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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단상 기고/단상 기독교

『다시 쓰는 초대 한국교회사』에 나오는 ‘한국 초기 개신교와 유교의 공생’

by 서음인 2019. 4. 18.

옥성득 교수님의 다시 쓰는 초대 한국교회사에 나오는 한국 초기 개신교와 유교의 공생이라는 글이 참 인상적이네요. 저자는 특정 종교가 한 사회 안에서 소수파일 때는 내적 확신을 위해 자기 종교의 우월성을 믿지만, 반대로 사회에서 공적 지위를 얻기 위해서는 주류 종교나 이데올로기와 공존할 수 있다는 변증론을 편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한 종교가 주류가 되고 힘을 가진 다수파가 되면 교만한 집단으로 변질되어 타 종교를 차별하거나 공격하는 근본주의 세력으로 전락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 일이 한국교회 역사에서도 그대로 일어났다고 주장합니다.

기독교가 어느 정도 자리 잡기 시작한 1890년대 후반 이후로 유교와의 관계에 있어 공존론이나 성취론과 같은 온건한 복음주의의 모습을 지니고 있던 한국교회가, 1970년 이후 양적 성장과 함께 점차 사회의 주류로 자리매김하면서 근본주의를 자신의 원류로 오해하고 전면에 내세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법당을 불태우고 선교의 이름으로 마당 밟기를 하면서 타종교를 저주하는 극단적 행태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 글에서 소개하는 여섯 가지의 비유가 잘 보여주는 초기 한국교회의 온건하고 겸손한 타 종교 신학을 다시 들여다보고 되살려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모든 글들이 하나같이 빛나지만 특히 이 글은 반드시 읽어보시기를 강력하게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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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여섯 가지 비유 - 마틴의 금목걸이’, 로스의 한 겨리의 소’, 쓰다센의 등불과 태양’, 파베르의 접목론’, 이수정의 송백론’, 언더우드의 양춘에 반짝이는 무성한 나무’ - 에 나타난 적응주의적 태도나 성취론적인 타종교신학은 개신교가 한국사회에서 비주류로 머물렀던 해방 이전까지 계속되었으며, 이후 1960년대에 토착화신학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1970년도부터 급성장한 개신교는 점차 사회의 주류로 자리를 잡으면서 1920년대 중반부터 조선의 예루살렘인 평양을 중심으로 강화되던 근본주의를 전면에 내세웠다. 그 결과 지난 30년 넘게 한국 개신교회는, 1920년 이전에 초기 한국교회가 가졌던 온건한 복음주의의 모습을 상실하고, 근본주의가 마치 한국 개신교의 원류라고 오해하게 되었다. 그런 망각과 오해에 기초한 근본주의적 복음주의가 법당을 불태우고 단군상의 목을 자르는 극단적인 행동을 예수의 이름으로 정당화했다. 또한 해외에 나가 불교 사찰에서 마당 밟기를 하며 저주를 퍼붓는 것을 선교란 미명하에 정당화했다

“1900년대에 한국 예수교가 가졌던 반봉건 개혁주의와 반제국 독립주의의 정치참여적인 신학 유산을 되살린 것이 80년대의 민중신학이며 또한 90년대 이후의 참여적 복음주의였다. 그러나 타 종교 신학 분야에서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초기 한국교회가 가졌던 온건하고 겸손한 타 종교 신학을 다시 들여다보고 되살릴 때이다. 1880년대의 초기 개종자들은 극소수였기에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공적인 통로나 언로가 없었다. 따라서 그들의 타 종교관은 개인적인 내적 확신의 표현이었다. 이때 등장한 논리가 유교에 대한 기독교의 우월론이다. 한 종교가 더 낫다는 확신이 없으면 누가 선교를 하겠으며, 그런 초기 상황에서 누가 목숨을 걸고 개종을 하겠는가? 그러나 교회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1890년대 후반 들어 한국사회가 개화기를 향해 나아가고 청년 지식인들이 교회에 들어오기 시작하자, 교회는 유교와 기독교가 동전의 양면처럼 상호의존적인 관계에 있다는 공존론과 함께 유교를 파괴하지 않고 완성하는 종교가 기독교라는 성취론을 내세웠다

복음의 싸앗은 길가나 돌밭이나 가시덤불이 있는 곳에서는 잘 자라지 못한다. 밭은 변하고, 신학도 변한다. 오늘날 한국 젊은이들의 마음밭(心田)에서 예수교가 발견하는 보석은 무엇일까? 그것을 일이관지(一以貫之)하는 신학은 무엇일까? 오늘날 진짜 문제는 한국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의 영적 상상력의 빈곤이지, 젊은이들의 마음밭이 아니다. 오늘 한국 젊은이들의 마음밭을 기경할 한 겨리의 소가 될 교회의 영성은 과연 무엇인지 고민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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