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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기독교/성서학

요한계시록에 대한 세 권의 책 - 요한계시록 신학(리챠드 보쿰, 한들출판사), 인류의 종말과 요한계시록(크레이그 퀘스터, 동연), 요한계시록 바르게 읽기(마이클 고먼, 새물결플러스)

by 서음인 2016. 6. 2.

1. 오래 전 공부했던 요한계시록을 다시 읽기 시작하면서 이 논쟁적인 책을 다룬 다섯 권의 연구서를 함께 펴들었다. 신약신학자가 집필한 세 권의 연구서인 요한계시록 신학 (리챠드 보쿰, 한들출판사), 인류의 종말과 요한계시록 (크레이그 퀘스터, 동연), 요한계시록 바르게 읽기 (마이클 고먼, 새물결플러스) 와 우리 시대의 탁월한 기독교 사상가와 영성 신학자가 쓴 책인 요한계시록 주석(자크 엘륄, 한들출판사), 묵시: 현실을 새롭게 하는 영성 (유진 피터슨, IVP) 이 그들이다. 크게 보자면 다섯 권 모두가 비슷한 관점으로 요한계시록을 바라보고 있다고 할 수 있지만, 그래도 조금 성격이 다른 엘륄과 피터슨의 책은 따로 다루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짧게 평하자면 요한계시록 읽기에 시적 상상력을 중시하는 피터슨에게서 C.S. 루이스의 향기가 난다면, 계시록을 시간 안에 있는 영원을 드러내주는 책으로 여기는 엘륄에게서는 바르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2. 이번에 요한계시록을 공부하면서 새로 배우고 다시금 확신하게 된 몇 가지 사실이 있다. (1) 요한계시록은 일차적으로 과거에 뿌리박고 궁극적으로는 미래를 지향하지만,  압도적으로 현재에 대해 이야기하는, 예배와 행동을 위한 - 예전적 (ritual) 인 동시에 정치적 (political) 인 - 텍스트이다. 이 사실을 망각한다면 요한계시록은 초대교회의 역사를 복원하기 위한 여러 유용한 사료 중 하나이거나, “종말”이라는 이름을 가진 정교하지만 위험한 그림맞추기 퍼즐을 위한 조각들의 모음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2) 요한계시록의 목적은 죽임당하고 부활하신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신자 공동체로 하여금 시민 종교를 거부하는 예배와 증언을 기꺼이 감당하는 더 신실하고 더 선교적인 공동체가 되도록 격려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요한계시록은 고난 받는 성도들에게는 인내를, 중간지대에 살아가는 성도들에게는 결단을, 평안하다고 느끼는 성도들에게는 각성을 촉구하며, 이 과정에서 세상과 맞서는 그리스도인들의 참된 무기는 무력이나 폭력이 아닌 어린 양의 피와 자신들이 증언한 말씀 그리고 순교까지도 감수하는 희생이다. (3) 따라서 요한계시록은 허접한 종말의 시간표로 성도들을 미혹하는 일부 ‘양복 입은 무당들’ 때문에가 아니라, 모든 형태의 우상과 시민종교를 전적으로 거부하는 강력한 반제국주의적 메시지 때문에 진정으로 위험한 책이 된다. 만약 누군가가 지금까지 누려온 일상과 예배의 평온함과 안락함을 계속 유지하기 원한다면 이 위험한 책을 계속 ‘봉인한 채로’ 남겨두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3. 요한계시록 뿐 아니라 모든 성경은 세월이 가고 공부가 쌓일수록 점점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책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천사가 준 두루마리가 먼저 입에서는 꿀같이 달았으되 먹고 나니 속에서 아프더라는 사도 요한의 고백(계 10:10)이 혹시 이런 경험을 표현한 것은 아니었을까?


p.s. 마지막으로 체스터튼의 촌철살인의 언급 한 마디!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어떤 괴물도 '계시록에 대한 희한한 해석'이라는 괴물들만큼 기괴하지는 않다! (though St. John the Evangelist saw many strange monsters in his vision, he saw no creature so wild as one of his own commenta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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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의 중심?  “요한계시록”을 언급하면 무엇이 생각나는가? 요한계시록과 관련하여 자주 듣는 낱말과 문구를 몇 가지 들어보면 종말, 휴거, 일곱, 말을 탄 네 사람, 적그리스도, 666, 심판, 복수, 재림, 하늘나라 등을 꼽을 수 있겠다. 흥미롭게도 요한계시록과 가장 관련이 깊은 이 말중에 두 가지 - 휴거와 적그리스도 - 는 요한계시록에 나오지도 않는다. 반대로 요한계시록에서 가장 중요한 증인, 보좌, 어린 양 같은 단어들은 얼른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지금도 요한계시록의 중심이요, 앞으로도 중심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고먼)

                                                                                                              

계시록의 나선구조  요한계시록은 역사를 개관하기보다는 연대기적 순서로 명확히 분류되지 않은, 환상들의 중복된 순환 주기들을 꿰뚫어보도록 독자들을 인도한다. 이에 근거하여 우리는 요한계시록이 선형적 형태로 미래의 사건들을 계시하는 것이 아니라 경고의 메시지와 권면의 메시지를 번갈아 전함으로 성도들의 인내를 증진시키고자 계획된 것임을 알게 된다. 이 책의 개요는 나선형처럼 보이는데, 각각의 고리는 일련의 환상들로 구성되어 있다. 전체로서 요한계시록을 읽은 사람들은 때로는 자신에게 위협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확신을 주기도 하는 환상을 접하게 된다. 나선의 밑바닥에 있는 환상들이 점진적으로 강화됨에 따라..... 대적자들로 인하여 독자들의 안전이 위협당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등의 소용돌이에 갇혀 견딜 수 없게 될 때마다, 청중들은 하나님과 어린 양과 하늘의 찬양대 앞으로 옮겨지게 된다. 이 환상들은 나선의 꼭대기에 있다. 위협적인 환상들과 확신을 주는 환상들 각기 다른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 환상들의 목적은 동일하다. 곧 청중들이 계속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께 신실하게 남아 있도록 하려는 데 있다. (퀘스터)

                                                                                                                  요한계시록은 무엇을 말하는가  요한계시록은 적그리스도가 아닌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이야기한다. 요한계시록은 이 세상을 벗어나는 휴거가 아니라, 이 세상에서 신실한 제자로 살아가야 할 제자도를 이야기한다. 즉 요한계시록도 신약 성경의 다른 모든 책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이야기하는 책이요, 순종과 사랑으로 그분을 따르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요한계시록은 신학시적이고 신정적인 텍스트로서, 현재는 물론 미래에도 이루어질 하나님과 죽임 당하신 어린 양(그리스도)의 통치, 제국과 시민 종교를 겨눈 강력한 비판, 그리고 신실하게 저항하고 삶으로 예전을 표현하며 복음을 전할 소망을 가진 공동체 안에서 어린 양을 따르라는 도전을 던지는 권면을 영감이 넘치는 환상에 담아 우리에게 전해 준다. (고먼)


요한계시록 - 참된 현실을 드러내는 텍스트  요한은 (그리고 그와 함께 그의 독자들은) 하늘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기 위해 하늘로 끌어 올려진다. 그는 역사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배후에 대한 일면을 볼 수 있는 특권이 주어졌다. 따라서 그는 그가 속한 시대와 장소에서 일어나는 사건들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참으로 무엇인지를 볼 수 있었다. 요한은 또한 환상 가운데 최종적인 미래 속으로 옮겨짐으로써 인류 역사를 위한 하나님의 궁극적 목적 안에서 현재의 종말적 결과가 필연적으로 어떠해야 하는가의 관점에서 현재를 볼 수 있었다. 요한의 환상들은 그의 독자들의 세계를 공간적으로(하늘로) 그리고 시간적으로(종말론적 미래) 넓혀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으며, 이를 달리 말해서 그들의 세계를 신적 초월의 세계로 열어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로마의 제국주의적 관점은 요한의 독자들이 처한 상황에 대한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적 이해로서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요한의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공유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을 정도로 강력한 것이었다. 요한계시록은 세상을 신적 초월에로 열어젖힘으로서 실체에 대한 그러한 거짓된 관점을 반박하고 있다. (보쿰)

                                                                                                          

중립은 없다  요한계시록 자체는 어떠한 중립적인 입장에도 서 있지 않다. 로마의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로마가 선전하고 있는 제국의 모습을 바라보는 시각이든지, 아니면 천상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아 로마의 허울을 꿰뚫어 보는 시각이든지 둘 중 하나이다....... 요한계시록이 로마 제국을 반대하는 이유가 오직 로마의 기독교 박해 때문이라고 추측한다면 그것은 중대한 실수이다. 오히려 요한계시록은 로마의 권력 구조에 대해 주도면밀하게 선지자적 비판을 전개하고 있다. 이 선지자적 비판은 요한계시록으로 하여금 제국의 초기에 쓰여진 저항 문학 작품 중 가장 강력한 것이 되게 하였다..... 로마가 심판을 받게 되는 이유는 단지 기독교 순교자들 때문만이 아니라 죄 없이 학살당한 모든 희생자들 때문이기도 하다(계 18:24).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 요한계시록은 ‘역사의 또 다른 이면’을 바라보는 시각, 즉 로마의 권세와 영광 뒤에 감춰진 희생자들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쓰여진 책이다. (보쿰)

                                                                                                     

말씀으로 싸우시는 그리스도 I  그리스도 요한계시록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죄와 악에 타협하지 않는 자리에 서도록 요청한다. 그러나 이 군사적 행위는 우상 숭배와 탐욕에 끝까지 저항하는 형태를 취한다. 더욱이 요한계시록 19장에 묘사된 격변 전투에서, 하늘의 군대가 하는 일은 무엇인가? 요한의 이야기에 의하면 아무 것도 없다...... 큰 전투에 대한 요한의 환상은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세상 나라들에 대항하는 무기로 무장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자신만이 하나님의 승리의 대리자임을 확인해주는 것이다. 언급된 단 하나의 무기는 그리스도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의 검이다. (퀘스터)

                                                                                                       

말씀으로 싸우시는 그리스도 II  요한계시록을 다르게 읽는 것 - 예를 들어 초강대국이 주동이 되어 악으로 간주되는 사람들과 체제를 상대로 벌이는 전쟁에 정당성을 제공하는 책으로 읽는 것 - 은 단순히 평화를 추구하는 그리스도인들의 감성을 침해하는 신학적 결단을 내린 게 아니다. 오히려 그렇게 읽어내는 것은 요한계시록의 상징과 구조를 완전히 잘못 읽은 것이다. 맞다. 죽임 당하신 어린 양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세상에서 악을 제거하신다. 그러나 그는 당신 자신이 흘리신 피와 당신 입에서 나온 칼로 그런 일을 하시지 말 그대로 당신 원수들의 피가 흐르는 칼을 자신의 손에 쥐고서 그런 일을 하시지는 않는다. (고먼)

                                                                                                   

저항하라 I  그러므로 메시야적 전쟁의 주제는 우리로 하여금 진리의 증거라는 주제로 다시 돌아가게 한다...... 세상은 군사적이고 정치적인 힘이면 거칠 것이 없는 그런 장소인가, 아니면 고통스러운 진리의 증거가 마침내 승리하게 되는 장소인가? 현대의 용어는 순교를 ‘수동적인 저항’이라고 부르고 있는 반면 요한이 사용하고 있는 군사적인 이미지는 순교를 어느 물리적인 전투 못지않게 능동적인 것으로 만든다. 요한은 로마를 대항한 문자 그대로의 거룩한 전쟁이 요구되는 묵시적 호전성을 거부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의 메시지에 있어서 ‘저항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지는 않다. 요한의 메시지는 ‘저항하라!’ 이다 - 단 폭력이 아닌 증거와 순교로서. (보쿰)

                                                                                                            

저항하라 II  그리스도인이 제국과 우상 숭배에 맞서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사도들과 성도들과 선지자들과 순교자들이 보여준 모범과 닮았다. 이들은 모두 신실하고, 참되고, 용감하고, 의롭고 비폭력적이었다. 이 모범은 수동적이 아니라 능동적이며, 오직 하나님께만 충성하겠다고 맹세하는 공동체와 개인, 벗은 물론이요 적에게도 폭력을 쓰지 않고 사랑을 베풀며 살아가는 공동체와 개인, 그리고 하나님의 영을 힘입어 죽음을 안겨주는 제국의 문화에 맞선 대안으로 생명을 가져다주는 미니 문화를 만들어내는 공동체와 개인을 형성한다. (고먼)

                                                                                                       

계시록의 영성  우리가 요한계시록을 - 역사의 종말을 다룬 기록이라기보다 - 하나님과 죽임 당하신 어린 양의 통치에 초점을 맞춘 신학시이자, 하나님의 통치를 다룬 기록이며, 목회_예언의 관점에서 쓴 기록이요, 성령이 지금도 교회에 하시는 말씀으로 읽어낼 때 우리 앞에는 어떤 종류의 영성이 나타나는가? 우리 앞에 나타나는 영성은 신정과 예언과 선교의 영성이요, 시민 종교를 거부하는 예배와 증언의 영성이다. 이 영성은 본질상 개인의 사사로운 차원에 머무는 영성도 아니요, 단순히 내면의 영성도 아니다. 오히려 이 영성은 세상에서 온몸으로 구현하는 - “행하는” - 영성이다. (고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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