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단상 및 기타

칭의논쟁 유감

by 서음인 2016. 9. 5.

저는 개인적으로 요즘 페북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칭의와 관련된 논쟁에 그다지 흥미가 없을 뿐 아니라 누구의 이야기가 옳은지 제대로 판단할 능력도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 논쟁에 접근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관심이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 이 논쟁은 신약시대 유대교 문헌에 대한 연구와 성서신학의 발전이 맞물리면서 태동되어 20세기 후반부터 주로 성서신학자들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래 링크된 글을 쓰신 목사님은 21세기 성서신학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이 논쟁이 16세기의 칼빈과 스콜라 신학자들 사이의 논쟁으로 치환될 수 있다고 진지하게 믿고 계신 것 같습니다.

                                                                    

다시 반복하지만 저는 이 논쟁 자체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습니다. 이 논쟁에서 제 관심은 하나의 '오메가 포인트’에 비추어 특정 주장의 옳고 그름을 결정하려는 접근의 ‘방식’ 혹은 멘탈리티에 있습니다. 물론 저는 이런 방식에 익숙합니다. “오직 성경"를 모토로 삼았던 종교개혁자의 후예들이 세운 보수적 교회에서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직 성경"을 외치는 개혁자의 후예가 21세기 “성서신학"의 운동장 한가운데서 벌어지는 정치(精緻)한 논쟁에 대해, 위대한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500년전인 16세기를 살았던 한 신학자의 생각과 그 시대에 있었던 교리적 논쟁을 판단의 잣대로 들이대며 거칠고 위협적인 언사를 남발하는 것에 대해서는 고개가 갸우뚱해집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기치는 “오직 성경”이 아니라 “오직 그 신학자”인 것일까요? 해 아래 새것이란 존재할 수 없으며, 올바른 신학이란 오직 “訓詁學”이거나 "꽃다발 신학"이어야만 하는 것일까요?

                                                             

이런 글을 접할 때마다 “현대 (보수)교회는 21세기에 직면하고 있는 질문에 대해 1세기의 맥락에서 숙고된 답변을 제시하는 대신, 16세기의 문제의식과 질문에 대해 내려진 19세기(까지)의 결론을 반복하는 데 머무르고 있다”는 톰 라이트의 말에 고개를 끄떡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http://www.bonhd.net/news/articleView.html?idxno=1091




'단상 및 기타' 카테고리의 다른 글

元 老  (0) 2016.12.06
下野歌  (0) 2016.12.06
이슬람과 무슬림들 .....  (4) 2016.08.17
당선인 찬가  (0) 2016.06.01
"나니아 연대기 - 새벽출정호의 항해" 斷想  (0) 2016.06.01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