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격자의 증언, 복음서 (리처드 보컴 지음, 성서유니온 펴냄)

1. 영국의 저명한 신약학자인 리처드 보컴은 그의 두툼한 연구서인 『예수와 그 목격자들』(새물결플러스) 을 요약한 이 작은 책에서 복음서가 초대 기독교 공동체 내에서 구전을 통해 전해진 작자 미상의 공동체 전승이며 역사적 예수에 대해서보다는 초대교회가 처한 삶의 정황에 대해 더 많이 알려준다는 양식비평의 가정에 반대하여, 복음서는 목격자의 증언을 충실히 구현한 작품으로 간주할 때 가장 잘 이해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에 의하면 양식비평을 포함한 근대 성서비평학의 성과를 바탕으로 한 역사적 예수 탐구(the quest of historical Jesus)가 전제하고 있는 역사적 예수(Historical Jesus)와 신앙의 그리스도(Christ of faith)라는 이원론은, 이제 증언을 통한 예수(Jesus of testimony)라는 일원론적 패러다임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2. 저자는 이러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몇 가지 근거를 제시한다. 

(1) 당대인들은 복음서의 문학적 장르인 ‘전기’에 대해 목격자의 증언에 기초한 역사 기록이어야 한다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2) 복음서에 야이로나 바디매오와 같이 비중이 약한 몇몇 인물들의 이름이 언급된 이유는 이들이 복음서가 기록될 당시 자신의 경험을 증언한 사람들이었다고 가정할 때 가장 잘 설명될 수 있다. (3) 복음서에 기록된 열두 제자와 여성 제자들의 명단은 복음서에 포함된 가장 중요한 자료를 보증할 수 있는 목격자로서의 공식적인 자격을 시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4) 각 복음서는 저자가 목격자 증언의 인클루지오(the inclusio of eyewitness testimony) 라고 부르는 문학장치를 사용해 그 출처인 주요 목격자를 드러내고 있다. (5) 복음서 구전은 과거에 알려진 바와 달리 설화문학(folk literature) 전승의 양식이 아닌 역사전승(historical tradition)의 양식을 따랐으며, 따라서 전승의 정확한 보존을 위해 상당한 주의가 기울여졌을 가능성이 높다. (6) 사건의 요지는 일치하지만 세부사항에서 차이를 보이는 사복음서의 평행본문은 전승된 기억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이며, 일반적으로 목격자들이 기억하는 내용은 일단 양식화되고 몇 차례의 시연 과정을 거치면 상당히 일정하게 유지되는 경향이 있다. 

3. 저자는 복음서 저자들이 자신들이 가진 개별 전승이나 자료를 재구성하여 하나의 내러티브로 엮었고 나름의 독특한 신학적 해석을 내놓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만, 그것이 필연적으로 전승의 왜곡을 전제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예수사건이나 홀로코스트와 같이 전무후무한 사건의 경우 객관적이고 냉정한 관찰자보다 오히려 사건에 깊이 관여한 참여자의 증언이 요구되며,  복음서의 저자들과 같이 자신의 증언의 의미와 그 요구에 충실했던 사람들이야말로 진짜 신뢰할 만한 증인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4. 복음서가 목격자의 증언을 충실히 구현한 책이라는 저자의 관점은 사실 근대 이전에 복음서를 이해하던 전통적인 방식이자 현대 복음주의자들의 대부분이 ‘의심 없이’ 수용하고 있는 새롭지 않은 견해이다. 이 책의 미덕은 비평학의 시대 이후 대다수의 ‘주류’ 성서학자들(물론 한국에서는 비주류쪽에 더 가깝겠지만)이 합의에 도달한 지배적 견해에 대해, 일방적 비판이나 소통 불가능한 독백이 아니고 설득력을 갖춘 논지와  ‘대화가 가능한’ 학문적 형식과 수준을 갖춰 이의를 제기했다는 데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저자의 주장에 대한 진위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내 능력의 범위를 벗어나는 일이겠지만, 권위 있는 개별 목격자들의 증언만큼이나 초대교회의 공동체와 그들이 처한 삶의 자리(Sitz im Leben) 역시 복음서가 형성되는 중요한 모판의 역할을 담당하지 않았을까 하는 상식적인 의심과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