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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인문/철학

현대 정치철학의 테제들 (연구모임 사회비판과 대안 엮음, 사월의 책 펴냄)

by 서음인 2020. 9. 29.

『현대 정치철학의 테제들』은 1971년에 출간되어 현대의 고전으로 자리잡은 존 롤스의 『정의론』 이후 “자유주의-공동체주의 논쟁”을 포함해 사회 정의에 대한 다양한 논쟁과 저술을 통해 현대 정치절학을 풍요롭게 꽃피우는 데 기여했던 대표적인 영미권 정치철학자들을 간략히 소개하는 책이다. 이 책이 다루는 학자들은 존 롤스,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 리처드 로티, 찰스 테일러, 마이클 샌델, 마이클 왈저, 로버트 노직, 낸시 프레이저까지 총 여덟 명이다. 도서출판 사월의 책에서 기획한 사회비판 시리즈의 하나로 출간된 이 책에서 필자들은 각 학자당 30페이지가 조금 넘는 분량을 할애해, 생애와 주요 사상을 소개하고 간략한 비판과 평가를 덧붙인다. 오늘날 한국사회의 주요 화두로 떠오른 ‘공정’과 ‘정의’의 문제에 대해 많은 생각거리를 제공하는 현대 정치철학자들의 핵심적 사상을 비교적 짧은 시간과 적은 노력으로 만나볼 수 있는 탁월한 소개서다. 내용을 요약해 앞으로의 공부를 위한 바탕으로 삼기로 한다.

 

이 책에서 주로 다루는 ‘사회 정의’는 현재 한국사회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화두일 뿐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관심이 많은 분야다. 이 책에서 소개된 정치철학자 중 지금까지 가장 좋아했던 사람은 공동체의 이익에 앞서는 개인의 권리를 옹호하면서도 개인의 재산권보다 경제적 평등을 앞세우는 ‘평등주의적 자유주의자’ 존 롤스와, 인간이 사회 정의를 위한 공적 실천에 투신하는 ‘자유주의자’인 동시에 사적 욕망의 실현을 위해 노력하는 ‘아이러니스트’일 수 있다고 주장했던 리처드 로티였다. 아마도 두 학자들이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해 어떠한 집단이나 도그마에 구속되는 것도 싫어하지만, 오랫동안 믿어온 그리스도교의 영향으로 정의란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우선적 관심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내 모순적인 성향을 가장 잘 대변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앞으로 이 책에서 만난 학자들과 함께 정의에 대한 좀 더 심층적인 공부와 진전된 결론에 도달해보고 싶다.

 

 

내용 요약

 

 

1. 존 롤스

 

미국의 정치철학자 존 롤스(John Rawls, 1921~2002)공정으로서의 정의는 공동체의 이익보다 개인의 권리를 옹호하지만, 소유의 자유보다는 경제적 평등을 앞세우는 평등주의적 자유주의라 할 수 있다. 롤스는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들이 사회 내에서 자신의 위치를 알 수 없는 무지의 베일을 쓴 상태에서 최초의 계약을 맺어야 하는 상황을 가정한 후, 사회의 기본 구조에 대해 두 가지 정의의 원칙을 도출해낸다. (1) 1 원칙인 평등한 자유의 원칙은 정치적 자유가 모든 시민에게 동등하게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며, 이는 언제나 2원칙에 우선한다. (자유 우선성의 원칙) (2) 2 원칙인 차등의 원칙은 모든 성원들에게 균등한 기회가 보장되며(기회 균등의 원칙) 사회 구성원 중 최소 수혜자에게 가장 많은 혜택이 돌아가도록 조정되는 경우(최소 수혜자 우선성의 원칙)에만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용인된다는 것이다. 롤스는 다원적인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이러한 정의론이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정치적 합의의 원칙들이 그 사회 내에 존재하는 모든 합당한 포괄적 교설들로부터 중첩되는 동의를 받도록 해야 하며(중첩적 합의) 이러한 중첩적 합의는 그 사회의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들이 공유하고 있는 이성(공적 이성)에 기초해 정당화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2. 알레스데어 매킨타이어

 

'공동체주의의 주창자인 매킨타이어 (Alasdair MacIntyre, 1929~    )는 근대 계몽주의가 그 이상인 합리적이고 자율적인 주체 대신, 공동체의 상실로 인해 삶의 의미와 정체성을 상실한 자아를 양산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인간은 역사나 공동체와 같은 더 큰 맥락 안에서 이야기를 매개로 끊임없이 삶을 통합하고 정체성을 찾아가는 '서사적 존재이자 행위의 주체이기에, 진정성 있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행위로 환원되지 않는 도덕적 행위자가 복원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매킨타이어는 특정한 목적체계에 의해 유기적으로 통합된 일련의 선을 확장시키려는 사회적 협력활동인 실천관행이 탁월한 개인과 창조적 공동체를 만들어가며, 이러한 실천관행내재적 선이 성취되기 위해서는 인간이 보유한 후천적 자질인 , 실천관행이 유기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공간인 공동체’, 그리고 실천관행과 유기적으로 통합된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살아 있는 전통을 만들기 위해서는 계몽주의 근대성의 방식인 기존 전통에 대한 전적인 배제나 대체가 아닌 이질성에 대한 포용을 전제로 하는 통합의 방식이 요구되며, 이는 타인의 의견에 대한 주체적 수용과 상상력을 통한 자기 문화의 창조적 재해석과 변용을 통해 성취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3. 리처드 로티

 

리처드 로티(Richard Rorty, 1931~2007)의 질문은 사회 정의를 위한 공적인 실천과 개인의 행복을 위한 사적인 관심을 어떻게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로티는 자아 · 언어 · 공동체가 보편적 본성을 가지지 않는 역사적 우연의 산물이라고 주장함으로서 인간이 보편적 진리에 도달하거나 이론과 실천을 통합한 하나의 체계를 세울 수 있다는 사실을 부정한다. 그리고 모든 철학적 이론의 목표는 자신만의 어휘로 스스로의 자아를 창조해가는 것이며, 그 결과는 보편적 진리와 관계없는 사적인 관심의 영역에 속하기에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될 수 없다고 말한다. 또한 사회 정의를 위한 공적인 실천의 영역은 궁극적이거나 보편적인 진리의 적용이 아닌, 긴급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차선책을 찾는 타협과 연대의 장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로티는 이론과 실천 · 앎과 행동은 일치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으며, 인간은 타인의 고통에 대한 감수성을 바탕으로 사회 정의를 위한 공적 실천에 투신하는 자유주의자인 동시에 창조적 자율성을 가지고 사적 진리를 추구하는 아이러니스트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유주의 공동체 내에서만 개인들이 사적 관심에 몰두할 수 있기 때문에, 공적 실천(민주주의)이 사적 이론(철학)보다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4. 찰스 테일러

 

찰스 테일러(Charles Taylor, 1931~ ) 는 현대 사회의 불안 요소로 인간을 모든 전통적 연관으로부터 분리시켜 오직 자신에게만 의존하는 고독한 인간으로 만드는 개인주의인간의 삶을 경제적 · 과학적 효율성에 따라서만 판단하게 만드는 도구적 이성의 지배 그리고 이 두 요소의 결과로 빚어지는 개인과 집단의 자유의 손실을 든다이에 대해 테일러는 개인적 차원과 사회적 차원에서 두 가지 해결책을 제시한다. 개인적 차원에서는 극단적 개인주의나 윤리적 상대주의에 빠지지 않는 진실한 삶을 개척하려는 도덕적 이상인 자기 진실성이 필요하다. 이러한 자기진실성은 자기도취를 넘어서는 타인과의 연대나 개인의 욕망을 넘어선 보편적 가치를 전제하며, 사적으로는 타인과의 부단한 소통과 사랑을 통해, 사회적으로는 공정성에 기초한 보편적 가치를 추구함으로서 성취될 수 있다. 사회적 차원에서는 근대의 사회적 상상을 구성하는 요소들인, i) 사회의 객관화된 측면인 경제ii) 정치적 차원의 집단적 행위주체성인 인민주권iii) 사회적 차원의 집단적 행위주체성인 공론장iv) 개인적 행위주체성과 집단적 행위주체성이 만나는 자유의 공간인 패션의 공간을 통해, 도구적 이성이 지배하는 관료적이고 파편화된 서구 사회의 위기가 극복될 수 있다

 

5장 마이클 샌델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 1955~    )은 분배 정의를 이룰 수 있는 굳건한 연대의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롤즈의 사상이 전제하는 “무연고적 자아”가 아니라, 개인이 속한 특정한 공동체 및 구체적인 역사/사회적 정황에서 발생해 특정한 목적을 지닌 통일된 이야기 안에서 서사적 탐색을 통해 형성되는 “서사적 자아”의 개념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공동체가 직면한 중대한 도덕적 문제는 ‘좋은 행동’을 넘어선 ‘좋은 삶’에 대한 토론 없이 해결되지 않는다고 강조하며, 국가가 시민들 각자가 따르는 가치관들 사이에서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센델의 “중립주의적 국가관”이 공론장에서 해결해야 할 중대한 도덕 문제를 회피해 무기력한 공공철학을 낳는다고 비판한다. 따라서 샌델은 특정한 도덕적, 종교적 담론이 공론장에 들어와 공적 토론에 참여하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특정한 활동이 지향하는 최상의 텔로스와 행동양식이 존재한다는 목적론적 도덕관의 복원과 이를 성취하기 위한 시민적 덕의 육성을 핵심적 가치로 삼는 “시민적 공화주의”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그리고 경제성장과 공정 분배라는 어법으로만 복지를 논하는 케인즈식 복지와 ‘시장사회’를 비판하면서, 전국화되고 전지구화된 거대 기업적 힘에 맞서는 분산된 주권을 통해 돈으로 살 수 없는 고유한 가치들이 복원되는 시민 자치를 소망한다.

 

6. 마이클 왈저

 

마이클 왈저(Micheal Walzer, 1935~ )는 평등 사회란 모든 재화를 모든 사람이 똑같이 가지게 되어 불평등이 사라진 사회라기보다, 특정한 사회적 재화를 획득하면 다른 모든 재화까지 저절로 얻게 되는 ‘지배적 가치’를 없앰으로서 사회적 지배가 철폐된 사회라고 주장한다. 즉 개개의 재화가 불평등하게 분배되더라도 모든 재화들이 독립된 가치를 지니는 ‘다원적 평등’이야말로 진정한 평등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지배적 가치가 철폐되고 모든 사회적 가치들에 내재된 분배 원칙이 자율성을 갖게 되면서, 가치의 다원성과 분배 원칙의 다원성을 보장받게 된 있는 상태가 바로 왈저가 말하는 ‘다원적 정의’이다. 국가는 어떤 집단이 지배적 재화를 소유함으로서 사회적 지배력을 행사하는 것을 막아낼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지만, 사회 내에서 위계와 차별을 막고 연대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시민사회 내에서의 시민 상호간 관용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왈저의 정의관은 국가의 개입을 통해 사회 개혁을 추진하려는 개입주의적 국가관과 보편적 분배 원칙보다는 다양한 분배 영역의 자율성을 보장하려는 다원적 정의관이 결합된 것이며, 이는 사회적 분화가 진행되고 시민 간의 관용을 기대할 수 있는 다원주의 사회에 적합한 정의 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7. 로버트 노직

 

로버트 노직 (Robert Nozick, 1938~2002)은 존 롤스의 평등주의적 자유주의를 비판하면서 자연권 이론과 최소국가론, 그리고 소유권적 정의론에 입각한 자신의 자유지상주의적 견해를 펼친다. 그는 자연상태에 있는 자연인들은 모두 자연권을 소유하고 있지만 자연상태의 폐혜 때문에 불가피하게 국가가 요청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러고 이런 국가는 신성불가침의 존재인 개인의 권리, 즉 자연권의 보호자로서 기능하면서 최소한의 통치를 지향하는 최소국가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노직은 정의란 분배의 문제가 아니라 정당한 소유물에 대한 개인의 소유권리의 문제라고 믿기 때문에, 이러한 최소국가는 국가가 사회정의라는 이름으로 시행하는 모든 형태의 분배 정책에 반대한다. 노직의 소유권적 정의론은 ① 타인의 소유가 아닌 소유물에 대한 최초 취득의 원칙인 취득의 원칙과 ② 타인의 소유였던 소유물에 대한 취득의 원칙인 양도의 원칙, ③ 취득과 양도에 동반될 수 있는 현실적이고 역사적인 부정의를 바로잡기 위한 시정의 원칙으로 구성되며, “한 개인의 소유물은 취득과 양도에서의 정의의 원칙 또는 부정의에 대한 시정의 원칙에 의해 소유권리를 부여받은 경우 정당하며 이 경우 소유물의 전체 집합(분배)도 정당하다”고 요약될 수 있다.

 

8. 낸시 프레이저

 

낸시 프레이저 (Nancy Fraser, 1947~ )는 시장의 자유를 강조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인 현대에는 영토국가 단위를 전제하는 기존의 분배정의의 틀로 환원될 수 없는 다양한 요구들이 분출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1) 정의의 내용과 관련해서는 분배, 인정, 대표라는 정의의 세 차원을 제시하고, 이를 포괄하는 정의의 규범적 기준으로 ‘동등한 참여’의 원칙을 제시한다. 정의는 당사자들의 동등한 참여와 민주적 논의를 통해서만 비로소 확정되고 실현될 수 있으며, 동등한 참여는 ① 정치적 차원에서 모든 당사자들이 합당하게 ‘대표’가 될 수 있고, ② 경제적 영역에서는 당사자들이 동등한 참여를 위해 필요한 자원을 ‘분배’받으며, ③ 문화적 영역에서 모든 당사자들이 동등한 참여를 위한 지위를 ‘인정’받을 때 비로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2) 정의의 당사자와 관련해서는 국민국가의 시민이라는 틀을 넘어 당사자의 범위를 관련 사안에 직접적으로 종속되는 사람들, 그 결정이 자신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까지로 규정하는 “관련된 모든 당사자 원칙”을 채택함으로서 그 범위를 넓히고 다층화한다. (3) 정의의 방법과 관련해서는 사회 정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과학적 논의를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모든 당사자들의 정치적 참여를 강조하는 “비판적-민주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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