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너럴 셔먼 호를 타고 대동강을 통해 한국에 들어왔다 1866년 9월5일에 사망한 토마스 목사(Robert Jermain Thomas, 1839∼1866, 崔蘭軒)의 죽음이 순교인가를 다룬 논문을 한 편 접했습니다. 한국의 보수교단을 대표하는 모 신학대학에서 연구비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라고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타국에 불법적으로 들어와 대포까지 쏘아가며 통상을 강요한 배에 타고 왔던 젊은 목사 한 사람의 비극적 죽음이 순교나 아니냐를 논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관심 있게 본 부분은 저자가 이 논문의 말미에서 토마스 목사의 죽음이 순교라는 주장을 부정하는 몇몇 학자들의 주장을 평가하는 대목이었습니다.
이 논문의 저자는 “토마스를 순교로 보지 않고 .... 침략적 제국주의를 배경으로 한 힘의 선교의 전형으로 이해하는 이만열-한규무-옥성득의 시각은 ‘공교롭게도’ 제네럴 셔먼호를 바라보는 진보주의 역사학계의 시각, 심지어 제네럴 셔먼호 사건을 전형적인 제국주의 침략으로 간주하는 북한의 시각과 상당히 일치한다”고 주장합니다. 학술적인 논문의 형태를 갖춘 글에 자신과 다른 견해가 ‘진보주의 역사학계’나 ‘북한’의 시각과 일치한다고 단정하는 문장이 나온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그 말은 이 논문이 진보주의 역사학계나 북한의 시각과 다르기 때문에 '옳은 편'에 서 있다는 논리인가요? 아니면 침략선에 타고 왔다가 참살된 한 젊은 서양 선교사의 죽음을 순교라고 규정하지 않으면 ‘좌파'요 ‘빨갱이’라는 협박인가요?
자신과 다른 견해를 색깔론으로 몰아붙이는 수준의 논문에 진지한 관심을 보이는 것은 시간낭비일 것입니다. 제 관심은 저자와 그가 속한 학교가 도대체 왜 100년이 넘는 한국 기독교사의 별처럼 빛나는 수많은 위인들을 제치고 토마스 목사 정도의 인물에 집착하느냐입니다. 아마도 그들의 신학적 뿌리인 근본주의의 고향이 ‘동양의 예루살렘’이었던 평양이었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요? 만약 그의 죽음이 한국 개신교 역사상 첫 '순교'였고 그 '순교'가 한국 기독교의 뿌리가 되었다면, 그가 ‘순교’ 했다는 평양에서 번성한 근본주의 신학이야말로 한국 신학의 정통이요 원류라는 사실이 더 힘을 얻게 되기에 그다지도 이 인물을 '띄우려는' 것은 아닐까요?
열정으로 가득했던 젊은 선교사의 비극적인 죽음은 안타까운 일이고, 하나님이 천국에서 그에 합당한 상급을 내려주셨을 것으로 믿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선교대국으로 발돋음한 21세기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를 첫 순교자로 미화하고 영웅시하기보다 무모하고 제국주의적인 선교의 한계와 비극을 잘 보여주는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요? 하늘에 있는 토마스 선교사도 우리가 자신을 영웅으로 추앙하기보다 자신의 실수에서 배우기를 더 바라지 않을까요?
논문의 첫 페이지
문제의 부분
제너럴 셔먼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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