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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인문/철학

더 나은 세상 - 우리 미래를 가치 있게 만드는 83가지 질문 (피터 싱어 지음, 박세연 옮김, 예문 아카이브 펴냄)

by 서음인 2019. 5. 4.

더 나은 세상』은 동물해방운동의 효시가 된 동물 해방이나 자발적 기부의 필요성을 주장한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등의 저서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세계적인 실천윤리학자 피터 싱어가 젠더, 국제정치, 생명, 기부, 과학기술 등 다양한 영역에서 논란이 되는 윤리적 주제들에 대해 <프로젝트신디게이트>라는 매체에 기고했던 짧은 칼럼들을 모은 책이다. 옮긴이는 각각의 주제를 깊이 다룬 싱어 교수의 책들이 국내에 많이 소개되어 있지만, 현재 논란이 되는 거의 모든 윤리적 이슈에 대한 그의 견해를 들을 수 있는 이 책이야말로 싱어 교수의 '종합선물세트'와 같다고 평가한다. 따라서 이 책은 피터 싱어라는 세계적 석학의 철학과 이론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훌륭한 입문서이자 요약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몇 가지 조사 결과를 토대로 인간은 언어나 수리 능력처럼 옳고 그름을 직관적으로 뒷받침하는 도덕 능력을 물려받으며, 이러한 능력은 인류의 선조가 사회적 영장류로서, 그리고 이전 세대가 물려준 유산의 일부로서 살았던 수많은 세월의 결과물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렇게 오랜 세월을 거치며 진화해 온 인간의 도덕적 직관이나 이에 근거한 본능적 혐오가 오늘날의 인류가 처한 도덕적 딜레마에 대해서도 항상 올바른 대답을 들려주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동물의 권리, 낙태, 안락사 국제 원조 등 과거에 존재하지 않았던 다양하고 복잡한 문제들로 가득한 오늘날의 세상에서 우리가 윤리적 통찰력을 얻을 수 있는 원천은 더 이상 도덕적 직관이나 '본능적 혐오' 또는 이에 근거한 '종교적 도그마'가 아니라 이성의 능력이라고 강조한다.

 

또한 저자는 도덕적 판단의 타당성은 검증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개인의 감정이나 태도의 분출에 불과하다는 논리실증주의자들의 견해에 반대하여 신중한 사고와 성찰을 통해 발견할 수 있는 객관적 윤리의 진실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1+1=2가 참이라고 이해하는 것처럼 미래의 고통을 피하려는 동기와 다른 사람이 고통을 겪지 않도록 해야 할 동기를 갖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며, 이야말로 저자가 주장하는 윤리적 객관주의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에 근거해 "한 행위로 발생하는 내 이익의 양보다 그것이 야기하는 타자의 고통의 양이 더 크다면, 그 행위는 중단되어야 한다"는 공리주의적 명제를 윤리의 대원칙으로 내세운다(이익 평등 고려의 원칙).  따라서 저자는 윤리란 단순히 개인이 규범을 지키는 일에만 국한되어서는 안되며, 세계 곳곳에서 불행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행할 수 있는 선 뿐 아니라, 인류의 미래 세대와 인류를 넘어선 동물에게까지 확장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렇게 타자의 고통에 대한 민감한 감수성을 바탕으로 하는 싱어의 윤리학은 생존에 필수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어떤 개인이나 집단도 미래 세대나 동물까지를 포함한 타자가 고통을 겪지 않아야 할 권리를 침해할 수 없으며, 생존을 위해 타자에게 해를 가해야 하는 상황이 되더라도 그들의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신념에 따라 그는 인간의 생존을 위해 필수적이지 않으면서 높은 지능을 가진 사회적 포유류인 고래를 고통스러운 죽음으로 몰아가는 고래잡이에 반대하며, 식용으로 동물을 사육하는 경우에도 사육이나 도축 과정에서 그들의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그 스스로는 채식주의자다). 또한 사치를 누릴 여유가 있으면서도 소득의 일부를 가난한 이들과 나누지 않는 부자에게는 기부를 통해 막을 수 있는 죽음에 대한 도덕적 책임이 있다고 강조하면서 부자들이 소득의 최소 1%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기부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윤리적 직관'이 아닌 '합리적 이성'이 윤리적 판단의 기준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는 몇몇 윤리적 문제에 대해 논란이 될 만한 '공리주의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싱어는 소생 가능성이 전혀 없는 환자의 무의미한 생명 연장 치료를 위해 제한된 공적 자금으로 운용되는 의료보험 시스템이 소생 가능성이 높은 환자 여럿을 살릴 수 있을 만큼 엄청난 의료비를 부담해야 할 의무는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아무런 개선도 기대할 수 없고 극심한 고통을 덜어줄 방법도 없는 심각한 결함을 가진 신생아의 경우, 적극적인 수단을 동원하여 생명을 끝내는 것이 '윤리적' 행위일 수 있다고 강조한다. 또한 동성애나 근친상간에 대해서는 특정한 형태의 성행위가 당사자들에게 만족감을 주는 반면 다른 이들에게는 피해를 입히지 않는다면, 우리 선조들의 진화적 생존에 기여했던 '감정적 혐오감'을 근거로 범죄 여부를 판단하는 접근방식을 오늘날에도 그대로 적용해야 하는지 질문하기도 한다.  

 

이렇듯 일체의 윤리적, 문화적, 종교적 전제를 배제한 채 철저히 '타자의 고통에 대한 감수성'과' 합리적 이성'에만 근거하여 일관되게 공리주의의 원칙을 적용하는 피터 싱어의 결론은 때로 당황스러울 정도로 파격적이다. 그러나 과연 '하나님의 말씀'을 문자적으로 신봉하는 보수적 기독교인들이 주장하는 기독교 윤리는,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조자 그렇게 파격적으로 들리는 싱어의 주장만큼 일관성과 설득력, 그리고 적실성을 갖추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가? 그들이 하나님의 윤리적 명령이라고 확신하는 성경의 일부 '문자'는, 혹시 싱어가 주장한 바 인류 진화의 과정에서 생존을 위해 내재화된 '윤리적 직관'과 '본능적 혐오감'을 종교의 이름으로 포장한 것에 불과하지는 않은가? 과연 21세기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따라야 할 성경과 예수의 정신에 더 가까운 문장은 "동성애자, 우상숭배자, 가나안 족속은 반드시 죽이라"는 성경의 '문자'인가, 아니면 "종교의 자유는 인간(이나 동물)의 고통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멈춘다"는 이 책의 주장인가?



목차

 

들어가며

제1장_인간과 도덕

 

01_인간의 삶은 어디에서 오는가
02_절대적인 진리란 존재하는가
03_도덕은 진화하고 있는가
04_고통은 신이 준 것인가
05_도덕은 종교를 필요로 하는가
06_범죄를 약물로 예방할 수 있다면
07_범죄자에게 관용은 어디까지인가
08_행복한 삶은 무엇으로 결정되는가
09_우리가 인류의 마지막 세대라면
10_왜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가

 

제2장_동물과 윤리

 

11_동물에게도 복지가 필요한가
12_만약 물고기가 비명을 지른다면
13_고래잡이도 문화인가
14_인간의 이익이 동물보다 우선인가
15_칠면조는 왜 짝짓기도 할 수 없는가
16_시험관 고기는 대안이 될 수 있는가
17_동물도 인격체인가
18_동물은 인간에게

 어떤 존재인가

제3장_생명과 권리


19_낙태를 허용할 것인가
20_부모가 아이의 생명을 결정해도 되는가
21_중증 장애 신생아를 살려야 하는가
22_누구를 위한 생명 연장 치료인가
23_의사가 안락사를 결정해도 되는가
24_죽음은 개인의 권리인가
25_의사의 조력 자살은 치료 행위인가

제4장_생명윤리와 공공의료


26_게놈이 인류의 미래를 바꾸는가
27_인간 복제 기술은 축복인가
28_자발적 장기 매매는 정당한가
29_의료보험은 의심할 나위 없는 복지인가
30_담뱃갑 경고 그림은 필요한가
31_비만은 왜 국가의

 문제인가
32_인간은 몇 살까지 살게 될 것인가
33_피임은 신의 뜻을 거역하는 것인가

제5장_섹스와 젠더

 

34_근친상간을 법으로 규정해야 하는가
35_동성애는 비도덕적인가
36_폭력적인 게임이 범죄를 유발하는가
37_공직자의 사생활은 어디까지인가
38_생물학적 성별이 그렇게 중요한가
39_문화적 차이는 간섭할 수 없는가

제6장_선행과 기부


40_세계 빈곤 해결은 누구의 몫인가
41_어떤 자선단체를 선택해야 하는가
42_선행은 남몰래 실천해야 옳은가
43_기부에도 좋고 나쁨이 있는가
44_선행을 이성적으

로 할 수 없는가
45_사회적 지위를 돈으로 살 수 있는가
46_인류의 종말은 비극인가

제7장_행복과 돈

 

47_돈이 많으면 행복한가
48_행복을 측정할 수 있다면
49_우울증은 왜 사회적 문제인가
50_어떻게 웃음이 삶을 바꾸는가
51_어떤 삶이 가치 있는가

제8장_국가와 정치


52_투표를 잘못하면 어떻게 되는가
53_벤담의 오류는 왜 아직도 유효한가
54_헌법은 진리인가
55_소수가 국가의 운명을 결정해도 되는가
56_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인가
57_종교적 악법도 지켜져야 하는가
58_조지 부시는 정직한 사람이었나
59_시민권은 국민의 당연한 권리인가
60_정부는 개인 정보를 어떻게 사용하는가
61_히틀러는 독재자고 스탈린은 영웅인가
62_인종차별주의자도 추모해야 하는가

제9장_인류와 미래

 

63_난민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64_투명한 외교는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65_식품업체는 왜 도덕적이어야 하는가
66_기후변화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67_선진국이 더 많은 탄소세를 내야 하는가
68_녹색 지구를 위해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69_지구의 온도가 2도 높아진다면
70_온실가스를 어떻게 줄일 것인가

제10장_과학과 기술


71_유전자 변형 식품을 막아야 하는가
72_과학은 새로운 창조주가 될 것인가
73_로봇이 의식을 가지면 어떻게 되는가
74_인터넷은 어떻게 가난한 사람을 돕는가
75_세상의 모든 지식을 공유할 수 있는가
76_과학의 진보는 어떤 이익을 주는가

제11장_살며 놀며 일하며


77_새해 결심을 지키려 하는가

78_사람들은 왜 사치품에 현혹되는가
79_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80_정직은 순진한 자들의 몫인가
81_왜 도핑을 금지해야 하는가
82_속임수도 경기의 일부인가
83_내가 서핑에 도전한 이유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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