) 그 후 앗수르 랍사게와의 전쟁에서 승리.그리고 죽을 병에서 구원받는 히스기야왕.그 후 바벨론 사신에게 보물을 보여준 사건. 시간의 흐름을 변경하면서까지 열왕기 내레이터가 말하려고 한 것은 무엇일런지요? 그리고 앗수르에게 조공을 바친일, 그리고 바벨론 사신들에게 보물을 보여준 일을 주님의 뜻에 반하는 불순종이라는 프레임으로 바라보는 것이 타당한 지요? 혹 여러 주석을 보면 바벨론 사신에게 보물을 보여준 것을 돈을 사랑한 히스기야왕의 교만함,또는 바벨론과의 동맹의 관점으로 보기도 하는데요? 어떤 관점에서 히스기야를 바라보면 될런지요?
5. "웃사의 동산" 의미는?
유다왕 므낫세과 그의 아들 아몬은 21장8절 "웃사의 동산(정원)"에 장사되었다고 언급되는데요?
이안 프로반 책 P389를 보면 "유다 왕들의 통치에 대한 정형화된 문구에서 '다윗 성'에 장사된 것에 대해서만 언급을. 그리고 히스기야 이후로는 다윗성에 대한 언급이 없다.이것이 장례 관습의 변화를 알려주는 것인지 논쟁의 여지가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대왕들의 죽음에 대한 기록측면에서 유다의 악한왕 므낫세와 그의 아들 아몬왕이 "웃사의 동산(정원)"에 장사되었다는 말은 독특한 듯 합니다. 왕들의 죽음 기록에 대해서 이렇게 차이있게 기록한 저의가 무엇일런지요? 그리고 여기서 기록된 '웃사'가 삼하6장1~8절의 언약궤를 붙잡는 불경한 행동을 한 '웃사'로 보시는지요? (타 주석에서는 '웃사'를 가나안의 별 신인 아타르멜렉을 위해 건축된 구역으로 보기도 함)
6. 열왕기하 22:1-20요시아 때 성전을 보수하기 위해 “백성이 여호와의 성전에 드린 은”을 계산하라고 하는데요. 므낫세 때부터 우상들이 성전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이 은은 어떤 명목으로 백성이 냈던 것인지 궁금합니다. 또한 요시야 때 갑자기 대제사장이 다시 등장하는데 이 직분은 왕이 하나님을 경외하든지 않든지 유지되었던 것일까요? 23장에도 등장하는 제사장은 레위지파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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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열왕기하에 언급된 유월절에 대한 기록과 역대기서에 기록의 차이를 어떻게 이해를?
(왕하23:22)" 사사가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시대부터 이스라엘 여러 왕의 시대와 유다 여러 왕의 시대에 이렇게 유월절을 지킨 일이 없었더니"
열왕기서에서는 유월절을 지킨 왕을 요시야왕이라고 보는데요. 역대기서에서는 히스기야왕이 유월절을 지킨 것으로 기록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차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즉, 역대하서 30장에서 히스기야가 유월절을 지키고자 했던 것은 재위 초기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때는 준비가 부족해서 정한 기일에 드리지 못하고 연기해서 유월절을 드렸다고 이해합니다.
(대하 30:2~5)"왕이 방백들과 예루살렘 온 회중과 더불어 의논하고 둘째 달에 유월절을 지키려 하였으니 이는 성결하게 한 제사장들이 부족하고 백성도 예루살렘에 모이지 못하였으므로 그 정한 때에 지킬수 없었음이라 왕과 온 회중이 이 일을 좋게 여기고 드디어 왕이 명령을 내려 브엘세바에서부터 단까지 온 이스라엘에 공포하여 일제히 예루살렘으로 와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유월절을 지키라 하니 이는 기록한 규례대로 오랫동안 지키지 못하였음이더라"
이렇게 역대기와 열왕기를 읽다보면 므낫세왕 등 내용에 있어서 차이들을 발견하는데요? 두 성경의 이런 차이에 대해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고 생각하면 좋을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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